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52세의 지학순 주교가 원주교구장 임명소식을 받은 것은 부산 초장동 본당 주임으로 재직중이던 1965년 3월22일 오전이었다.
본당 신부 3년만에 근근이 성당을 짓고 온기없는 2층방이나마 사제관을 마련 새로운 출발에 가슴이 부풀어 있을 즈음 원주교구장 임명 통보는 목자로서 기쁨보다 「가시밭길의 어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소식이었다. 지 주교는 이날 오후 찾아간 한 친척에게 이런 걱정을 털어놨다. 『주교 임명 소식은 받았지만 당장 착좌식에 입을 주교 복장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군』 『그럭저럭 이웃이 도와준 덕분에』 착좌식을 마치고 원주역전 부근에 허름한 목조 2층집을 주교관으로 정하고 실정 파악에 나섰다. 『동란중 군복무때 꼭 한번 지난일 밖에 인연이라곤 없는 곳인데다 둘러보니 가난한 교우들이 대부분이어서 어떻게 꾸려갈지 한동안 막연한 생각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8년간 정력적으로 교구를 정리, 자립 터전을 닦은 그는 교구 성직자와 평신도의 결속을 토대로 「생활속에 그리스도를 찾자」는 슬로건 아래 억눌린 형제들과 버림받은 근로대중과 함께 사는 교회 건설의 서장을 연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알맞은 키에 빈틈없는 몸가짐 그러면서도 서민적 체취가 풍기는 사제생활 21년째의 지 주교는 다른 사제와는 달리 구교우 집안이 아닌 부모의 6남매중 넷째로 1921년 9월9일 평남 중화군 중화면 청학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톨릭에 입교한 것은 그가 14살때 친조모가 임종 대세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서 였다.
평양 성모학교를 마치고 본당 신부 추천으로 동성학교 입학, 4학년때 폐를 앓는 바람에 4년간 휴학, 동기생보다 6년 늦게 1952년 성신대학(가톨릭대 신학부)을 마치고 사제가 됐다.
휴학하는 동안 만주와 고향인 중화에서 세무서와 등기소에 근무한 일도 있는데 46년 평양교구장에게 다시 신학교에 갈 뜻을 비추자 곤란하다는 답을 듣곤 그 길로 서울에 달려와 대신학교 교장신부와 담판, 입학 허락을 받은 적극파이기도 하다.
그 후 청주 주교좌 보좌와 교구장 비서를 거처 56년 로마 「푸로파간다」대학에 유학, 교회법 박사 학위를 얻고 가톨릭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소장신부 시절부터 사리에 어긋나는 일엔 직선적으로 대들곤 해 『다루기 힘든 신부』평을 듣기도 했는데 원주교구장 취임 후 불합리한 교구 경계 설정에 대해 주교회의에 끈질기게 항의, 69년 춘천교구의 횡성 풍수원 평창 3개 본당과 청주교구의 제천 단양 2개 본당을 원주교구에 편입시킴으로서 이웃 교구와의 본당 격차를 해소시킨 일도 있다. 이 같은 그의 성미는 교회의 일반적 사조와 달리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과감한 행동의 원동력이 되어 71년 10월5일 주교관에 목장(牧杖)을 짚고 「부정부패 추방시위」에 앞장서게 했던 것이다. 『시대의 징표로서 교회는 사회적 불의와 부정에 대항 억눌린 형제들의 정당한 인권을 되찾아 주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받고 있으며 하느님은 이것을 명하고 계신다.
오늘의 사회는 권력과 결탁한 극소수 특권층에 의해 대다수 근로대중은 비참한 상태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경제적 부조리를 제거하지 않는한 진정한 사회 발전은 있을수 없다.
사회는 신분 중심의 봉건사회에서 돈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평등사회로 변천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권위수호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말로만 평등을 부르짖을뿐 자신은 봉건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일련의 외침에서 나타나듯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말로만 복음을 외치는 「앵무새 교회」가 아닌 「행동하는 교회」의 건설이다.
『말만 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복음도 행동으로 전해야 한다. 가난한 형제는 협동하여 돕고 억눌린 형제는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구령과 경제생활을 이원적으로 해석하던 시대는 지났다. 경제생활과 영혼구령은 현대생활의 총체성 속에서 연관 해석해야 한다. 정신의 선도없는 경제생활의 향상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경제협력을 통해 정신계발을 유도할줄 아는 운영의 묘를 배워야 한다』
이러한 교회 건설에 있어 성직자 평신도에 향한 그의 기대는 「일치속의 협력」이다.
『교회는 먼저 젊은 사제들이 긍지를 갖도록 일을 시켜야 한다. 일부 사제들의 탈선은 현대사조의 영향도 있지만 교회 조직상 충분히 일할수 있는 여건이 되어있지 않은데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사제는 정신지도자로서 도덕의 사표로서 긍지를 갖고 물질생활에 초연할 줄 알아야하며 신자를 존경해야 할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지식과 능력 재능을 바쳐 교회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현재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정신적 갈등은 해소되어야 하며 조화를 이룰때 교회활동은 훌륭한 성과를 거둘것이다.』
원주교구장직의 50여 명의 군종신부를 거느리는 군종단 총재 주교직과 「앰네스티」한국위원회 위원장 한국노동교육협의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어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과지만 교구의 작고 큰 교육모임엔 무슨일이 있어도 참석, 격려와 채찍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 평신도 지도자는 말한다. 『꼭 한마디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 주교는 반대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의 사고와 구조에 개선해야 할 면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미약하나마 정의로운 사회 건설과 민족적 차이를 넘어선 정의평화 운동에 기여하려는 것이 나와 우리 교구의 염원입니다.』
<끝><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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