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하느님의 온전하고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데에 신명을 다 바쳤다. 그분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설교, 생활 방식과 태도, 삶과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을 계시하였는데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몇 가지 면모를 보여주었다. 말씀과 행적 즉 비유와 기적들을 통하여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들을 계시하였는데, 이 계시는 하느님의 면모들을 밝혀주었다. 우리는 이 면모들을 고찰함으로써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신ㆍ구약의 종합
우리는 가끔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을 대비시켜, 전자는 엄격하고 화를 내는 심판관-하느님이신데 반하여 후자는 너그럽고 인내하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라고 단정한다.
이 같은 대비는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지만 이미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야훼 역시 『자비와 은총의 신』(출애 34,6)이며 그리스도 역시 경직된 율법주의에 준엄한 태도를 보이고 하느님의 심판을 천명하였다. 그 같은 대비는 신ㆍ구약에 통틀어 나타나는 하느님의 진면모를 왜곡시키는 위험한 단순화이다. 대조는 종합에 비추어서만 제구실을 다한다. 한 자녀의 인격 성장에는 대조되는 모성애와 부성애가 필수적이다. 무조건적인 모성애가 자녀를 온유하고 조건 없이 베풀 줄 아는 인격으로 만들며 엄격한 부성애가 자녀를 강직하고 정의감을 가진 인격으로 형성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이같이 대조되는 부모의 사랑은 자녀의 인격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ㆍ구약에 일관되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과 관련하여 자비와 정의를 동시에 구비한 온전한 사랑으로 계시되었다. 예수는 대비될 수 있는 신·구약의 하느님 모습을 통합하여 결정적으로 계시하였다.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아버지 사랑과 어머니 사랑이 자녀의 인격 안에서 통합되어 계시되었다.
신ㆍ구약을 관통하는 하느님 이해의 관건은 계약이다. 초월적인 하느님이 계약의 체결을 통하여 인간을 만나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로 내려옴이다: 『나 이제 내려가서』(출애3.8). 내려옴은 당신을 낮추고 제한시키는 것이다. 그분은 아버지로서 사람들을 자식처럼 대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 사람들과 정열적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로운 사랑에 항구적으로 응답하기를 요구한다. 질투는 인간의 충심을 촉구하는 하느님의 불타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분은 정의의 요구로 인간을 질책한다. 이 같은 계약의 하느님이 인간을 결정적으로 방문하고 인간과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세상 한 가운데로 파견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엠마누엘(Immanuel: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별명을 얻었다.
참신한 신 체험
예수의 하느님 이해와 체험은 이스라엘의 신앙위에 바탕을 두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사악·야곱의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으로써 살아있는 자들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곧 부활신앙을 확인하였고(마르12.26~27),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근거로 하여 첫째가는 계명 및 이에 못지않은 이웃사랑의 계명을 역설하였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과 목숨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마르12.29~31:신명6.4~5). 또한 예수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촉구하였다:『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마태6.30~31). 계약·역사·창조·위격의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은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신앙 안에서 요약되고 집대성되었다. 예수에 의한 아버지-하느님의 계시는 구약의 하느님 모습을 참시하게 또 총괄적으로 집약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계시하고 섬기다가 비명에 갔다. 그분의 생활 태도와 방식 즉 온 삶을 결정지은 것은 그분의 특유한 하느님 이해와 체험이다. 너무나 강렬한 신 체험 때문에 그분은 평화와 기쁨과·자유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설교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느님을 죽도록 섬겼고 인간을 열렬히 사랑하였으며 또 당대의 그릇된 신 이해를 비판하였다. 예수 당시의 율법주의는, 자비보다는 심판을, 은총보다는 계명 준수를 더 앞세우는 하느님에 대한 이같이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수는 율법주의에 일그러져 있던 하느님의 참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충돌과 위협을 감수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그릇된 신 이해와 예수의 참신한 체험의 구별 때문에 충돌이 빚어졌고 예수는 죽음을 회피할 수 없었다.
그분은 전적으로 새롭고도 혁신적인 하느님의 참 모습을 계시하였고 이 모습에 따라 처신하였으므로 유대인들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하느님을 이해한 그분의 신체험은 구약의 것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그 당시에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결정적 계시
하느님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써 결정적으로 계시되었다. 죽음 안에서 하느님은 인간이 목숨을 다 바쳐 사랑해야 할 분으로, 또한 아들을 희생시킬 만큼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는 분으로 나타났다. 부활로써 하느님은 의인의 고통에 끝내 보답하는 정의의 하느님으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생명의 하느님으로 당신을 보여주었다. 또한 부활로써 아들과 영과 함께 영원히 계시는 하느님으로 계시되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성령 안에서 부활시킴으로써 그분으로 하여금 영을 주는 분 곧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다. 지상의 예수에 의해 아버지로 계시되었던 하느님은 그분을 영 안에 다시 살리어 아들로 입증해줌으로써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 당신을 결정적으로 보여주었다. 부활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을 세상에 파견함으로써 하느님은 아버지·아들·영임을 계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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