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찾아온 사람은 그녀의 친정 어머니였다. 딸이 열심히 다녔던 직장도 안 나가고 실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거의 2~3일째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고 있단다. 그녀가 친정으로 복귀(?)한 것은 며칠이 안 되었다. 물론 면목도 없고 속이 상했겠지만 친정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속에서 열불이 났고 속상해 하는 딸을 위로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딸은 결혼생활 8개월 만에 졸지에 이혼녀란 딱지가 붙어서 친정으로 온 것이다.
남편과 그녀는 동갑내기(28세)였다. 그래서 그녀는 서로가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녀가 신랑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물리치료사 실습을 나온 그녀의 직장에서였다. 그녀는 그때 이미 경력이 몇 년 붙은 베테랑 물리치료사였고 그는 군대를 갔다 와서 학교에 복학했기 때문에 실습 나온 졸업반 학생이었다.
2년제 초급대학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는 그녀의 신랑감으로는 적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악연(惡緣)이었는지 그들은 실습을 계기로 해서 점점 가까워져갔다. 나이가 들었지만 때묻지 않고 고지식한 그가 왠지 자꾸만 그녀의 마음 가운데에 자리를 잡아갔다.
남자 또한 실습과정에서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어쩐지 그녀가 푸근하게 느껴졌다.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고 그들은 쉽게 뜨거워져서 양가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문제는 결혼한 뒤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을 조금 더 분발시켜서 남들처럼 4년제 대학을 나온 당당한 학사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고, 제발 책 좀 보라」고 다그쳤다. 남편은 다 큰 사람이 어린애처럼 시어머니에게 자신들의 생활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그들은 따로 분가해서 살고 있었지만 하루는 아내와 함께 보내고 이틀은 시어머니가 데리고 가서 잤다. 시집에는 시아버지와 시누이 등 두 사람 더 있었지만 그들은 별로 발언권이 없었다.
드디어 자주 부부간에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고자질을 해서 부부사이는 급속히 냉각 되어 갔다. 그녀는 이미 임신 3개월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니 치마폭에 끌려 들어가는 남편을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원 세상에 저것도 남자란 말인가…?」그럴수록 그녀의 자존심은 형편없이 구겨져 갔다.
계속되는 냉전 끝에 서로 자존심을 내세워서 이혼하기로 했다. 뱃속의 애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더니 남편은 그 문제는 어머니에게 물어봐서 결정하겠단다. 이미 임신이 병원에서 판명되었는데도 시어머니 입회하에 다른 병원에서 다시 똑같은 진단을 받고 임신중절 수술을 받게 되었다.
보험이 있어 비용이 8만원 들었다. 남편은 어디서 알아봤는지 7만원에 해주는 곳도 있다면서 자신은 3만5천원만 내겠다고 우겼다. 이혼 수속하러 갈 때도 택시비가 2천4백 원 나왔다. 똑같이 반반씩 내자고 했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혼수속을 하고 남남이 돼서 결혼식 때 가지고 갔던, 이젠 헌 것이 된 혼수감들을 친정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면서 그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더욱 비참한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하나부터 열까지 어머니에게 물어서 행동하는 그런 남편을 완전히 잊지 못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최대의 실수는 결혼 전에 시어머니 될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과 시집 분위기를 알지 못하고 때 묻어 보이지 않고 순박해 보이는, 그래서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그에게 빠져든 점이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만 하기에 그녀가 받은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었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번 더 일어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을 포기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수를 한번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아울러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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