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의 주보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발자취가 담긴 곳을 방문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곳에서 성인은 1837년과 1839년 두 번이나 마카오민란을 피해 마닐라 도미니꼬수도원 농장으로 피신하셨다. 성인 동상 앞에 기도드리고 김 신부님께서 파파야나무 밑에서 편지를 읽으셨던 그 나무 밑에 앉았다. 우리들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성인 동상이 서있는 이곳은 원래 도미니꼬회 수도원농장이었는데, 그후 필리핀 한 부호의 소유지로 바뀌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곳에 목 없는 사람이 도포를 입고 가끔 이 뜰을 거닐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개들이 질겁하여 짖었고 그 집에 고용된 가정부는 무서워서 그 집을 떠났다고 한다. 성인의 동상이 세워진 뒤로는 거닐음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 때문에 이집에서 약 5백m 떨어진 곳의 필리핀성당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이 성당에 갓을 쓰고 두루마기에 빨간 영대를 하신 김대건 안드레아 상이 성당좌측에 모셔져 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조배드릴 때 이상야릇한 긍지와 기쁨이 우리 가슴을 엄습해 왔다.
이제 성인동상이 세워진 곳은 모레스타 멘도사라는 할머니의 소유지로 되어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마침 집 앞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녀의 딸도 동석해서 우리와의 의사소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멘도사 할머니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고 같이 앉아 손잡고 사진도 찍었다. 또 할머니가 주신 카스테라도 맛있게 먹었다.
마침 10여명의 동네여인들이 와서 우리일행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민요 노래자랑을 했다. 우리가 「아리랑」「사랑해 당신을」 등을 합창하자 그들은 필리핀민요와 성가를 불렀다. 뜻깊은 오후 한때를 보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 우리들 옆에 서서 빙그레 웃고 계시는 것만 같았다.
목 없는 유령(?) 이 거닐었다는 곳이 마카오의 한 공원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전설을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여겼다. 하지만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해왔었다. 그 일이 너무나도 뜻밖에 필리핀 상령세미나 중에 이루어 질 줄이야! 주님의 신묘하심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나에겐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선물이며 뜻 깊은 하계휴가였다. 『야훼이레, 주님!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8월2일, 9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동안 정들었던 마닐라를 떠나는 날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민박한 이벨라도 형제 내외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나갔다. 신부님과 3명의 형제분들이 벌써 출영나와 있었다. 오전 8시 비행기였는데 출국수속은 너무도 천천히 진행되었다. 우리들의 짐이 많아서인지 맨 나중에 출국수속을 하는 것 같았다.
출발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세관원은 중국인 부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후 차례가 되었는데 세관원석에 앉은 필리핀 청년은 우리 짐을 보고 미국인 책임자에게 사의하러 다니면서 우리 일행의 짐 싣는 것에 난색을 표시하였다. 대뜸 몇 페소아나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주머니 속 필리핀 돈 전부를 내 놓았더니 마지못해 하며 과태료로 받는 것 같았다.
전해주는 탑승권을 들고 세관으로 달려갔으나 여자 몇 분이 입국시 기록한 녹색종이를 잃어버려 수속이 정지당했다. 내가 달려가 입국시 기록사항을 다시 기재하고 있는데 마지막 탑승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기록해주었는지 모르게 일행들과 숨차게 달려가 가까스로 탑승을 했다.
안내원이 우리들을 2층으로 인도 했는데 난생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실내는 넓고 시원했다. 안락한 의자에는 우리일행 8명 외에 5~6명만 탑승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특석이었다. 신부님과 마닐라 한인교회 형제자매님들의 깊은 배려를 느끼며 우리 모두는 누가 시키지 않았으나 손에 묵주를 들고 있었다. 창공 속을 날으는 비행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께 감사와 구원의 기도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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