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의 영어통역봉사자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6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어 애를 태웠다. 나는 「88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 학술대회」기간 동안 영어통역봉사를 한 경험이 있었다. 대전에 살고 있지만 이번 서울 세계성체대회기간에 꼭 통역봉사를 하고 싶었다. 미사 때는 물론 화살기도 때마다 통역봉사를 할 기회를 주십사 천주님께 간구하였다. 그 덕분으로 서강대에서 실시한 영어구사 능력 테스트에 합격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상경하여 교육을 받았다.
드디어 10월 4일 이 안젤라ㆍ황 줄리아 자매님과 나는 김포공항으로 나가 필리핀 신부님을 비롯한 평신도 22명을 반갑게 맞이해 숙소인 크라운호텔로 안내했다.
일행을 실은 버스가 공항을 빠져나와 올림픽대로에 진입했을 때 나는 낯선 외국인 교유들을 둘러보며 환영인사를 시작했다. 다른 호텔에 묵게 될 필리핀 참가자도 몇 분을 포함해 대략 30여명의 외국교우들이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평소 연습한대로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필리핀에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고 영어로 또 『여러분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무슨 말을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맨 앞좌석에 앉은 분께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나에게 영어로 기도드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성호경이 머리에 떠올라서 영어로 성호경을 외웠다. 필리핀 교우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낯선 감도 사라지고 친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약3년 간 복사를 했기 때문에 라띤어기도문 몇 가지가 생각난다고 그들에게 얘기했더니 좋아했다
작은 성호를 그으며 「글로리아 띠비 도미네」(주께 영광),「메아꿀빠 메아꿀빠 메아 막시마꿀빠」(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등 즉흥적으로 라띤어 경문을 외웠더니, 그들 특유의 환호와 박수로 응답했다. 어느새 숙소에 도착하였고 호텔봉사자에게 팀을 인계해 주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사먹고 전철을 탔다.
창동에 있는 친척,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으로 그곳에 도착하니 밤12시가 다 되었다. 아직 교우가정이 아닌 곳이기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5일 개회 미사 후에는 한 가족 만찬봉사를 맡으신 어느 교우 아주머니께서 우리 필리핀팀 리더인 76세의 「뽈리까르삐오」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시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걱정이라며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통역 봉사자들은 한 가족 만찬에는 함께하지 않는 것으로 교육받았기에 극구사양 했으나 그분 역시 간곡한 청을 굽히지 않으셔서 하는 수 없이 예정에 없는 경험을 하게 됐다.
빵과 포도주를 나누고 기도를 드리고 정성껏 준비된 비빔밥을 먹었다. 식사 후에는 필리핀 할아버지의 재미있는 얘기도 듣고 그 초대해주신 가정으로부터 기념선물도 받았다.
그분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웠으나 그분내외의 성함이나 주소도 적어오지 못하여 고맙다는 편지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 부인께서는 석촌본당의 어느 구역장을 맡고 계신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6일에는 절두산성지를 순례하게 됐다. 그곳에서 필리핀 교우들과 함께 영어와 타갈로그어로 미사참례 하는 뜻 깊은 시간도 가졌다. 그곳에서 늘 동행하다시피한 쥰·알소나라는 청년으로부터 간단한 타갈로그어 인사 몇 마디를 배웠다. 그래서 미사가 끝나고 성당입구에 서서 퇴장하는 필리핀 교우들에게『까무스따까』(영어의 How are you?에 해당함)하고 웃으며 인사하니 그들도 뜻밖이라는 듯 『마부띠』(영어의fine)라고 대답하며 어디서 배웠느냐고 영어로 물어왔다. 절두산 성지에서 내려온 후 민속촌으로 향했다.
입장하기에 앞서 수원근교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필리핀교우들에게 상추쌈 먹는 법을 재미있게 강의(?)해 주었더니 모두들 기뻐하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들은 책상다리 하는 법과 젓가락 사용법에 미숙해서 다소의 어려움은 있었다.
민속촌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붓글씨 쓰는 곳이 있었다. 한번에 5백 원이라고 설명했더니 「쥰·알소나」라는 교우는 나를 보고 자기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면 액자에 넣어 자기 방에 걸어 두겠다고했다. 나는 서투른 솜씨로 「쥰·알소나」라고 제일 큰 붓으로 큼직하게 써주었더니 무척 기뻐했다.
8일 장엄미사에 참가하는 날도 뜻밖의 고생을 하게 됐다. 내가 모시던 필리핀 신부님은 75세의 고령이신데다 한쪽다리가 불편한 몸이었다. 그래서 많은 인파에 혹시나 다치실까 내가 부축하여 간신히 입장했는데 그곳 안내 봉사자에게 물어보니 신부님들은 행사장 밖에 있는 전경련 건물에 가셔서 제의를 갈아입으시고 줄을 서서 입장하신다고 설명했다.
다시 신부님은 조심스레 부축하여 간신히 빠져나가 전경련건물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 교황님의 모습을 뵈올 때는 너무 감격스러워 그동안 피로도 잊혀지는듯했다.
어느덧 6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9일 아침 필리핀팀을 출국시키려고 김포공항까지 가서 서로 석별의 정을 나눌 때는 너무나 섭섭하였다. 어느 분은 TV에서 본 것처럼 나를 이리저리 부둥켜안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분들을 떠나보내고 또 6일간 함께 고생했던 두 자매 봉사자들과도 인사를 하고 대전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자원봉사 중에 또 다른 인생을 체험케 되었고 미약하나마 언어의 능력을 주신 천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마주치며 인사 나누었던 수많은 봉사자들께 늘 천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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