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소리 외면 말고 선구자 구실 다하길
가톨릭시보는 한국천주교회의 유일한 주간지이므로 크게 발전이 있기를 바라며 그간 많은 공적을 쌓아온 것은 높이 평가되어야한다. 그러나 한 독자로서 율직한 소감을 털어놓으면 우선 관보식 체취가 지나친다. 물론 기관지이니 그럴사하지만 시대적 감각이나 거시적인 안목에서 천주교의 발전에 대한「아이디어」가 뚜렷하지 않은 듯하다. 가톨릭 기관지라는 범주에서 제약된 흥건을 생각한다면 교황청 소식 사제의 인사 교회나 수녀원의 건립과 동태… 의 관보식 편찬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다고해도 상의하달식 일변도의 태도는 독자에게 「아필」할 수 없다고 본다. 더구나 독자의 대부분이 교우인데 독자의 소리가 소외되고 있는 듯 함은 유감이다. 오늘의 천주교회는 결코 보수적인 어제의 것이 아니라 시대성에 가장 예민한 체질개선으로 나가려는 이 시점에서 가톨릭시보가 과연 선두에서 달리고있는지 궁금하다. 여기서 독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여러모의 대화의 광장도 마련되어야 한다.
작금에 들어서 느끼는 것은 본당에 따라서 구독금지를 내세운 곳이 있다는 소문인데 이러한 편협한 반응에 시보가 다소 위축된 느낌이 난다. 높은 차원에서 용기를 내어 보수편협ㆍ고식… 앞에 허리를 굽히지말고, 내일의 진정한 천주교회의 발전에 선자의 구실을 자처하기 바란다.
새해에 바라는 것은 많지만 우선 특집문제를 설정하고 국내는 물론이려니와 세계의 천주교회의 이모저모나 문제점을 들고, 보다 깊이있는 대화로 독자를 계몽하기바란다. 지금까지의 로마 기사로는 실감이 날리가 없고, 독자는 생동하는 가톨릭의 세계 사정에서 격리될 우려가 있다. 시보사 편집부 제씨의 고심도 크리라고 믿으나 장차 밀어닥칠 시대사조에 대비할 그 무엇을 시보에서 일깨워주어야한다. 시보가 짊어진 사명은 한국이라는 풍토에서 또는 현대라는 시대성에서 힘에 겨울지 모르나 건투를 빌 뿐이다.
(서울대학 교수) 이숭녕
■ 기술적 과오는 이해 방향감각 뚜렷해야
물질문명의 발달에 비례하여 퇴폐일로를 치닿는 정신풍토 속에서 사람들의 사고 속에 신을 불어넣어줌으로써 형제들로 하여금 창조의 뜻에 마땅한 생활을 하도록 권유함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불리운 우리 모두의 임무이다.
따라서「매스ㆍ콤」의 지배아래 사는 현대에 있어서「매스ㆍ메디아」로서의 시보의 임무는 효과나 기능면에서 크다고 하겠다.
그간의 노고와 공헌에 경의를 표한다. 지금 교회는 내외로 많은 도전을 받고있다.
즉 반신학적인 사조와 정의와 진리의 가치를 무시한채 비도덕적인 생활을 합리화하려는 풍조는 신앙생활에 커다란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안으로는 신자들 신앙생활의 길잡이로서 밖으론 진리의 대변자로서 해야할 일은 많고도 벅찬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보아온 시보는 이념이 부족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뚜렷한 방향감각의 결여를 뜻한다.
편집상의 기술적인 과오는 이해될 수 있을지라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 것인지를 얘기하지못할 때 독자는 실망을 느끼게된다.
무엇이 어떻다는 전달도 주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토론하는 대화의 광장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을까?
교회는 쇄신의 도정에서 심한 진통을 겪고있다.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형성과정에서 우리에겐 밝은 눈과 이해와 앞을 생각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구체적인 사실에 집착하여 비판하기에 앞서 시보는 문제점을 발굴하여 제시함으로써 교회가 나갈 길을 찾는데 적극적이고도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립의 문턱에서 안간힘하는 한국교회가 이 땅에「빛나는 진리의 생명」으로 약동하는 사회를 이룩함에 기여할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데 앞장서야할 것이다.
<중림동 주임신부> 박병윤
■ 여교우에 더 관심을 국내기사 더 실어야
내가 가톨릭시보를 처음본 것은 아마 십여년전 일이라고 생각된다. 예수회김태관 신부님의 전화가 여러 번 오는 중에 가톨릭시보 이야기가 나오고 순보(旬報)를 주보(週報)로 고치느니 공보처의 인가를 받느니하고 수개월 동안 이야기가 왔다갔다 할 때 대구에서 시보가 우송되어 왔었다.
그후 주간으로된 시보가 지금까지 계속보내오기 때문에 가톨릭시보 애독자가 된 셈이다. 교회소식이나 축일날자 교황청의 소식 등 토요일 저녁이되면 가톨릭 시보를 들도 앉아서 보게된다. 교회신문으로서 단 하나인 가톨릭시보이기 때문에 궁금한 교회소식은 오직 가톨릭 시보를 통하여 알아왔다. 지금까지 시보를 보아온중에 바라고 싶은 것은 일주일을 두고 보는 신문이니만큼 좀 지면을 늘려서 교우들이 배워야할 일은 물론 알아야할 일을 좀더 많이 그리고 빨리 실렸으면 한다. 종교란 다 그렇다지만 우리 천주교 역시 부인신자의 비중은 가볍지 않다. 가정을 지키고 들어앉아사는 형편이라 가톨릭시보는 가장 정독을 하게된다. 부인신자를 위하여 가정란을 좀더 다채롭게 꾸며주었으면 한다. 부인신자들의 수필 특히 신앙에서 얻은바 소감같은 것을 널리 구해서 실었으면 좋을 것 같다.
각 본당에 통신원을 두고 특기할만한 사실이 있으면 신속하게 보도함으로써 모든 교우들이 읽고싶어하는 시보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지면은 너무 가지수가 적고 기사가 길며 논평과 외신에 너무 치우치는가 싶다. 또한가지 전부는 아니지만 교회행사인 경우 지난 것만을 싣는 경우가 많다. 손이 부족한 탓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각 본당을 돌아다니며 새 소식을 알아서 보도하는 취재기사도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
(가정주부ㆍ이서구씨 부인) 김인옥
■ 시대사조에 둔감 좀더 폭넓은 발언을
가톨릭시보 지령 7백호에 부쳐 교회의 신문으로 그동안 많은 공헌을 해온 것을 감사하며 앞으로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신문을 대해오며 그안에 나타나는 차겁고 메마른 사람들의 현실을 볼 때마다 우리를 좀더 진실한 신앙에로 이끌어 줄 수있는 교회출판물을 기대하곤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체계있고 손쉽게 대할 수 있는 서적들이 풍부하지 못함을 발견하곤 실망을 느낍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대하는 시보를 볼 때마다 우리의 이 바람이 조금은 채워지는듯 하지만 우리교회가 보수적인 성격을 띄우고 있는 것과 같이 시보역시 그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을 느낌니다.
더욱이 하루가 멀게 변천하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겪어야하는 정신적인 고통하루를 살아가는 육신의 욕망과 신에게 귀착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신앙은 심한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보는 이러한 젊은이들을 거의 외면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회를 휩쓰는 성(性)문제라든지, 산아 제한문제,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의식, 이런것들은 젊은 이들이 올바르게 느끼고 행동할 수 있도록 차근히 가르쳐주고 타일러 주는 사고형성의 안내자로서 시보는 뒤떨어진 느낌입니다. 우리는 사회속에 삶을 이어가는 사회일원입니다. 사회를 외면한 좁은 세계에서의 가치추구는 듣는이에게「메아리」만 될 수도 있습니다.
좀더 우리가 숨쉬는 사회속에 뛰어들어 그속에서 같이 호흡하는 신문이 되길 바랍니다. 종교, 그것도 천주교와 관련된 기사만 싣는다고 종교신문으로서 역할을 다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에 대하여 힘있게 발언하는 시보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홍익대 미술학과4년> 최선장
■ 「타이틀」정확하게, 보는 신문 만들어야
내 생각엔 신학생들처럼 가톨릭시보를 애독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신학생들은 시보를 깨끗이 읽고난 후 그것을 그대로 다시 접어 자기 가족이나 친지에게 보내어 그들이 그 시보를 또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이와 같이 철저한 시보 애독자중 한 사람인 나는 아무리 바쁜때라도 1면부터 4면까지 타이를 만이라도 꼭 보고있다.
전에 비해 볼 것이 많아 졌다는 것이 시보에 대한 신학생들의 정평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2년전만해도 해외소식을 제외하고는 과히 흥미를 줄만한 내용을 찾지못해 그저 서재 장식품처럼 차곡차곡 접어 놓는 것이 시보 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요즈음은 없어졌지만 한동안 게재됐던「통죽촌」란은 인기가 좋았다. 때론하고픈 이야기를 대신해 주는것 같은 통쾌감 때문에 시보가 오기를 기다렸고 시보가 오면 우선 그것부터 보곤했다. 이때를 전후해서 시보는 한국 가톨릭대 유일무이한 신문으로서의 제위치를 얻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시보에 있어서 지란의 대상이 되는것 중 가장 큰 것은 미스를 많이 내는 것과 기사내용에 정확한 타이틀을 붙이지 못하고있는 점이다. 따라서 타이틀만 읽어보고 그 기사내용을 미루어 알아야할 바쁜 사람들에겐 시보가 신문으로서의 신뢰심이 없어지게된다. 앞으로의 시보는 현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매스ㆍ메디아」로서 그 본연의 역할인 교육자로서 또는 선도자로서의 임무 수행에 좀더 적극적이여야겠다.
뿐만 아니라 시보는 어디까지나 70만신도 전체를 위한것이므로 대중성을 잃지말고 어디편중되거나 어떤 압력에 구속되어서는 가톨릭「매스ㆍ메디아」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줄 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신문은 읽는신문이 아니라 보는 신분이 되어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시보는 예나 지금이나 사진게재를 소홀히하는 인상을 주고있다. 제한된 지면에 시보에 대해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적고보니 순서없이 나열된 것을 편집자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며 시보의 발전을 빈다.
(가톨릭대학 신학부 2학년) 오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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