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태어난 인간에게 과연 죽음은 영원한 종말인가? 어둡고 불가해한, 억지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저주가 될 뿐이가?
죽음의 질서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천하장사도, 세상의 모든 권력과 부귀를 한 손안에 움켜쥐고 있는 권력자와 부자도, 때가되면 모두가 이 「죽음의 질서」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참으로 죽음은 만인 앞에 평등한 사실, 철저하게 평등하고 보편적·우주적인 이치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정확한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채 부지불식간에 다가 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산업사회와 각종 기계문명의 발달로 하루를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재해와 사고는 죽음의 이러한 속성을 더욱 가중시켜 주고 있다.
때문에 매일매일 삶의 현장에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자세는 우리 모두가 준수하여야 할 필요불가결한 삶의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죽음에 대한 보다 응답적이고 긍정적인 자세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요구되어진다.
11월 위령성월에 우리 신앙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를 비롯 모든 연옥 영혼들을 위해 특별기도와 희생을 바치는데 이것은 크리스찬의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은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라는 기본적인 신앙진리에 또한 그 근본을 두고 있다.
신앙인이란 세상에 속해 살고 있지만 세상의 말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해 듣는 이로, 말씀해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해서(히브12.25)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느님께 마음 두고 살며, 이런 저런 것들을 소유하고 있지만 언제나 이를 내어놓을 수 있는 자유로움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부르심, 곧 죽음은 또 하나의 순명적 삶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순명이란 마음 기울여듣는 자세를 뜻하며,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갊을 의미한다. 살아왔던 모든 것을 어느 일정한 시점에서 준비된 마음으로 정리해 보고, 생애를 돌이켜보며 부족과 실함을 셈해보고 이를 주님께 돌려드린다는 맥락에서 죽음을 순명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적 자세는 『온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하신 그리스도의 당부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립2.8).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만물위에 계시며 만물을 꿰뚫어 계시며 만물 안에 계시는 분(에폐소4.6)이 되셨고, 이로써 그분은 죽음이 마지막 이별이며, 암흑이 아님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닮아야하고 그의 뒤를 따라야한다. 그래서 죽음마저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따라야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까지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죽음의 보편성은 우리 신앙의 절대 명제이다. 죽음으로써 우리를 관조하고 그 신비를 생활 속에 구현할 때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 존귀한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그러한 죽음을 있게 한 삶은 얼마나 값지고 은혜로운 것이며, 어떤 천지에서든지 감사로운 것인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에서 「죽으면 살리라」는 역설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신앙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신앙진리를 찾을 수 있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11월 위령성월에 모든 신앙인들에게 특별히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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