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밖의 것은 둘째 문제다. 그의 첫째 의무, 그의 사명과 역할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밖의 것을 위해서는 인사과대표가 있고 감사원이 있고 정부 등등이 있지 않는가!
피에르는 손등을 이마에 가져간다.
인사과장은 그에게 충격을 준 줄 알았다.
『여하간 당신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을테니까…』
『그것은 원치 않습니다』 피에르는 잘라 말했다.
『뜻대로 하시오!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
『강요해도 소용없읍니다.』
피에르는 안경과 서류를 놓고 권력행사를 하는 이 인물이 가엾어졌다. 혼자 외로이 그러나 하느님이 자기편인줄 믿고 있는 이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노동자들은 마당에서、환기가 안되는 숨막히는 창고속에서 죽음을 숨쉬며 하루 세끼니도 제대로 벌지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산다. 그들은 외롭지 않다. 피에르는 두 군데 취직자리가 있었는데 이 기업체를 택한 이유는 특히 그 나쁜 소문 때문이었다. 그는 앞에 앉은 사나이가 가엾었다.
『내일 아침 일을 시작하시오』
내일이면 다른 인부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 앞에 앉은 이 사람은 영원히 혼자 외로이 남아있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피에르는 손을 내밀었다. 인사과장은 주저하지 않고 그 손을 덥석 잡더니 고마운 눈초리로 악수를 한다. 그리고 나서 곧 두 사람은 이 행동을 후회했다. 아무말 없이 그들은 헤여졌다.
계단을 내려오고 마당을 건너고 철책을 지나가며 피에르는 이 모든 것을 벌써 낯익은 눈초리로 바라보려고 애썼다
『이젠 지하철 입구에 가서 베르나르를 기다려야지「졸라」거리가 어딘줄도 모르니까!』
베르나르-베르나르 신부-「싸니」마을의 노동사제(司祭)는 그의 옛 친구다. 몇 해 선배지만「미숑」의 신학교 동료다. 베르나르가 신부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하여 피에르 신부를 그에게 보낸 것이다. 피에르는 그를 만나러 지금「싸니」마을을 지나가고 있는 길이다.
영화관 정면에 불이 확 켜졌다.「타잔과 인어(人魚)」간판 그림의 인어는 젖통이 비현실적으로 엄청나게 크다.
『얼마나 큰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얼마나 큰 실망을 가져올건가! 이 주간에 이 거리 전체에 얼마나 해가 많을가! 몇번 붓만 놀리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군!』
그는 차가운 눈초리로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속에서 요염한 짐승을 퇴치했다.
「싸니ㆍ르ㆍ오」교회의 종소리가 무관심하고 낯선 소리를 내며 여섯시반을 알린다. 예전에 이 종소리는 야채 재배자들인 이곳 주민들 위에 울려퍼졌다. 만종소리에 주민들은 들에서 일손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하철이다 타잔이다-아침, 점심, 저녁으로 공장의 싸이렌 소리가 종소리를 뒤덮어버리고 공장굴뚝들이 종각보다도 더높이 하늘에 솟아있다.
피에르는 나약하나 여전히 끈질기게 울려오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온 지하철 입구를 떠나지 않는다.「에그리즈ㆍ드ㆍ싸니」(註 싸니의 교회라는 뜻. 지하철 정류장 이름)『정류장 이름을 잘 지었군』 피에르는 혼자 생각한다.『정말 여기는 참된 교회야. 이 속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하느님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그들은 서로 정말 형제이구.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들 사이에 계신다. 누구보다도 가장 외롭고 가장 헐벗은 그리스도께서. 내가 그분을 찾아야지… 그리스도는 어두컴컴한 교회속에 교회직이나 의지직이나 늙은이들 사이에 계시기보다는 오히려 이피로에 지친 노동자들, 이 거짓말투성이의 간판 사이에 계신단말이야! 정말 그럴가?』 그는 손등을 이마에 가져간다. 어릴 때 하던 버릇이 불안정하고 확신이 없을 때는 자연히 되살아난다. 한참 있다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분은 어느곳에나 계시다!』
지하철 입구문이 갑자기 열렸다. 젊은 여직공 한 떼가 몰려나온다. 마지막 몇 계단을 지친 발걸음이나마 우아하게 걸어올라온다. 무용가들이 공연히 끝나고 무대위에 인사하러 다시 나타나는 발걸음이라고나 할까. 여직공들은 다소 지나치게 몸무게가 가볍고 얼굴이 창백하다. 한계단 한계단 다가옴에 따라 피에르는 그 젊은 얼굴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익지 못한 푸른 과일처럼 피기도 전에 시들은 얼굴들이다. 그러나 그 하나 하나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무엇을 풍겨주고 있다. 피에르는 기구했다
『주님이여 매일같이 해주십시오!』
네거리의 신호등이 켜졌다. 붉은등, 그리고 푸른등 교통순경이 호각을 불고 차들이 멈춘다. 선술집 안에서「라문초」 노래를 트는 축음기 소리가 멀리 들리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변한다. 손님이 한 사람 선술집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아! 여기는 도시였구나! 확실히 구월달이야… 하늘에서는 구름도 하루일을 마치고 더러운 몸을 이끌고 묵묵히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집에 돌아간다.
지하철마다 미리 시들어버린 이 어여쁜 꽃들을 싸늘한 저녁거리에 내뱉고 있다.『타잔! 아! 타잔을 하는구나…』
그 여자들은 마치 처음만난 사람들 모양 혹은 오늘 저녁에 얘기할 거리를 많이 쌓아두었던 사람들 모양 지나칠 정도로 활기있게 수다를 떨고 있다. 그들은 피에르 옆을 지나가면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중 몇몇의 눈초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하다. 특히 못생긴 여자들이 그러하다. 피에르는 자기가 먼저 시선을 떨구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흰머리를 보는 모양이지!』
태연한 척 하기 위해서 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피워문다. 스페인식의 헝겁신「에스빠드리유」를 신은 사나이가 담배를 집어 넣으려는 피에르에게로 다가오더니 왼쪽 눈섭을 약간치키며 담배를 한개 뽑아들고 돌처럼 딱딱한 손으로 라이타불을 킨다. 불꽃이 확켜지며 그의 베레모ㆍ이마가 좁은 얼굴ㆍ콧등에 박힌 쇠안경 그리고 움푹파인 볼따구니ㆍ반백수염 등을 비친다. 라이타불이 꺼지고 사나이는 한모금 쭉빨더니 매듭하나가 떨어져나간 손가락으로 점잖게 재를 털고 콧구멍으로 두줄기 연기를 내뿜는 것이 마치 겨울철에 말같이 보인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신호로 오른쪽 눈섭을 약간 치켜올리더니 등을 돌렸다.
저 친구가 첫번째 사람이군. 내 사람이 될… 아니 내가 그의 사람이 되는거지!』 피에르는 새로운 눈으로 그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 주위의 이 모든 사람들 성벽을 쌓고 있는 이 얼굴들을 돌아보았다. 어느날엔가는 이 모든 사람들을 알게되겠지. 그는 순간 엄청난 기쁨이 솟아 오르는것 같았다. 지하철의 문이 다시 열리더니 이번에는 노동자들이 쏟아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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