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시보」는 한국교회의 유일한 신문인데 비해 시보 구독층은 각양각색이다.
「시보」는 이 복잡다양한 독자들의 기호와 요구의 「최대공약수」즉 기업상의 「의견일치」를 찾아 거기에 가장 근사한 신문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 공소에서 받는 「시보」- 김차두
시보조차 농촌 버릴건가?
부익부·빈익빈의 나라서 교회도 가난·무지 외면
일부 도시지식층 상대로 대중성없고
우선 지령 7백호를 맞은 시보를 축하한다. 아울러 시보를 오늘까지 키워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시보의 보람찬 발전을 기원한다.
소외 당한 농촌 버림받은 공소. 필자는 농촌에서 십여년을 한결같이 「가톨릭」시보를 애독해오고 있다.
그러나 시보를 대할 때마다 만족이나 흥미를 느낄때가 별로 없으며 기사 전체를 통독해 보는 일이 거의 없음을 나 스스로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시보를 위해 수고해 주시는 여러분에게 대단히 송구스런 말씀이나 가톨릭시보란 해독하기 힘들고 딱딱하고 재미 없는 신문으로 통하게 됨은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촌의 공소회장으로서 전교를 목적으로 십여부를 수년간 계속 배부하고 있으나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워서 모두 못읽겠다는 얘기이고 보면 가톨릭시보란 대중성을 상실한 일부 도시의 지식인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특수층만을 위한 신문이 아닌가 하는 오해마저 사게 됨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졸이상이면 모두 읽어서 알아들을 수 있고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좀더 대중성을 띤 시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첫째의 소망이다. 근자에 이르러 문화면은 전문적이고 어려운 기사가 간혹 있으나 폭넓고 다양한 편집에 호감이 간다.
그러나 1·2면의 변화없는 편집의 보수성에 싫증이 난다고나 할는지? 독자가 농민인 관계로 농촌문제에 관한 기사가 거의 전무함에는 서운함마저 금할 수가 없다. 경제가 고도로 성장해가는 한국내에 이방지대가 있다면 가난과 무지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농촌임에 틀림이 없을게다. 무지한 까닭에 정부의 투융자사업에서의 버림을 받아도 푸념한마디 못하고 살아간다. 이래서 말못하고 만만해진 농촌의 교회공소마저도 교회에서 버림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교회의 「매스·콤」에서 마저 농촌이란 아예 망각지대로 저버려지고 있으니 야속하기 이를 데가 없다.
「부익부 빈이빈 하는교회」,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현상이 교회를 둘로 갈라 놓는다면 교회내에서 먼저「제2의 경제개발」혹은 「사랑의 경제개발」「캠페인」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저 도시의 화려 웅대한 교회를 그리고 교희기관들의 어마어마한 시설들을 보라. 적어도 수백 수천 수억만원을 투자하여 호화 찬란함을 자랑하고 있지않은가? 그 변소간 시설하나만 가져도 농촌의 공소건물 하나쯤은 짓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농어촌의 교회와 공소를 보라.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면 너무 과장된 말일런지 모르겠다. 건물이라야 다쓸어져 가는 초가 오막이 아니면 움집이 태반이고 그나마 집회소도 지도자도 없이 방황하는 공소도 부지기수다. 이들이 얼마나 더한 아쉬움과 가난의 목마름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지 도시의 교회와 교회의 보도기관에서는 알고 있는지?
단돈 십원 이십원이 없어 성서나 잡지는 고사하고 기도서나 문답책을 못사보는 농촌의 신자들이 많다고 한다면 도시인들에겐 도시 실감이 나지 않는 얘기일 것이다.
개신교측에서는 농어촌의 교회를 위해 도시교회에서 특별헌금을 하고 서적을 수집하여 돕고 자매결연을 맺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우리 천주교회에서 이런 일을 하였다는 말도 못들었으며 읽어보지도 못했음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부익부 태양의 나라에선 호화로운 향연이 벌어지고 있을게다. 그 식탁에서 흘린 빵쪼각들… 그 빵부스러기만이라도 농어촌의 교회공소를 위해 던져간 일이 그 몇번이나 있었더냐?』
부디 가톨릭시보만이라도 이 불쌍한 천주의 백성들을 저버리지 말기를 기원한다.
■ 해외서 받는 「시보」 - 송명숙
교황 말씀 전문 게재했으면
가톨릭 윤리관·가치관 희박한 개인의견 등 있고
객지서 교회생활의 지침서
1964년 말부터 5년간 외국에서 「가톨릭시보」를 받아 읽으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된 점은 한국교회 소식을 정기적이고 계속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마련해주신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회가 가르치는 바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데에 제일 큰 등불이 되어 주었읍니다.
다른 아시아 지방교회 신문보다는 비교적으로 신속한 소식을 전해준데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의 시보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교황 성하께서 전 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전문을 실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가졌읍니다.
때때로 교황 성하의 말씀중에 중요한 점만을 추리어 낸 기사를 읽었을 때는 외국번역(전문)판의 내용과 비교하여 볼때 독자 주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전연 다른 내용으로 이해될 위험성도 엿보였읍니다.
「에뜨랑제·시절의 한여름」이란 기사가 얼마간 계속되었는데 그중에는 여가선용에 대한 교육적이고도 재미있는 기사들이 있었으나 몇몇기사들은 가톨릭신자로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윤리관이나 가치관념이 희박한 내용도 있어서 매우 섭섭하였읍니다.
그러나 일방적인 한구독자의 요구와는 달리 전 가톨릭신자와 시보구독의 원의가 있으신 분들을 위하여서 신문의 발전 향상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동시에한 가톨릭신자로서 우리의 시보발전에 대한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이 기회를 빌어서 신문이 나오기까지 수고하시는 여러 어른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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