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관심과 주목을 끌었던 제3차 세계주교「시노드」가 폐막된지 한달이 지난 지금 현재, 미국을 비롯한 영국ㆍ화란ㆍ프랑스 등지에서는「시노드」결과에 대해 격한 비난과 강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차제에 이 회의에 참석코 귀국한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시종 일관된「시노드」분위기를 들어본다.
제3차 세계주교 대의원 회의는「사제직」과「세계속의 정의」라는 오늘의 교회가 당면한 두 가지 큰 과제를 다루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과제에 대하여 이번「시노드」는 온 세계의 기대와 관심속에 개최되었으나 그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론평인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제들의 관심을 모은 사제문제에 있어서 오늘의 교회와 세계의 사목적인 요구에 답할 수 있는 사제상을 제시하지 못했다는데 신랄한 비판을 받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시노드」는 어떤 이들이 지적하는바와 같이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것인가?
사제직 문제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 차신한 사제상을 부각시키지 못했다고도 할수있다. 특히 교리면에 있어서는 전통적 교리를 되풀이 한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고싶지 않다.
사제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이것은 신학적으로나 실천생활면에서나 교회의 구조 자체와 본질적으로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천여년의 발전과 전통의 교회의 구조상에 근본적인 측면이 좌우된다.
이번「시노드」는 교회의 전통적 구조및 내일의 전망과 사제직이 얼마나 깊이 관련되어 있는지 실감있게 볼 수 있었으며 사제문제는 곧 교회자체의 문제와 불가분의 것임을 깊이 재인식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 때문에 격동하는 시대상에 처해 있을수록 보다 더 순수하게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전통적 사제상을 고수해야 한다는 립장이 자연히 강조되었다.
우리는 제2차「바티깐」공의회를 말로서는 잘 인용하지만 오늘의 교회자체의 구조와 그 생활은 아직도 공의회 이전에 머물고 있다. 교회성원 즉 성직자와 신자들의 의식구조와 생활관념이 공의회 정신에 의해 쇄신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그 때문에 전체교회의 내적쇄신이 무르익지 못했고 참다운 교회상을 부각시키지 못한 현단계에서 참신한 사제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이떤 이들은 사제에 대한 신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때문이라고도 하고 공의회에서 주교와 평신자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었으나 신부 즉 평사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히 다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사제를 교회내의 한 신분으로만 본다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소명속의 성소로 본다면 공의회문서 특히「교회헌장」「사제직율령」기타의 여러 교령은 사제상에 대하여 두고두고 묵상하고 연구할 재료와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성서학에 있어 사제에 대한 연구는 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병행하여 공의회문서와 그 정신, 특히 공의회가 깊이 말한 그 교회상속에서 새로이 깊은 사제상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할것이다. 나는 이 교회상 속에서의 사제상 추구는 대단히 중요한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누구도 이번「시노드」에서 이것을 떠난 다른 사제상을 기대했다면 그런분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제상은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한편 공의회의 교회상에 준한 사제상의 부각을 기대했는데 실망했다면 이 실망은 내일을 위해 참으로 희망을 주는 일일 것이다.
사제는「하느님의 백성」의「전소명」을 살고 증거해야할 사람이다. 또한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전소명이다.
이번「시노드」에서 사제의 독신제를 재확인한 리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따라 하느님 백성의 이 전소명을 살려면 거기에는 전폭적인 투신이 요청되며 독신은 그것을 위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독신은 단순히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복음의 증거로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살아야하는 복음적 청빈 내지 자아의 포기이다. 때문에 사제들은 독신제를 교회의 법으로만 의식할 것이 아니다. 하느님 백성속에서 그리스도의「부르심」을 살기위해 받은 그「부르심」속에 내포한 특은으로 이것을 받아들이는 영성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신제는 부정적인 것에 그치고 말것이다. 또한 참된 증거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제독신은 청빈 및 순명과 함께 하느님께 향한 복음적 라디칼한 증표이며 심볼이다. 오늘의 세계는 그리스도의 전소명을 살아가기 위해 이같이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흔연히 바치는 사제들을 어느때보다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기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사제속에 현대인은 그가 갈구하는 참되고 전적인 인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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