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으로 난장판을 이루는 서울에 바둑판 같은, 아니 구렁이같이 꾸불렁꾸불렁한 길을 케고 달리는 5만대의 자동차들! 제각기 제길을 달린다. 그러다가도 중앙선을 침범하기 일수, 제길을 잃고 남의 길로 들어닥쳐 3중5중충돌 교통사고가 매일같이 보도된다.
행패를 부리고 삼십육계를 치는 자동차엔 발포까지하도록 되었으니 자동차 지옥이냐? 질의 향패냐? 길의 선택의 발악이냐? 벌써 고인이 된 프란치스꼬 김익진 예벗이여, 돌이켜 생각컨데 인생의 길을 바꾸려는 마음의 갈피가 천갈래 만갈래 착잡하던 35년전 봄 내가 중림동서 시집살이하던 시절이였으리라. 세상에 안해본 것 없던 나의 벗 그럴수록 지처버린 내 벗이 아니었던가?
『내 영혼이 주의 품속에 쉴 때까지는 평안치를 않습니다』한 아우구스띠노 성인이 조선 땅에 다시 난듯하였던 나의 벗이여,『나의 갈 길이 어디에 있는가?』하고 그 인생다운 길을 『나는 길이오 진리요 생명이라는』는 목표안에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휘여잡고 벼랑에서 내려 구르는자 하다못해 댕댕이 넝쿨이라도 휘여잡는다 하였지!
이렇게 헤매는동안 차츰 새로운 진리의 철문이 삐거덕 삐거덕 열리는 소리를 정녕코 그대는 들었지! 그 법열을 내 한칸두옥에서 노변담화식으로 난로가에 도사리고 앉아 몇밤을 고스란이 새워가며 그 무거운 쇠사슬 한고리 한고리를 벗어나는 그 희열에 몇번이고 그대는 울었던고!
정열적이고 가슴이 용광로같았던 그대의 마음의 울화통이터저 버릴 때『오! 저는 이제 시원합니다』하던 그대의 말, 오늘도 역력히 들려옵니다. 나하고 한살차이로 늘 묵직한 벗으로 모든 인생의 고뇌를 다 털어놓턴 벗이여!
1936년경일 것이다.『이제 나는 결심하고 일어섰나이다』한 다위의 시 한구절이 실천되기에는 숱한 세월이 흘렀지요. 내 서재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가톨릭과 경제문제」란 책을 보고 결심했었지요? 그래서 본명도 프란치스꼬로 그대에게 지어준 이 몸은 아직 생명나무에 매달렸건만 왜 그대는 속절없이 떨어져버렸는가!
1937년 해가 저물어 갈무렵 혜화동 옹색한 본당신부방으로 또 나를 찾아준 옛 벗이여『제가 영세본명을 프란치스꼬로하였으니 저도 그분의 길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가르침 그분이 향유하시는 행복을 지상에서부터 나누어 갖기 위해서 프란치스꼬 3회에 입회를 시켜 주십시요』한 그대여 교유로서 한국땅에서 그것도 일제압정 아래서 프란치스꼬 3회에 맨처음 레오라는 3회 수도 본명으로 입회하고 성당에서 나오던 벗의 두눈에 구슬같은 즐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흐르는 것을 바라본 내눈에도 눈물이 맺쳤지. 늘3회의 흰띄와 성의를 자랑삼던 그대여.「사의 찬미」, 그러니까 내가 철학하던 시절인 1926년 8월 3일 현해탄 푸른물결을 달리던 덕수환에서 윤심덕이와 두 몸을 던져버린 김유진(金裕鎭)씨가 바로 중형이셨지? 그때부터 나의 벗 그대는 세상의 허무감을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다다이즘」에 벅찬 그대 마음 속에도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곳 그어디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70년대를 고웁게 장식하려던 정월 초아흐렛날 아침에서야 그대의 부음을 전해듣고 나는 아연하여 말을 못하엿어라. 1월6일 삼왕이 예수 아기를 찾아오던 날 그대는그를 영원한 나라로 찾아갔구려, 황금과 유향과 물약을 들고…가는 곳마다 이심전심으로 전교에 게으르지않고 내가 직접 상해서 주문해다 준 준주성범 한문판을 늘 가방 속에 넣고 인생의 반려자로 하던 그대가 오경웅씨(中國人) 저서「동서의 피안」과「내심낙원(內心樂園)」두 책의 번역판으로 그 얼마나많은 황금도 되고 유향도 되고 몰약 되는 인테리들과 유교불교학자들의 영혼들을 주님품에 안겨 드렸던고! 그대가 간 다음에도 이 두 황금의 사슬을 타고 그대를 찾아오르는 많은 영혼들을 차례차례 주님의 영원한 품속에 안겨드려라!
그리고 나는 하상 벗의 유덕을 또하나 자랑하리라. 제 아무리 그대의 이상과 감정과 비위에 맞지않는 사제가 있더라도 스캔달을 주는 사제가 있다 손치더라도 언제나 함구무언으로 웃어 버리던 이 아름다운 교훈, 여러 입으로들은 대로 입증히 노라 그대여!
『나는 잘 못하는데 어찌 사제들을…』하는 그 미덕, 성프란치스꼬의 본을 그대로 따르신 높은덕 그대의 무덤앞에 드높이 꽂힌 十자가를 더욱 빛낼 것이다. 혜화동으로, 명동주교댁으로, 신의주로, 안주로, 대전으로, 대방동으로 내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며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주신 나의 벗이여-. 작년 가을 낙엽이 지던 그 어느 석양녘 예수의 작은 자매수도회원인 딸 데레사 수녀를 지팡이 삼아 나를 방문할제 눈을 잘못 보셨지?
『어허 큰일 났군요! 두 눈이 저렇게 어두워서야』『아니요. 저는 눈을 잘못보는 것까지 성 프란치스꼬를 닮으렵니다』하고 허허!웃던 그소리가 아직도 내귓전에 생생한데 그것이 내게 마지막「유머러스」한 대답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슬픈 통곡속에 두손모아 유명을 달리한 나의 벗에게 비노라. 고통도 슬픔도 눈의 아픔도 또 죽음도 없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기리 복되시기를…
옛벗을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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