부산교구 박동준 신부에 이어 이번호부터는 수원교구 장금구(크리소스도모) 신부의 회고를 연재한다.
장금구 신부는 1911년 3월 6일 황해도 송화군 하리면 안동리에서 출생, 1939년 6월 24일 사제로 서품됐다.
39년 서울 혜화동본당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한 장 신부는 가톨릭대학 학장·명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뒤 1984년 2월 은퇴했다.
나는 1911년 3월6일에 황해도 송화군 하리면 안농리에서 아버지 장순목 루가와 어머니 이정출 루치아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 동네는 15가구의 작은 마을로 외인은 한 집도 없는 교우들만의 공동체로 「성교촌」이라 불려지고 있다. 본당은 50여리 거리에 있는 장연 본당에 속해있었으나 이 공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어렴풋이나마 1890년대에 김요셉 호겸이라는 분이 서울서 박해를 피해 송화읍 약산골에 이주,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자 이 마을로 옮겨와 살면서 전교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먼 친척을 한 집 두 집 이주시켜 신앙생활을 하면서 원주민을 하나 둘 회개시켜 공소를 이루었단다.
김호겸 회장은 서울에 있을 때 민 대주교님과 친분이 두터웠으므로 가끔 서울에 가서 주교님을 뵙고 전교방법을 배우며 지도를 받았다. 또한 민 대주교님 소개로 프랑스 신부님 중에도 의술이 용한 신부님을 자주 만나 의술도 배우고 많은 의약품도 받아가지고 와서는 병도 영육(靈肉)양면작전을 폈으나 워낙 토속신앙에 젖어있는 주민들이었고 김 회장님 자신의 신앙생활이 너무도 엄격했기 때문에 입교신자의 수는 흡족치 못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공소교우들의 열성은 내가 50년 간 많은 공소를 사목해 왔지만 그때의 이 공소만큼 단합이 잘되고 주일참례 파공지키는 열성과 상부상조하는 관습, 특히 성소계발에 이처럼 지대한 관심을 가지 공소는 본 일이 없다. 그 사례를 몇 가지 열거해보련다.
1. 단합=교우들은 모두가 농사꾼들인데 농사철이 되면 제일 먼저 공소 공동작부터 손을 댄다. 남녀노소 총 출동하여 나름대로 작업을 끝마치고 나서야 각자 자기 농사일을 하는데 보통 3~4세대씩 조를 짜서 품앗이로 한다. 불행한 사태로 작업을 못한 집이 있으면 모두가 열심으로 협력하여 일을 끝마쳐 준다.
2. 주일참례=주일이 되면 어른·아이 모두가 회당에 모여 참례경과 회장님의 강론·묵주기도·연도 등 무려 세 시간 동안의 공소예절을 마치고야 집으로 돌아간다.
3, 파공=그때는 봄 판공 때 신부께로부터 20주의 반판공 관면을 얻어두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4. 상부상조=어느 한 집이 경조(慶弔)를 당하면 모두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선다. 공소에는 전용상여까지 구비해 두고 상여꾼이 전부 교우요 상가에서 산상 묘지에 이르기까지 계속 연도를 바친다.
5. 성소에 관한 관심=해산을 돕는 부인들의 첫 마디가 『사내다. 계집애다』가 아니라 『신부감이다. 수녀감이다』혹은 『신부감은 못돼. 수녀감은 못돼』라는 말이었다. 어린애를 받아들고 눈이 또랑또랑하고 얼굴이 반듯하면 으례 신부감, 수녀감이라는 이름이 붓는다. 본당신부님이 공소순방 때 이 갓난아기를 소개해 드리면 신부님은 여러모로 관찰해 보시다가 어느 시기에 가서는 『이 아이는 신부수녀가 될 만하니 잘 지도하라』는 하명을 내리신다. 그때부터는 전 교우가 이 아이의 지도자요 스승이요 감시원이 된다. 잘하는 일이 있을 때는 『신부될 놈은 그래야지』하고, 잘못하는 것이 뵈면『신부될 놈은 그러면 못서』라는 꾸지람을 듣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어려서부터 고삐와 재갈을 물리고 성소의 길로 끌고 가는 꼴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공소교우들의 열심한 신앙생활과 상부상조의 정신, 성소에 관한 특별배려의 꽃은 위해하게 탄생하였는바, 15세대 밖에 안 되는 공소에서 1926년부터 6·25사변까지 25년 동안에 확실한 숫자만도 신부가 12명, 수녀가 6명이 났으며 그중에는 남매 모두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사남매 중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바친 가족도 있으며 외아들 신부가 셋이요, 맏아들 신부가 셋이니 이제는 교우촌을 넘어서 「성소촌」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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