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은 지난 9월 11일 국회본회의에서의 특별연설을 통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단일국가로 통일되기 위한 과도적 통일체제로서 「남·북 연합」체제의 구성을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즉, 그 최고 결정기구로 「남북정상회의」를 두고 그 산하에 쌍방 정부대표들로 구성되는 「남북각료회의」와 양측의 동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남북평의회」의 설치를 제의하면서 이를 우해 가능한 한 빨리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본격적인 남북협력통일의 시대를 열 「민족공동체헌장」에 합의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 「새로운」통일방안은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1952년에 동독이 서독에게 제안했던 국가연합안을 연상케 한다. 국제법상 「사실상의 승인」개념을 전제로 한 「남북정상회의」「남북각료회의」및「남북평의회」의 수성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한 간에는 이미 1972년에 「자주·평화·민족의 대단결」을 통일의 3대원칙으로 수용했던 남북7·4공동성명에 합의한바 있었다. 북한이 「민족의 대단결」을 「외세배격과 주한미군철수」라는 뜻으로 역선전하면서 이미 합의했던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번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는 「자주·평화·민주」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남북한의 통일정책과 통일방안들을 에워싼 개념적 대결과 교류의 전개양상 속에 남북한 상호간에 사실상 승인(承認)분쟁이 가로 놓여 있음을 본다. 달리 말하여 적어도 남북한 간의 「관계정상화」와 민족적 협력형태(이른바 「민족의 단결」)의 창출을 위한 기본전체가 「사실상의 승인」개념에 있음을 말해준다.
1972년 동북아의 가장 냉전적인 지역인 한반도에서 「남북7·4공동성명」에 합의했을 때, 바로 그에 앞서 같은 해에 동서독 간에는 이 두 독일국가간의 관계정상화를 초래할 기본조약이 발효했다.
그 기본조약의 전문(前文)에는 두 독일국가는 민족(통일)문제에 관한 합의없이 장점협정으로서의 기본조약에 합의한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자본주의적」독일국가와 「사회주의적」독일국가 간에는 거의 20년 이상 동안이나 -남북한의 경우는 그 두 배 이상이 그치지 않았었다. 그 분쟁의 핵심이 되었던 것은 서독만이 전 독일인을 대표한다는 이른바 단독대표권 요구였다. 그러한 요구는 동독의 국가적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승인분쟁은 공식적으로 기본조약의 체결로 끝났다. 이 조약의 체결을 위해 1969년 총선결과 서독수상이 되었던 브란트는 「독일에는 두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이 두 독일국가는 상호 「외국」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었다.
두 독일국가간의 승인분쟁은 서독이나 동독에 의해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동서관계의 진전, 특히 미국과 소련의 현상유지정책에 의한 것이었다. 즉, 통독정책(統獨政策)의 위기는 핵비김수로 말미암아 세계강대국들이 군사적분쟁의 위험에 의해 그들의 정치적 행동반경의 좁은 한계와 그들 자신의 생존적 위협을 분명히 의식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뿌리내렸다. 강대국들이 서방과 동구간에 협조방법의 키를 잡았을 때에 두 독일국가도 새로운 방향전환을 강요당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서독의 내동성장관 후랑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독정부가 이 기본조약을 체결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기본사실이 있다. 그 하나는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분단이고, 다른 또 하나의 사실은 현상의 기초위에서 유럽에 있어서의 국제적 긴장완화라는 사실이다』
1983년 11월 12일 당시 미국대통령 레이건은 한국국회에서 행한 그의 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증진을 위해 남북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 후,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또 그들 국가 및 그들 맹방간의 관계개선을 위한 단계적 조치들을 지지할 것』이라 천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북한은 1984년 1월 11일 「3자회담」의 개최를 공식적으로 되풀이 제의했다. 그렇지만 미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3자회담에 앞서는 선행조건인 것이다.
동독이 국제법적 승인을 요구하고 나섰던 동서독의 경우와는 달리 남북한이 서로 국제법적 승인개념을 요구하지 않은 채 사실상의 승인개념에 입각한 국제법적효력을 지니는 남북한 간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잠정협정에 합의한다는 것은 민족협력적 공존형태로서의 국가연합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경우 문제는 국제법적 효력을 지니는 구체적인 협력형태에 합의하느냐가 문제이며, 이러한 합의가 동서초강대국들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즉, 어느 경우는 그러한 합의는 워싱턴과 모스크바에 있어서의 긴장완화 욕구들과 모순되지 않는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경우 「불관여」(disengagement)의 프로그램들이 긴장완화의 목록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볼 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불관여」가 긴장완화의 시작일 수 없고, 긴장완화과정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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