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이천환 주교가 대전서 있는 한 가톨릭 신부들의 모임에서 행한 한국에서의 교회일치 문제에 관한 강연을 초한 것이다. <編輯者註>
우리의 교회가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우선 한국인의 교회 말하자면 한국인의 주체적 혹은 창조적 노력으로 이룩된 교회를 가져야하겠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생활해 온 한국 땅의 교회는 한국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섭섭한 일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는 한국인의 자주적 교회라기보다 서구인의 오랜 선교정책과 그들의 역사적 유산을 그대로 반영하는 교회였다.
이 사실을 좀더 깊이 생각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 혹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각 교파간의 특이한 전통을 주장함으로써 한국교인의 교회란 설립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각이한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새로운 어떤 민족적 교회개념을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어떤 서구인(西歐人)은 우리 한국이나 한국교회에 대해서 물을 때 자기가 소속한 어떤 특정한 교파개념(敎派槪念)을 위주로 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교파적인 특이성보다도 세계안에서의 한국교회의 특이성을 알고싶어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한국의 역사적 정황(情況) 혹은 한국교회만이 갖는 역사적 현실을 묻고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 교회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한국의 천주교 혹은 한국의 성공회 혹은 한국의 장로교 등등··· 교파적 특이성을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로마」나「칸타베리」나「제네바」의 역사적 근거를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보다는 우리한국인들이 모두 공감하고 함께 경험하는 각박한 역사적 현실을 이야기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한국 땅에서 갖는 오늘의 어떤 의미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너무도 필요 없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또 그 관심이 지나쳐 분열을 조성하는 일에 분망했다. 그러한 결과는 사회의 빈축을 사게되었고 일반 민중을 향해 퍼져가야할 복음의 의미는 편협한 교리논쟁으로 울타리를 높이는 경쟁만 해왔다. 오늘의 일반 민중이 교회 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이유도 다분히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교파주의적 요소를 한국이나 후진교회에 있어서는 종교사대주의적 요소라고 규정짓고 싶다. 사례주의의 정신이 한국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은 어느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역사적 혹은 한 강대한 세력에 의존하려는 심리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일지 모르지만 종교부면에서까지 종주국(宗主國) 전통을 숭상하여 사대주의에 빠진다면 너무도 한국교회는 뒤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당연 한국의 교회 다시말하면 한국인의 깊은 언어를 대변하는 종교적 표현이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성공회 신자들은 아직 영국교회의 선교시대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자주정신과 주체적인 창조정신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근 80년간 선교정책의 잔재는 좀처럼 속히 해소되지 못한다. 이러한 선교시대의 잔재가 교회의 진정한 생명성장에 얼마나 방해가 된다는 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행히 최근 교회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혁명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낡고 굳어진 옛 것은 분석 검토되고 새로운 구상과 이해를 구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맹목적인 제도적 모방이나 답습은 이제 더이상 생명력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새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가 새롭게 형성되어야 한다는것은 때에 맞는 생각이라고 본다. 우리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어떤 역사적 제도나 혹 예식보다도 주님의 수난을 경험하는 비극의 한국정황을 함께 이해하며 이에 참여한다면「에큐메니칼」정신은 물론 한국의 정치세계까지도 지도할 수 있는 힘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교회분열을 일삼는다면 한국은 결국 교회때문에 큰 비극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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