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주위에 물결이 인다. 다급한 종소리. 그 소리 또한 피에르처럼 갑자기 잠이 깬 듯 울려댄다. 그리고 나더니 진동하는 벨소리. 철책 건너편에서 아무리 샤쯔들이 소란을 피워보았자 그 벨소리는 멈출 수 없다는듯 요란하게 계속된다. 드디어 숨막히는 침묵. 목쉰소리가 군중을 향해 외친다.
『열셋! 열세명이 올라온다!』
그리고는 어조가 변하며
『일곱명은 아직도 속에 남아있소…』
『열셋!』
여인들이 뇌까리다.『일곱명!』하고 다른 목소리가 외운다.
여인들은 모두 철책에 바싹 붙어선다. 서로의 시선이 엇갈린다. 연민 담긴 시선, 증오가 서린 눈초리.
『올라온다!』
샤쓰바람의 사나이들이 흩어져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젠 입을 딱벌린 싯꺼먼 구멍과 검은 군중, 그리고 그 사이에 가로놓인 철책이 있을뿐이다. 침묵. 예수의 말씀과 나자로가 무덤에서 나오는 순간 사이의 이숨막히는 시간…사람들은 벌써 기적을 믿고있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마침내 열세명이 무덤에서 나왔다.
그들이 밖에 나서는 것이 보였다. 눈언저리만 하얀 석탄으로 빚은 동상들 시체하고는 아주 정반대의 모습, 그러나 죽음에 그렇게도 가까운 그들. 비틀거리며 눈이 부신 이들은 밝은 세계 문앞에서 일순간 발을 멈추고 우뚝선다. 철책 이쪽에서는 모든 시선이 알아볼 수 없게된 이 얼굴들을 고통스럽게 뜯어보고있다.
생환자중 한사람이 몸을 움직인다. 마치 얼굴을 온통 뒤덮은 먼지를 털어내듯, 손등을 이마에 얹더니 다음에는 불타구니로 가져간다…
『아빠!』
피에르는 소리치고 온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이 가냘픈 목소리가 신호가된듯 군중은 왁 몰려들어 철책을 밀어제끼고 동상처럼 서있는 생환자들에게로 달려갔다. 이름을 부르며 웃는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마침내 몇명씩 무리져서 하나 둘 사라져 간다. 그자리에 남은 더많은 사람들은 묵묵히 철책 밖으로 끌려나가고 있다.
피에르는 여전히 몸을 떨며 아버지 손에 매달려있다. 생기없는 그 손이가끔 어린이 손을 힘없이 쥐어준다.
『내가 여기있다…내가 여기있다…』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갑자기 발을 멈추더니 그의 목소리같지 않은 녹슨 소리로 말한다.
『난 여기 남아있어야 해. 브노아가 아직 속에서 못나왔어』
모두 만류한다. 안돼요 못견뎌요!…자 집에 갑시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재촉한다『우리 집에 돌아갑시다…』
그러나 그는 앞을 응시한채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브노아가 속에서 못나왔어. 난 못들어가겠다』
페에르는 이가 딱딱 마주쳤다. 이불을 제껴놓은 침대생각이 났다. 그밖의것은 모두 그이 머리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마치 조금전에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처럼.
마침내 람프를 손에 든 늙은 끄레망이 친구어깨를 탁쳤다. 잠에서 깨우기라도 하려는듯이.
『내가 다시 내려가보겠네. 자넨 집에 돌아가게』
이제 네 사람은 발을 맞추어 길을 걷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가끔 광부만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고 싶은듯 또는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재확인이나 하듯『자 가자! 자, 가자!』를 되풀이하며 심호흡을 한다. 이렇게 자유롭게 숨쉬다니 숨쉴 수 있다니…
피에르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어찌나 실히 몸이 떨리는지 그는 똑바로 걸을 수가 없다. 아마 추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손을 이마에 대보니 땀이 후주하게 젖어있다『비가 오는거지 물론!』입을 크게 벌리고 얼굴을 하늘로 쳐들었으나 아무것도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비는 오지 않는다. 그는 식은땀이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이 났을 때처럼 열이 나는 모양이다 그는 조용히 울기시작했다 다른사람들이 자기가 아프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했다! 다른 사람들이 말없이 미소만 지어 주어도 곧 아프다고 호소할텐데… 그는 이미 자기식구들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처음으로 갑자기 오늘밤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것 같았다.
광산의 사고, 어머니의 안타까움, 앙드레의 불면증 등…자기의 이유없는 공포심에 약간의 수치심이 섞인다. 그러나 어린애가 항상 그렇듯 그도 자기 자신만을 가엾게 여겼다. 이제부턴 놀지도 않고 웃지도 않으련다. 잠도 편안히 잘 수 없을꺼야. 매일밤 아버지가 돌아왔나 살펴보게 되겠지. 조그만 폭발소리에도 놀래며 귀를 기울이고 가슴을 조이겠지? 매일 아버지는 자기무덤을 파러 내려간다! 어느날 밤 아버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말거야. … 다른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다른 모든 사람도! 그리고 끄레망도, 이 순간에도…그리고 앙드레와 자기가 자랐을때도…어느날 저녁에는 그들도 지난 달에 본 죽은 사람처럼 싯꺼멓고 나이도 분별할 수 없는 시체가 되겠지…바로 이것이 었구나 언론의 비밀이라는 것이.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싸이렌 소리에 그는 몸이 오싹했다. 여러개의 싸이렌소리가 거만하게 대꾸한다. 어린 피에르는 눈물어린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회색군대가 분홍색 군대를 다 몰아내고 말았다. 그곳에 벌거숭이 태양이 솟아오르고있다 소년 주위에서 가로등이 선채로 졸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철책, 석탄더미 화물차량, 굵은 쇠줄, 외눈박이 신호등 그리고 곧 폭발할듯이 증기를 내뿜는 이름모를 기계들뿐이었다. … 정거장!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그래, 이 세상은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먼지투성이의 커다란 정거장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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