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본질적으로 화해의 과정이며 일치의 노정(路程)이다. 따라서 서로 간에 믿음이 있어야 하며 지향하는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자녀가 서로 화해와 일치를 이룸으로써 신앙적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가톨릭교회의 표상에서 우리는 통일의 의미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통일은 곧 북한사회의 형제자매들과 화해하고 일치하는 노력이요, 하느님의 복음을 북녘에 전하는 길이며, 궁극에는 남북을 하나의 신앙공동체로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일이기도하다.
지금 우리는 북녘의 형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공동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려는 적으로 보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곧 우리의 통일에 대한 근본자세를 가다듬는 출발점이다. 종교자체를 아편으로 규정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관점에 선다면, 그리고 6.25를 전후한 북한통치 집단들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가혹한 박해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이웃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의 생각이 과거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를 용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결코 적으로만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천주교회 제3세기를 맞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진정 참된 화해와 일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쳐준 순교의 역사를 인식해야 한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남겨둔 현시점에서 우리는 밝히는 일을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다. 서울세계성체대회를 치른 우리로서는 진정으로 그들과도 한마음, 한 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의 10년은 고난과 핍박으로 점철되어 온 우리 민족사를 마감하고 이 땅에 주님의 빛을 밝혀 평화의 신세계를 열어가야 할 시기이다. 그런 뜻에서 통일은 우리 민족의 과제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 함께 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비록 반쪽 땅이기는 하나 지난 시기의 피폐와 빈곤에서부터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무질서와 혼란에서 민주주의를 본궤도에 진입시켰다.
우리 세대의 이룩한 이 위업을 가꾸고 다듬어 통일을 위한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 가야한다. 공산주의는 메마른 토양을 찾아 꽃피운다. 우리는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꽃피울 수 없도록 경제와 민주주의를 꾸준히 함께 가꾸어 나가야하며 이것만이 비옥한 통일의 토양을 만드는 길이다.
나만이 통일을 위해 일하고, 나만이 양심적이고 나만이 민족의 대표라고 생각하는 독선적 사고방식은 화해보다는 대결을, 일치보다는 분열을 초래하는 반평화적ㆍ반통일적사고이다. 통일의 대열은 혼자일 수 없다. 독선주의에 빠진 몇몇 개인의 경거망동으로 우리의 통일노력이 적어도 10년을 후퇴한 실상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내 탓이요」를 되풀이해야 한다. 통일의 길은 험난하다. 그만큼 우리의 인내와 땀을 필요로 한다. 어떤 좋은 방안이 있다고 해서 통일한 강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 추진력이 곧 통일의 의지이다. 어느 필자는 로마가 멸망한 이후 1천4백여 년 만에 통일을 이룩했던 이탈리아의 통일삼걸 중에 「마찌니」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 그는 바로 이탈리아민족에게 통일의 의지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었다.
1990년대에는 남북한 인구구조면에서 6.25이후 출생세대가 전체인구의 80%를 능가하게 된다. 그리고 통일의 주체세력도 점차 6.25체험세대로부터 미체험 세대로 바뀌게 될 것이다. 북에서는 김일성의 통치아래 붉게 물든 신공산주의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남에서는 자유주의사상으로 교육받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이들 간에 통일문제의 주도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장래는 바로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최근 우리의 젊은세대들이 보여준 통일의 열기는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단적으로 내보인 것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결여되고 있는 듯 하여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진정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이 이 땅에 평화를 심고 「동방의 빛」이 되기 위한 민족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일진대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고 감정과 이성을 겸비하는 슬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우리가 북녘형제들의 참된 이웃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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