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도 중턱에 다가선 주말 오후.
직장에서 풀려나온 두 친구는 파고다 공원을 끼고 느릿느릿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아, 오랫만에 해방된 기분이로군. 사무적 분위기를 떠나서 자네하고 이렇게 걸어보는 것도 얼마만인가?』
진수의 말에 석종도 끄덕인다.
『도시락을 끼고 날이 날마다 집과 직장을 직선으로 오가는 기계적 일과를 벗어나니 살맛이 나는군』
구세군의 자선남비 소리를 등뒤에 밀어내며 접어든 골목길에도 가게에서 울려 퍼지는 스피커의 고래고래 징글벨 노래가 귀부리에 찰찰 넘는다.
『엄벙덤벙 올해도 다 갔어. 값없는 삶을 보람없이 보내다가 나이만 자꾸 주워 먹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게 사람의 한뉘 아닌가? 허덕허덕 시간에 쫓기어 허위대다가 징글벨 소리 자선남비 소리에 정신이 드는가 하면 꿀꺽 떡국먹듯이 한살 더먹고! 요모양 요꼴로 주름살이 늘고 허리는 꾸부러져 무덤 저넘어로부터는 청색 신호등이라. 아무튼 연말만 되면 괘니 어수선해지고 가슴 설렌단 말이야』
쇼오원도 속 상록수에 깜박이는 오색 등이 유난히 시선을 끌어당긴다.
소슬바람에 우수수 가로수 잎지는 소리
『바람과 함께 왔다가 낙엽처럼 지는 목숨! 그러나 무엇인가 하나는 남겨두고 가야할텐데…그런 심정에서 요전날 시 한수 지었지. 제목은「무서리」라나. 자작시 낭송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자네 들어보려나?』
『문과 출신의 미련이 빚은 산물이라 어디 들어봄세』
석종은 눈을 지그시 감고, 걸음이 느려지며 제법 진지하게 명상하는 태도다.
싱긋 웃음 머금고 진수는 영송조다.
『밤중에/부르는 소리있어/일어나
앉으면/이마의 주름/사이사이에/흙탕물소리/흰머리카락끼리/스치는 소리/어둠속에/또 하나 내가 부풀어/도로 누워도/뒤척이며/잠못드는 밤이 잦아졌다』
『이거야 반백을 넘어선 패배자의 넋두리, 어디 새파란 자네 나이에 있을 법이나 할 생각인가? 겉 늙었네 겉 늙었어.』
『사실, 새달력이 문턱을 넘나들 때면 더 더욱 조급해 지고, 조바심난단 말이야』
『자네는 숫제 문학방면으로 나갈걸 그랬어. 괜히 잠재실업을 해가지고 엉뚱한 직업을 택했네. 그것도 방향 착각일세』
『잠재실업이라-그거 참 멋진말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나뿐인가? 수두룩하지』
찌푸둥한 하늘에서 눈부스러기가 몇점 얼굴에 내려앉는다.
『내내 따스하던 날씨가 첫눈이라도 오려나? 하늘은 멀쩡히 맑아가지고 눈가루를 뿌리네』
석종이 하늘을 살피며 혼잣말이다.
『이 눈을 아꼈다가 성탄 때에 왔으면 좋겠어. 성탄 밤에는 눈이 와야 제격이지. 함박꽃 눈송이가 펑펑 쏟아져야 기분이 나거든. 때묻은 알몸을 감싸주는 햇솜옷 같은것-바삭바삭 메마른 땅, 거무죽죽 욕스런 구석구석을 따스히 쓰다듬어 주는 어머니 손길 닮은것. 정말이지, 성탄에 눈이 곁들이지 않으면 살 풍경이야』
진수의 열띤 말투에 석종의 입가를 쓴웃음이 스쳐갔다.
『허어! 몽유병자의 크리스마스 예찬이 시작되었군 오오! 눈이여, 펑펑 쏟아져라. 아낌없이 퍼부어서 이 욕된 살점들을 모조리 가려다오. 그리고, 고마운 산타클로스여! 바브스카 할망구여, 만금을 싣고 어서 내게로-이 말인가? 헛허!』
『이 사람아, 놀리지만 말고, 눈 없는 성탄을 한번 상상이나 해보게. 아무리 현금주의자의 빡빡한 머리지만…』
『눈이 푸짐하게 쌓이고, 그 눈길을 방울소리 가볍게 달려오는 황금의 썰매-그 위에는 이천살 먹은 호호백발 산타클로스가 보중수표랑 고시 합격증이랑 장관 임명장이랑 메니메니 수두룩 산더미 이룬 선물을 몽땅 자네 가슴팍에 안겨준다 이건가?』
『프라그마티스트(실용주의자)는 할 수 없군. 그건 동심의 동경이고 큰 별을 길잡이로 정처없는 꿈의 길을 떠난 동방박사며 순박한 양지기들을 좀 눈앞에 그려보게나. 얼마나 멋진 삶이었는가! 미지의 꿈을 쫓는 나그넷길-인생이란 결국 그런게 아니겠나?』
잠시 잠잠하던 석종은 손끝을 입김으로 녹이면서 대꾸한다.
『자네는 너무 종교에 집착하는게 고질이야. 콤퓨터가 사람을 우롱하고, 달나라는 옛일, 화성을 넙나드는 판국에 크리스마스 신화가 다 무슨 잠꼬대냔 말이야.』
『성탄이 왜 신화인가? 엄연한 사실이지』
『아무리 역사적 사실이라 치드라도 그건 버얼써 사그라졌어야 할 과거의 유물이 아니겠나? 그래 산타클로스가 참으로 오던가? 무슨 선물을 자네한테 주던가? 자네가 그토록 아끼고 위한다는 하느님이 도대체 자네에게 무얼 해주었나? 취직자런가? 큼직한 집 한채라도 주어서 셋방신세를 벗겨 주었나? 자네네 하느님은 너무 늙었어. 기력이 없나 보이. 대답없는 메아리가 아닌가?』
『이 사람아! 아무리 자기는 믿지 않는다 하드라도 신을 모욕하면 쓰나? 양식없게시리』
『좌우간 자네는 추상적인 종교심과 에누리없이 냉혹한 눈앞의 현실을 혼동하는게 탈일세』
『신앙문제를 너무 현실적으로만 규정해서는 안되지. 가령 종교가없어 보라구. 지구는 당장 급전직하 벼랑으로 굴러 떨어질거고 인류에게는 암흑이요 종말이 오고 마네』
눈가루를 뿜는 바람이 뺨을 때린다.
그들의 언쟁을 힐끗 돌아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빙점하의 냉기탓인지 빨라져 가고있다.
석종은 진수의 초월주의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허망한 공산론 같기도 한 말투가 기질에 맞지 않았다.
『자네네 종교를 깎아내릴 욕심은 한푼어치도 없네. 하지만 암흑이니 종말이니 따위 극한적 낱말은 시기상조야. 젊은이답게 의욕에 부풀어서 현실에 뿌리박고 우벅차게 한번 살아보자구. 이 땅덩어리의 임자는 뭐니뭐니해도 사람이지 신이 아닐세』
『종말이란 말에서 생각이 났네마는 자네 세상 끝날이 언제인지 아나?』
그 말에 석종은 어리둥절.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를 하나? 내가 그런걸 알면 요모양 요꼴로 도시락 노예가 됐겠나? 세계를 주류잡는 대예언자나 점장이가 되지.』하며 신경질적으로 옆구리에 낀 빈 도시락을 저었다. 달그락거리는 젓가락소리가 귀에 따갑다.
진수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건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니 꼭 믿을건 못되지만, 재미있는 얘기니 들어보게. 지구의 종말 징조에 세가지가 있으니, 먼저 사람의 머리가 천사의 두뇌만큼 깨면 세말이 가까운 거고, 둘째로 유대나라가 완전 독립할 때이고, 끝으로 불심판이 내렸던 소듬 고모라 땅에 풀이 돋아나면 그렇다는 거야.』
『심심한 작자들이 꾸며낸 우화이겠지, 아마.』
『그거야 아무튼, 날이 갈수록 가속도로 따스한 정이 식어가고 살기 등등해져서 거리 한복판에 나서도 사람 저마다는 외딴섬의 에뜨랑제(異邦人)! 나날이 불안과 위기감이 더해갈수록 정신적인 것, 보다 인간적인 본연의 자세가 갈망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바로 거기에 종교의 존재성이 짙어지는 걸세. 마치 의사는 병자에게 더 필요한 존재이듯이….』
진수의 말에 석종은 동감은 가면서도 어쩐지 동조할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진수, 자네는 묘한데로 얘기를 끌고 가네 그려. 그래, 종교는 의사이고, 세상 사람들은 정신적 면에서 보면 병자란 말인가? 너무 독선을랑 말아주게.』
『그 옛날, 사람들이 빚어낸 어둠이 하도 짙은 나머지 빛이란 빛은 모조리 가려져 버려서 다시는 해뜰날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동굴같은 긴긴 밤의 연속-바로 그때에 메시아의 탄생! 즉 하늘 사랑의 적극적 간섭이(선의의 참여라 해도 좋아)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해마다 이맘때쯤 맞이하는 성탄도 그런 상징적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보겠네. 밤낮 부산하게 빚어지는 사건들-배신ㆍ살상ㆍ치정ㆍ흉악범ㆍ부정ㆍ부패상- 신문과 라디오를 더럽히는 온갖 너저분한 썩은내들이 칠빛을 빚어내어 영혼을 더럽히고 빛살을 갉아먹은 나머지 땅위를 마치 깜깜 지옥으로 바꿔칠 우려가 짙을때쯤 성탄이 재생되곤 하는 거라고 보면 어떨까? 그러기에 해는 다시 뜨고 새해가 오고 꽃나비는 제철을 만나는게 아니겠나? 쉘리의 노래같이 <겨울비오면 봄은 멀지않으리>식으로 말이야』
진수는 입에 침방울을 날리며 열을 올린다. 주춤했던 석종도 기를 써 대꾸한다.
『이거야 소크라테스식 변명이로군 그래. 자네는 그 추상적인, 확실치 않은 미래의 천국을 구가하며 실속없는 신앙이나 신주처럼 실컷 움켜잡고 살아보라구. 나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야. 맘몬(돈)이야말로 현대의 신 아닌가?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떡하면 편히 잘 사느냐에 나의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네. 산 사람 코 베어가는 세상에 확률도 희박한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입은 동여매두고 살잔 말인가?』
『어떻게 하면 잘 사느냐의 열쇠를 돈에 두다니 자네도 원참! 요즈음 도시인들은 너무 발등만 굽어보며 곱사등같은 생활을 하고있는게 안타까우이. 눈을 똑바로 앞으로 위로 향하고 좀 더 시야를 넓히면서 살아가주었으면 다행이런만…. 가끔은 하는 우러러 티없이 맑은 그 푸르름을 눈동자에 물들이는 버릇을 지녔으면 고달프고 따분한 인생살이가 얼마나 윤기있어지겠는가 말이야. 한치 앞밖에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이 숱하니까 툭하면 정신적 교통사고 연발이지 뭐야.』
『여보게 이슬만 빨아먹고 사는 이상주의자 나으리, 자네같이 한눈 팔고 멍청히 먼데만 바라보고 길을 가다가는 진짜 교통사고감이야. 잘 듣게. 쌀독이 바닥났다고 마누라의 바가지가 성화같다면서 자네는 여전히 소금기 빠진 공상가인가? 돈벌 궁리를 않고…. 세상에 자네처럼 철딱서니 없는 낙천가는 처음 보겠네.』
『장미줄기같은 소릴 그만해두게. 배금(拜金) 사상은 구역질나네. 돈이면 다안가? 높은 자리면 그만이란 말인가? 몇천년 누릴 거라고돈 돈, 지위 지위의 노이로제 환자 투성이니 이거야 현기증이 나서 정신 차리겠나? 두고보게. 사람들이 아웅다웅 파닥이다가 돈에 물리고 자리에 신물나할 때가 올것이니…그때가 되면 자연히 현세 아닌것 인간 이상의 것을 찾기 마련이란 말이야. 거기에 사람된 영예와 고뇌가 있는거야.』
『몇만년 후에나 그럴때가 올는지? 그따위 실없는 백일몽은 그만 꾸게.』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나직이 되뇌이던 진수는 석종을 돌아보며 다정히 소곤거렸다.
『정녕 이웃끼리 민족끼리 천상적 사랑과 유대 속에 땅위에 결실한 날이 꼭 올걸세. 꼭 오고 말고. 자네는 잠꼬대라고 비웃지만 때로는 우연이 있기에 인생은 살 맛이 나는 것 아닌가? 기적적인 우연이…』
『이마 벗겨진 우연론자 탄생이라! 우연을 믿다가 손자 늙어 죽겠다. 원!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어? 요즈음 같아서는 자네같은 이상론자는 쪽박을 차고 길에 나서기에 안성 맞춤일세. 이 사람아! 정신 좀 차리게』
석종은 진수의 어깨를 툭 친다.
『헛허! 내 앞에서는 자네는 언제나 서당 훈장 행세네마는 내가 말하는 우연이란 복권이나 투기성을 띤 요행수 놀이가 아니야. 필연적인 우연! 원인과 과정을 거친 놀라운 결과- 그 결과가 비약적인 것 말일세』
『이거 점점 고등수학으로 들어가는군. 뭐 필연적인 우연이라구? 필연과 우연은 서로 180도의 위치에 서있는데 이건 밤과 낮을 한 그릇에 나란히담으려는 심뽀지, 될 법이나 할 말인가? 불 피우고는 물 붓고, 그 위에 다시 불 피우고- 이같은 연자방아 사고방식은 딱 질색이야』
석종은 발뿌리에 걸리는 돌멩이를 세차게 차 버렸다.
진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네는 너무 에누리 없고 물기 없어서 탈이야. 사람이 어찌 매사마다 1+1은 에누리 없이 2가 돼야만 끄덕인단 말인가? 때로는 0도, 100도 되는 수가 있어야 사는데 스릴이 있지 않겠나?』
『이봐 진수, 자네 마누라는 주름살 깨나 늘겠네. 뱃속에서 쪼로록 소리가 나도 이쑤시개를 물고는 허공만 쳐다보며 헛기침을 하고 딴전만 피우는 남편을 그래도 태양이라고 받들어야 하니 딱도 하지』
『값싼 동정은 접어두게. 우리 발뿌리는 비록 땅에 박고 살지만 꿈은 높이곰 치솟아 흰 구름 휘어잡고 영혼은 비룡처럼 구만리 장천을 활개 치면서 살아야할게 아닌가? 자네는 날이 날마다 흙탕속에서만 질척이지 말고 좀 형이상학으로 살아보게나』
둘의 발걸음은 어느새 도심지를 벗어나 삼청공원 어귀로 꺽어 들었다.
『구름잡는 실속없는 생활태도는 개에게나 주게. 난 필요없네. 자네의 밑둥없이 무지개같은 삶은 요즈음 세상에서는 통하질 않으이. 내가 자네흉내를 냈다가는 처자식 굶겨 죽이기가 심상일세』
발밑에서 낙엽이 사각거린다.
『사랑은 제 먹을 몫을 타고난대. 설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라구. 무릇 목숨있는 존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예외없이 이 낙엽처럼 되고 마는것- 어언간 가야할 목숨이라면 너무 현실에만 악착할 것이 아니라, 값다이 후회없는 삶을-영원을 점찍는 차원 높은 삶을…』
진수는 말을 뚝 그치고, 유난히 파아란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저 하늘만이 변함없는 우리 마음의 옛집 아닌가? 저고요 저 푸르름 속에 온갖 꿈이 보람이 다 깃들어 있다네』
『스물 네시간 내리 눈알을 부릅떠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세상에 자네는 참 뱃속편한 아웃사이더일세. 부러우이』
『현실에 얽매일수록 시야는 좁아지는 법. 요즈음같이 각박한 시대일수록 한조각 마음의 여백을 마련하면서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따스한 체온을 남에게 옮기는 미덕을- 우중충한 빌딩의 밀림! 그 사이 사이에 한그루 상록수 구실을 하는 이들이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에야 말로 진정 그리스도는 탄생하시는 거라네』
『미신자인 나에게는 신자에게만 오시는게 아니야. 모든 이에게 샅샅이, 비록 신을 원수로 여기는 이들에게까지도 따쓰한 햇살같이 오시는 거야. 그들이 그걸 의식하건 못하건을 불문하고…』
들으면서 석종의 입가에 쓴웃음이 어렸다.
『원수를 사랑한다 이거로군. 그리스도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신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실감하느냐 말이야』
『하느님이 물질적 형태를 갖춘 존재가 아니라서 흔히들 없다고 우기지만 그분의 현존을 가끔 절감할 때가 있어. 보이진 않아도 공기의 존재를 부인 못하는 것과 매한가지로 어떤 때는 마음 밑바닥에 차분히 울려오는 속삭임으로 때로는 위기감속에 경종을 울리며 자기를 나타내기도 한다네』
『내게는 아직 그런 느낌의 경험이 없는 걸』
『때가 오겠지. 자네를 위해 빌겠네』
『고마우이. 우정어린 자선사업가여』
『성탄이 임박했으니 우리 모두 마음속에 조그만 요람을 마련하여 하늘아기를 맞아들일 채비를 해야겠어. 희생ㆍ봉사ㆍ자선의 꽃을 장식하여서…』
『그건 자네네 신자들이나 할 행사이지 우리야 제3자이지 뭐』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리스도는 결코 신자의 점유물이 아닐세. 크리스마스가 인류의 축제이듯이 그리스도는 40억 저마다의 손님이라구』
저 앞 골목길을 질주하던 자가용차가 옆골목에서 달려나온 소년을 치고는 싣고 달아난다.
『쯧쯧! 아까운 목숨이 또 하나 부서졌군.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란 말이야. 백년 뒤에다 과녁을 맞춘 종교는 아직 열중쉬어일세. 내게는…』
석종의 말을 진수는 이내 받아넘겼다.
『언제 죽을지를 모르니까 더욱 천년지계를 세워야 한다 이거야. 현세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자네도 깨달을 날이 올거야. 빌겠네』
삼청공원 어귀에 앉아서 길가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중년여인의 등에 업힌 아기는 맨발에 때가 괴죄죄한 샤츠바람이다. 석종이 장난기 어린 표정이 된다.
『자 인심 두툼한 박애주의자 나으리 저 헐벗은 양에게 온정을…』
『이 친구야 또 놀려대긴가? 짓궂은 심술통 같으니라구.』
비식웃고, 진수는 호주머니를 뒤진다. 백원 한장 여인의 손에 얹어준뒤 목도리를 벗어서 업힌 애의 목에 감아 주고는 볼이 발그레해진채 걸음을 옮기며
『자네 덕분에 위선자 행세를 해보네 그려.』
『됐어! 됐어. 종교는 실천속에 생명이 있는 걸테지.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덕은 외롭지 않은것, 어김없이 동지가 생기게 마련 아닌가. 그래서 차츰 교는 퍼지는 걸거야. 기왕이면 자네 양말도 벗어서 저 애 발에 신겨주시지 그래. 헛허!』
『거 농담을랑 작작하게. 이 양말은 커서 맞질 않아. 게다가 발똥내가 지독하고- 자네와 함께 가다가는 사람 벌거숭이 되기가 심상일세.헛허허!』
어느덧 땅거미가 끼고 색색의 네온사인들이 밤거리를 수놓기 시작했다. 삼청공원 작은 산등성이에 올라선 진수는 하나둘 창문을 열고 바끔 내다보는 아기별을 헤아리고, 석종은 눈아래 펼쳐진 네온의 거리를 멀거니 바라보며 잠시 말이 없다.
『나도 자네 물이 들었나 보이. 어찌보면 서울거리의 모든 네온들이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룬 오색등이라는 생각이 퍼뜩들면서 거리의 저 온갖 소음들이 크리스마스 캐롤로 착각이 드니 이거 탈인걸. 헛허!』
『이제야 자네 머리도 바로 잡혀가는 증걸세. 핫핫핫!』
둘의 통쾌한 웃음이고 조군한 공원공기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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