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서울에서 교회나 신자들의 모임엘 가면 가톨릭시보에 대한 논란이나 시비를 자주 듣는다. 이것은 내가 그 신문에 논설위원이란 명색을 달고있기 때문에 일부러 들으라고하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여기다 저들의 대체적인 논란점을 종합해 보면
첫째 현재 가톨릭시보가 반교회적이요 반로마적인 기사를 많이 실어서 일반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혼미케한다는 경고(警告)요,
둘째 가톨릭시보가 발행지인 대구교구 편중(偏重)으로서 특히 서울교구에 대하여는 비판적인데 때때로는 중상(中傷)까지 하고있다는 불만이요
셋째 이상과 같은 폐단을 막기위해서 서울에다 초교구적이거나 또는 서울교구 단독의 가톨릭신문하나를 더 만들어야 하겠다는 논의(論議)들이다.
이러한 숙덕공론에 대하여 내가 여기서 가톨릭시보사의 일원(一員)으로 어떤 해명이나 반박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현상을 80만으로나 팽창한 한국교회와 그 안에 있어서 귀와 입이된 가톨릭시보가 이제 공기(公器)로서의 사명과 면목을 정녕 갖추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절실히 느끼면서 내가 보는바 몇가지 솔직한 소견을 제시하여 현재 운영을 맡은 교구 당국은 물론 일반신자독자들이 이해와 참고에 부응(副應)코자하는 바이다.
첫번째 제기되는 가톨릭시보 내용의 문제는 내가 보기엔 가톨릭시보 자체가 그 주장하는 바 논설이나 취재방향에 있어 절대로 반교회적이거나 반로마적일 수 없었을뿐 아니라 대체로 급진적 자세로도 임한 일이 없었다고 보며 오직 외국의 종교통신들이 전하는 소식들로 가톨릭내에 있어서의 혁신 또는 반동의 운동이나 사건 등을 게재보도함으로써 일부 보수적인 성직자나 신자들 눈을 거슬리게하고 있다 하겠다.
우리 주변에는「로마」의 새로운 개혁의 물결마저도 못마땅해하는 일부 완고한 전통주의자들이 있으니 이들을 위하여 우리가 우리 교회 내의 세계적 사건이나 소식에 그것이 좋건 궂건 눈멀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가톨릭시보가 취하고 있는 논설이나 보도가 위험성을 지니고있다는 논란에는 그 근거가 희박하다고 보고 찬성치 않는다.
둘째 발행지 대구교구 편중이라는 점에는 나도 수긍이 가는바 없지 않다.
그것은 역시 뉴스나 기고(寄稿)가 손쉽게 발행지 중심에서 채집되기 때문에 지면에 항상 그런 경향이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나타난다.
대구 발행처로서는 불가피한 현상이요 또 무의식적인 소위(所爲)지만 객관적으로 또는 선입관을 가지고 보면 특히 눈에 띈다. 그런데 서울교구에 대하여 중상(中傷)적이었다는 보도기사와 「까십」사건은 나도 알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자의 취재의식과 성직자의 성무의식과의 마찰과 상충이지 가톨릭시보의 교구적 편파심이 작용한 결과는 결코 아니다. 그 반증으로는 마찰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대구에서 파견된 기자가 아니라 현지의 서울교구 소속 신자들이라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기자의 직능적 의식과 교회 의식이나 성무 의식의 상충은 가톨릭시보를 서울교구가 운영한다하여도 일어날 일일 뿐 아니라 신문이 그 기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해 갈수록 더욱 야기(惹起)될 하나의 종교신문의 특수성이요 과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가톨릭시보가 이점에 있어선 내가 받아보는 타종교신문 「불교신문」이 「크리스찬」신문보다도 교회의식이 월등으로 견고하여 거의 교회내의 「스캔달」이나 실책 등엔 눈감고 있는 격이어서 이런 보도의 오류(誤謬)때문에 불매동맹(不買同盟)을 일으킬 사태는 결코 아니요 이는 부분적인 감정처사라고 본다. 셋째 이러저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초교구적인 신문을 만들어야한다는데는 나도 원칙적으로 대찬성이지만 서울에 가톨릭신문을 새로 또 하나 만들어야 하겠다는 주장에는 반대다.
현재 가톨릭시보 하나만도 그 인쇄를 대구 「매일신문」에 의존하면서도 그 경영이 적자(赤字)를 내고있는 상태인데 거기에 또 하나가 나와 독자를 양분시킨다면 이는 그야말로 상잔(相殘)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만일 그 지면의 경쟁이 교회내 보수와 혁신의 대변지 같이 양립한다면 언뜻 이상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교회내 교구와교구, 신자와 신자 사이에 분열과 대립을 초래하여 그야말로 교회관이나 신앙생활의 혼미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외국에서 교회신문이나 각 교구의 기관지들이 얼마든지 정립(鼎立)해있음을 나는 듣고 알고있지만 우리 한국 교회는 시기상조라고본다.
이렇게 따져볼 때 현실적 제안으로 현 가톨릭시보가 서울로 그 본사를 이전하여 발행하는 것을 최상책으로 안다. 물론 가톨릭시보가 교구 소재지를 떠나기에는 시설, 건물, 재정 등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난점과 애로가 있을줄 아나 이를 단계적으로 극복해 가면 서울에 본사를 두고 전국적으로 취재, 업무망을 재정비함으로써 오는 그 전망적 성과와 비해볼 때 이의 단행을 권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기 위하여서는 오늘날까지 신문사 인사에 있어서 마치 주간(主幹) 신부가 외국서 돌아와 1·2년간 국내 교회정세를 파악하기까지의 대기소같은 인상을 불식하고 주교좌본당 이상(?)의 중요성과 책임을 가지고 이에 임하도록 하여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일을 가지고 이 대임을 수행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렇듯 서울에서 발행케되면 이제까지 편집제작의 낙후(落後)성도 인재의 수월한 보완(補完)으로 자연히 해결될 줄로 나는 본다.
이러한 서울 이전안이 교구 당국으로 볼 때 무리한 것이라면 제2안으로서 주교회의에서 의논이 되어 중앙협의회나 혹은 어느 수도단체에 위임하여 발행하는 것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교회 내부 사정에 어두운 한 신자의 희망적 요청임을 부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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