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역사가들은 전례의식과 그 발전의 기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적어도 전례가 시대를 통하여 변경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전례는 하느님이 제정한 것이므로 변경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시대의 변천을 따라 변경할 수 있고 또 그 전례의 본질적인 내적 성질에 덜 부합하는 것이 삽입되었거나 혹은 덜 적합한 것이 있으면 변경하여야 하는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전례가 생기기까지 유데아교 혹은 희랍 로마문화의 영향을 받고 그 요소가 삽입되었다. 교회가 유럽으로 확장된 때 유럽제국의 문화와 전통에 적응했다. 그러나 다음으로 로마전례가 유럽에서 신세계로 넘어갈 때 이 적응이 비교적 소홀히 되었다.
적응은 새 문화 창조
적응이란 단순한 수동적인 영향에서 형식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요 또 다른 문화속에 흡수되는 것도 아니요 현대의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필요한 것을 집어넣어 그것을 내부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채우는 것이다. 전례헌장 전체가 전례쇄신을 추진하고 있으나 특히 37조부터 40조까지 민족의 특성과 전통에 적응시키는 규정을 마련하고있다. 그러므로 서구문화의 모든 것을 아무런 고려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현대문화에 대한 사명이 아니다.
항간에는『가톨릭은 서양 것이다』하고 있다. 교리적으로 결코 외국종교도 아니요 한국의 종교도 아니나 겉으로 보이는 형식은 너무나 이국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이다.
유불교는 말하자면 외래의 종교이나 그것이 긴 세월동안 한국문화를 만들었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령 한민족이 모두 그리스찬이 되었다하더라도 유불교를 배경으로한 고래의 한국문화는 우리 그리스찬에 의해 간직되어야 할 것이다.
전례정신 알아야
토착화가 문제가 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곳에서 달성되어야 할 것이다. 유기로 제구를 만들고 성당을 온돌화 하는 것이 전례의 토착화인가? 전례의식 그 밑바닥에서 발견되는 어떤 정신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리가 그가 자라온 풍토의 민족적 습관, 문화가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도 우리가 자라난 풍토에서 본질적인 것 즉 그리스도의 교리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위의 사람이 한국문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도록 해야한다. 우리의 사명은 한국에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 아니고 이미 계신 그리스도를 한국에서 발견하는데 있다. 종래 교회의 가톨릭성이란 같은 것이 어디서든지 행해지는 것으로만 알았다.
마테오릿지 사상
우리나라 교회역사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마테오 릿지같은 훌륭한 적응의 지도를 받아 들였던들 제사문제 등이 해결되어 한국교회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민족이 있고 그 민족이 공동체로서 쌓을린 언어, 풍속, 예술 등 문화제반에 의해 전례의 형식이 풍부히 되기때문에 전례는 민족의 전통과도 밀접히 연결된다.
도대체 전통이란 무엇인가? 인간공동체가 쌓올린 습관, 제도, 사상, 문화 등의 공통의 가치를 말한다. 즉 역사에 남는 인간공동체의 정신적 유산이다. 다른 어떤 공동체에서 일정한 정신적 의의를 보이기 위해 적당했던 표가 현재 다른 공동체에서 그토록 적당치 않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입맛춤)라던가 장궤는 우리나라 습관에 맞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표현양식이 어느 공동체를 위해 이해되지 않는 경우 다른 형식으로 변경되어야 한다.
현대요구에 맞게
또 문화일반에 걸쳐 호화로움보다 간소화된 것을 좋아하고 소박성에 정신적 깊이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 세계적인 현대의 경향이다.
여기서 의식 그 자체나 예전문의 문체를 비롯해서 전례에 사용되는 교회음악, 교회미술(제복ㆍ제구ㆍ제단ㆍ교회건축) 등 모든 교회예술이 현대인에게 적당한 것으로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전례 그 자체의 본질적 성격에 적합치 않은 것이 현재의 전례 속에 들어가 있다. 전례는 초대교회이래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것으로 주관적 신심을 표현하는 장소가 아니다.
중세에 나타났던 개인주의적 신심이 전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개인적기도로 공동체적 기도가 과소평가되어 전례의 공동체성이 불투명해서는 안될 것이다.
삐오 12세때부터 신비체의 교의가 강조되었다. 그것은 결국 공동체의 의식(意識)이요 또 그것은 공동체의 기도인 전례속에 나타나야 한다.
공동체적 전례
일반적으로 현대인은 옛사람보다 사회의식이 강하다. 과학에 있어, 경제에 있어, 예술에 있어 그외 여러학문에 있어 공동연구가 거행되고 있다. 이렇게 영적 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고립한 개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공동체라는 사실이 한층 더 자각되었다. 전례의 정신에 들어가므로 우리는 같이 기도하고 감이 손을 잡고 하느님께 나아간다. 한국민은 가족제도의 습성에 젖어 이 공동체의식이 쉬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혼자라도「내아버지」「내 집」이라 하지않고 「우리 아버지」「우리 집」이라 잘부른다.
영적생활을 사회적인 각도에서 보고자하는 이러한 경향이 요즘 크게 논의된「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저서에서 최고에 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례의 건전한 전통을 살리기 위해 먼저 거기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및 사목적 연구과정부터 시작하기를 권장한다.
또 연구는 전례의 발전을 전통에서 단절시키지 않고 이에 존재하고 있는 형태에서 유기적으로 나오도록 해서 우리시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한다.
전통은 모든 백성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감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만이 이용할 줄 아는 음악적 리듬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가지 원천에서 즉 한편 신앙의 결실인 전례정신과 다른 한편 서로 다른 문화속에서 발견되는 전통에서 솟아나오는 새로운 의식을 보도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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