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에 열렸던 주교「시노드」는 교회의 혼란상을 드러냈으나 교황의 연설과 최종 투표과정을 통한 개혁안 채택으로 말미암아 혼란이 일단락되었다. 그결과 새로운 전례시행령이 선포되었던 것이다. 물론 개혁이 교회의 발전과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타개책은 될 수 없다. 그러면 현대교회의 여러가지 난문제들의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일까?
사실 교회가 역사상 여러번 이런 상황에 당면한 경험이 있으므로 그 근본적인 해답은 역사를 통해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5세기의「아리아니즘」(이단) 16세기의「르네쌍스」, 19세기의 반신사조에 봉착했을때 교회가 나타낸 반응의 특징이 무엇이었던가? 이런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교회는 성인들을 무더기로 배출했던 것이다. 교회를 가장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는 성인들을 보내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교회를 보호하신 것이다.
오늘날 시조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현대교회의 위기는 성덕의 필요성을 말하는 시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신학적인 논쟁이 성경의 이해를 넓게해주고 제도개혁의 요구가 교회의 발전을 더욱 촉진시킨다는 점으로 보면 이것도 하느님의 은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신학이나 성경의 가장 깊은 뜻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정신 및 교회에 대한 충실성을 얼마나 증진시켜주느냐에 따라 판단된다. 복음적 충성과 사랑과 헌신이 바로 진정한 교회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런 충성과 사랑과 봉사는 성인들을 통하여 실현된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성인들의 무수한 행적은 모두가 여기에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적 성덕에는 불가견적인 것도 많다. 직접 볼 수 없더라도 튼튼한 집을 보고 그 기초의 견고함을 알아낼 수 있듯이 교회에도 꼭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교회는 모퉁이들 그리스도와 베드로의 기반과 그 기초에 강하게 연결된 성인들로 말미암아 지탱되고 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과거의 성덕을 무시하고 순수 성적 이미지에만 집착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 본적인 오류이다 교회없는 그리스도는 몸체 없는 머리와도 같은 것이며 교회의 성덕은 성신의 감도하심에 따라 성장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성덕의 근본적인 판단기준과 형태는 어떤 의미로 봐서 영원한 것이다. 이기심의 억제와 회개 희생 세속 집념의 포기 등등은 옛날부터 성화를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오던 것들이며 현대인의 정신과 영신적 구미에도 상반되지 않는다. 모든 개혁과 논쟁은 이 영원한 성덕의 개념을 보다 풍부하고 섬세하게 밝혀 주는데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기도하는 정신, 봉사와 헌신 통회와 희생을 통한 절제, 마음의 순결, 청빈의 실천 겸손과 순명과 고통과 친절의 이행, 그리스도가 진 사랑의 십자가 등등 완덕의 길은 다양하며 앞으로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그 길을 걸을 사람이 많아야 할 것이다. 덕행의 연구와 실천하는 사람의 수가 반비례할 때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 아닐까? <라치비따까똘리까 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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