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사제독신제를 강조하면서도 무시못할 수의 주교들이 기혼자의 사제서품을 지지한 사실은 두 가지로 해석하고 싶다. 첫째는 우선 사제의 절대수가 부족한 지역의 사목적인 요청에 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오늘의 사회가 급격히 다원화, 세분화 되어감에 따라 앞으로의 교회에 근본적인 구조변화가 예상되고 또한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제형의 가능성의 문을 열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이 둘째 번에 더 역점이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문제의 초점은 기혼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잖겠는가? 사제 지원자의 결혼 여하는 이차적인 문제다. 일차적인 문제는 시대와 환경의 사목적 요청이요, 여기에 참으로 응할 수 있는 풍성한 사제적 인품이 문제다. 인품이라면 깊은 인간성과 신앙의 사람 덕망의 사람 나아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고 백성속에서 참으로 백성을 위해 사제답게 봉사할 수 있는 영성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가 봉사할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혼자 서품문제는 교황의 권한에 속하는 일이고, 또 참으로 사목적 요청이 있을 때 국한된 일이니 지금 당장으로서는 그것의 현실화를 성급히 기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시노드」가 이 방향으로 1보 전진한 것은 사실이고 이 점으로 보아서도 이번「시노드」는 교회와 세계의 내일의 전망에 대하여 결코 폐쇄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고무적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시노드」는 성격상「소공의회」가 아니다. 또 의결기관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교황을 위한 사목적 자문기관이다. 때문에「시노드」는 그 결과에 대한 문서상의 발표가 없다. 또 문제의 심각성, 중대성에 비해 이번「시노드」는 준비도 부족했고 토의시일도 부족했다. 그래서 비록 미결의 장과 같은 인상을 면치 못했다고 할지라도 사제상 내지 그 문제에 대한 더욱 깊은 묵상과 연구의 필요성은 누구나 절감했다고 보며 그런 의미로 이번「시노드」는 그 나름의 긍정적 의미가 있었다.
나는 이번「시노드」동안 오늘의 세계가 무엇을 우리에게 기대하는가고 가끔 자문해 보았다. 오늘의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참된 인간성을 요망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볼 수 있는 그 숭고한 인간성, 벗을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그 깊은 사랑의 인간성을 현대는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우리 사제들은 이 인류의 기원과 소망을 채우기 위해 특별한「부르심」을 받았다.
근본문제는 독신제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참다운 인간 참다운 크리스챤이 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내가「시노드」에서 아쉬움을 느꼈다면 이 점을 깊이 터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시노드」중에 있는 폴란드의 사제이며 나치 점령하에 죽음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동료수감자를 대신해서 자진목숨을 바친 막시밀리안 꼴베 신부의 시복은 참된 사제상의 귀감으로 사제가 무엇이며 누구인지 깊은 반성과 감명을 주는 것이었다. 이 분의 생애는 문자 그대로「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그 사랑에 사신 것이었다.
사제는『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헤브리5ㆍ1) 사제도 인간이기 때문에 연약하다. 또한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모든 이의 인간적 취약성과 죄와 고뇌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뿐아니라 모든 이의 십자가를 자기자신의 그것과 함께 대신 지고가는 사람이다. 현대가 추구하고 갈구하는 사제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