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와 형철이 그리고 놀러온 담배집 민호가 햇빛이 밝게 비치고 있는 담에 기대고 서있다. 바람이 없어서 따스하다.
북쪽을 향하고 있는 정거장 뒷산의 아카시아 숲이 희미한 보라빛을 띠고 그 아래 여기저기 아직 녹지않은 눈이 희끗희끗 바라보인다.
그리고 항구에는 언제 입항했는지 보기드문 커다란 기선이 가물가물 파란 연기를 연통으로 내보내고 있다.
여느때 같으면 아이들은 큰기선에 대해 이야기가 많을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형 참새가 병이들어 죽었을까?』
형철은 참새가 죽은 원인을 생각하고 있었던지 고개를 형일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럴거야』
형일은 짧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꼬 성인께 기도를 드리면 됐을걸…』
형철은 후회가 되는듯이 말했다.
『그래 뻬삐노처럼 말야』
형일이 말소리가 밝아졌다.
『프란치스꼬 성인이 뭐야?』
민호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형일이와 형철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민호는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프란치스꼬 성인에 대해서나 더군다나 삐삐노에 대해서는 알지못한다.
『저 말야 프란치스꼬 성인은 말야, 새나 동물을 굉장히 사랑한 성인이야 개미도 밟을까봐 조심했어』
형일이가 말했다.
『그럼 프란치스꼬 성인께 기도하면 병이 나아?』
민호가 역시 의아스렇게 말했다.
『그렇지 뻬삐노도 그래서 병든 나귀를 살렸단 말야』
또 형일이가 설명했다.
『뻬삐노는 뭔데?』
민호가 캐고 물었다.
『응- 너 뻬삐노를 모르는구나』
형철이가 으쓱해서 말했다. 저보다 나이먹은 민호가 프란치스꼬 성인이나 뻬삐노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뻬삐노는 말야 이탈리아의 아씨지라는곳에 살고있는 아이야…그리고 프란치스꼬 성인도 아씨지에서 태어났었어…』
하고 형일은 책에서 읽은 뻬삐노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뻬삐노는 부모가 없는 아이다. 뻬삐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긴 뷔오렛다라는 나귀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뻬삐노와 뷔오렛다는 흑인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살았다. 뻬삐노는 마을 아이들을 나귀에 태워주기도 하고 또 남의 짐도 운반해 주었다. 그렇게 하여 번 돈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뻬삐노와 뷔오렛다는 둘도없는 친구였다. 뷔오렛다는 엷은 고동색의 조그마한 나귀였다.
뻬삐노는 언제나 헌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다녔다. 열살짜리 뻬삐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자기의 힘으로 살았다.
뷔오렛다는 여느 나귀와 꼭같았으나 한가지가 다른점이 있었다. 뷔오렛다는 웃어보이는 이상한 입을 하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뻬삐노의 까만 눈과 뷔오렛다의 웃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좋아했다. .
뻬삐노는 나귀와 둘이서 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었다. 마을에 있는 성당의 다니고 신부님의 말대로 저금도 했다.
추운 밤이면 뻬삐노는 뷔오렛다에게 바싹 달라붙어 잠을 잤다. 뻬삐노는 모든 슬픔과 기쁨을 뷔오렛다와 나누었다. 뻬삐노는 뷔오렛다에게 먹을 것을 잘주었고 여러가지 벌레도 잘 잡아주었다. 뻬삐노는 얼마나 뷔오렛다를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뷔오렛다는 뻬삐노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잘했고 그러던 어느날 뷔오렛다는 병이 들고 말았다.
뷔오렛다는 점점 약해갔다. 얼마 후에는 옆구리의 뼈가 드러나 보일만큼 약해졌다. 그리고 웃어보이지를 않았다. 뻬삐노는 그것이 슬펐다.
뻬삐노는 저금한 돈을 가지고 바루도리 의사를 모시러 갔다. 바루도리 선생은 뷔오렛다를 진찰하고 잘 치료를 해주었다.
그러나 뷔오렛다의 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바루도리 의사 선생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이건 야단인데 독이 있는 벌레에 물렸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쁜균이 뱃속에 들어갔거나…』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나서 또 말했다
『나귀를 푹 쉬게하고 먹이도 너무 많이 주지 말아라. 혹시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으면 나귀의 병은 나을지도 몰라』
의사선생이 돌아간 후 뻬삐노는 숨을 가쁘게 쉬는 뷔오렛다의 옆구리에 머리를 대고 울었다.
그러다가 뻬삐노는 쟈니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쟈니는 그 전에 병이난 고양이를 저고리안에 숨겨가지고 프란치스꼬 성인의 무덤에 가서 기도를 드린후 나았던 것이다.
뻬삐노는 용기가 났다. 겨우 일어서는 나귀를 끌고 성프란치스꼬의 수도원으로 갔다.
『아저씨 내 나귀가 병으로 죽게되었어요. 수도원 안에 들어가게 해주셔요. 프란치스꼬 성인께 기도를 드리면 병이 나을거예요』
하고 뻬삐노는 문지기 아저씨에게 사정을 했다.
그러나 문지기 아저씨는 완강히 거절했다. 문지기 아저씨는 수도원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뻬삐노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뻬삐노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뻬삐노는 수도원문 앞에서 되돌아섰다. 뻬삐노는 앞이 캄캄해졌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