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친구가 첫번째 사람이군. 내 사람이 될… 아니 내가 그의 사람이 되는 거지!』
무거운 걸음으로 한계단 한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서로 말도 건너지 않고 다만 헤어질 때 묵묵히 악수를 나눌뿐이다. 어깨에 멘 주머니 속에 마치 대단히 무거운 무엇, 죽음과도 같은 것- 그들의 하루를 지고가는 것 같이 보였다. 네거리의 신호등이 이 계단위에 빛을 던진다. 피에르 눈에는 붉은 노동자의 물결이 올라오는것이 보인다. 다음에는 푸른 노동자의 물결 붉은 물결 푸른 물결… 문등병자들 시체들…
한떼의 사람들이 계단밑에서 발을 멈춘다. 일순 싯커먼 구멍 앞에 우뚝 선 검은무리 피에르는 손을 이마에 가져가며 눈을 감았다. 『푹발 철책 어머니의 차거운손… 그리고 열세명의 싯커먼 그는 집에 돌아오던 길…』다시 한번 그는 자기행복했던 어린시절이 끝나버린 그날밤 그는 새벽을 눈앞에 보는듯 했다. 이번에도 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째서 그의 기쁨이 단번에 사라져 버렸는지 이제 그는 알 수 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올라오는 베르나르 신부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지쳐있지만 유독 그만은 피로한 것이 행복하다는 듯했다. 눈을 내려깔고 있어 지친 얼굴에 눈까풀이 유난히 하얗게 보여 마치 장님같다. 그는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나 같은 건 이 친구를 대신할 순 도저히 없을거야.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래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하고 피에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고독한 그는 항상 자기 혼자서 생각하고 대답하는 버릇이 어느듯 생겨 있었다.
『여-베르나르!』
그러나 에스빠드리유를 신고 베레를 쓴 사나이가 앞 질러가서 베르나르를 맞는다.
『루이!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소?…야, 피에르! 이 친군 루이야, 좋은 친구지…』
루이는 피에르와 벌써 알고 있는 사이라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심한 스페인어조에 빠리쟌 액센트를 섞으며 말을 계속했다.
『가브리엘일을 알리러 왔소』
『페르낭드네 꼬마?』
『오늘 아침에 병원에 데려갔는데 머리를…』
『뇌막염?』
베르나르는? 무서운 대답이 나오는 것을 부정이라도하듯 부자연스럽게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쥐가 그랬소. 쥐가 그애 머리를 물어뜯은걸 오늘 아침에 발견했소』
『그래 애가 울지도 않았단 말이오?』
『너무 쇠약해져 울지도 못했소, 또 울었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거요, 어른들은 하두 피곤에 지쳐있었으니… 신부인 자네한테 미리 알리러 온거요』
『잘 와줬소. 루이 쟈꼬는 병원에 의사 친구가 있을텐데…곧 가보겠소…』
『소용없소!』
루이는 담배를 내던지고 마치 나쁜 벌레라도 죽이듯 신발로 부비며 말한다.
『그래두…』
『다 틀렀어!』
루이는 스페인말로 고함지른다. 베르나르는 일순 눈을 내려감았다. 장님같이 보이는 얼굴엔 미소가 없다.
그리고는 피에르에게로 돌아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제기랄! 이런때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이야? 한번 더 집주인 마누라한테 얘기해? 고소한다고 협박해? 정말로 고소해버려?』
『그여 편네가 얼마나 쎄다고』루이의 대꾸다.
『순경들로 모두 그편이요. 당(黨)보다도 더 세단말이요』
루이는 비웃듯이 덧붙인다.
스페인 전쟁의 용사인 그는「명령불복종」이라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숙청당한 처지인 것이다.
『그 여편넨 돈이 있단말이야』루이는 피에르 코앞에서 손구락을 부비며 말을 잇는다. 『돈 알겠소?』
『그래 나더러 어쩌라는거요?』
베르나르는 벌써 고함지르듯말한다. 루이는 묘한 미소를 띠우며 마치총살을 당할 당원의 표정이라고 할까…
『아무것도 바라지않소. 신부, 아무것도! 자넨 집주인을 죽일 수도 없고 자네 하느님한테 욕조차 못하지 않나?』
『먼저 미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두고봅시다』
피에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루이가 날카롭게 쏘아본다. 베르나르는 입을열었다.
『그다음에 두고보자고? 좋아, 그러나 난 때로는 그 다음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보고싶을 때도 있단말이야』
그리고는낮은 목소리로
『항상 빈손이야…』
『어디로 가야해?』
잠시후에 피에르가 묻는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페르낭드 집에』
루이는 두 사람 앞에서 걷는다. 피에르는 등뒤에서 이 삐쩍마른 허수아비 같은 모습을 바라보았다.
색이 다 낡아빠진 옷 너털거리는 바지 루이는 뒤에서 자기를 관찰하는 것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더니 눈섭을 치켜올리고 피에르를 바라본다.
『여보게 베르나르, 자네 친구도 신부인가?』
『그렇소』
『맙소사!』
루이는 베레를 벗고 더러운 양털같은 머리를 극적거린다. 그들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루이는 고개를 돌리지않고 앞에서 가며 베르나르에게 하루의 소식을 전한다. 평화를 위한 모임이 십육일로 정했졌고 세르쥬는 아직 경찰이 내놓지 않았고 마르셀은 점심 때 또다시 자기 아들을 때렸고 자기손으로 살집을 짓기위한운동에 열두명이 서명했고…
『열두명! 대단한 숫자지!』
피에르는 좋고 나쁜 이 소식들이 친구 얼굴에 스쳐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치들판에 차례로 태양이 비치고 구름이 그늘짓듯이. 피로에 지친 메마른 얼굴. 하루하루의 거센물결이 이렇듯 앙상한 벼랑을 만들었단 말인가?
『이것을 조금이라도 덜기위해 날이 친구옆에 배치한 거지』
피에르는 베르나르의 어깨를 얼싸안고싶었다. 그러나 동반자가 있어서 삼가했다
『제기랄 비는!내 방이 또 새겠군!』루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스페인말로 하늘을 저주하고 집주인을 그리고 인생전체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거센 빗줄기가 그들을 때린다. 피에르는 아직 젖지 않은 루이의 등을 바라보았다. 꾸부정한 등, 끈기있어 보이며 늙은짐승의 등처럼 약간 비굴해 보이기조차한다. 피에르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박고 얼굴을 쳐들어 행복하게 소낙비를 맞았다. 거센 물결에 절대로 닿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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