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은 퍽으나 깊어졌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조락의 계절이 오면, 자연을 사고함으로써 우리 또한 인생을 사색하고, 죽음을 음미하게 되는건지 모른다. 이렇듯 가을은 그 무성한 잎과 열매를 땅으로 떨어뜨려, 장차 썩을지라도 어떤 회의도 아쉬움도 없이 혈벗어가는 모습이 오히려 겸손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조락을 대할 때 일시나마 자신도 언젠가는 낙엽처럼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인생의 허무함에 잠길지도 모르겠다. 파스칼이 말하기를『나는 손ㆍ발ㆍ머리가 없는 한 인간은 상상할수 있어도 사고가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것은 들이나 금수와 같은 것이다. 』라고 했다. 즉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조건중의 하나가 바로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한다는 이 자체는 기쁨도 되지만 때로는 인간을 부단히 괴로움과 고통 가운데 살게하는 원인이 될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를 위해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강하며 제어할수 없는 힘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또 인간은 이런 본능에만 얽매어 있지않고 부단히 타인을 향해 움직이며 그의 괴로움에까지 동반하려는 욕구가 있다.
나와 남의 숙제를 동시에 가진 인간은 다른 자연의 생명이 가지지 못하는 고뇌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본능적 자기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사고능력이 극도로 마비되어 자기 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에고이즘에 빠진 정신적인 미개인을 오늘날 문명이 발달한 향락적인 도시속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유권리가 극도로 확대되고 주장되는 현대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기계화된 복잡한 사회속에서 일수록 개인의 행복이란 자신이 자체로서 보존하고 지켜나갈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행복을 지켜줌으로써 자기의 행복도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보다 이성적이고 인간적일 때 남을 위해서 또 자기에의 본능에서 벗어나려고 갈등하고 번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당하는 모든 부조리한 고통에 살지만 이 고통이 있음으로써 자신의 불완전성을 느끼고 따라서 이웃의 고통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그것을 덜어주려고 힘씀으로써 인간적인 연대의식 나아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누구나 다 어느 날엔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이 고통과 죽음을 넘어서 유한한 지상에서 영원토록 이어갈것은 결국 인간의 면면한 사랑의 유대인줄 안다. 우리가 고뇌한 것 슬퍼한 것 사랑한 것 아무것도 헛된 것은 없다. 이것이 신이 주신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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