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체대회 기념 시낭송의 밤」을 마치고 귀가하는 차 안에서였다. 아름다운 이 밤 소설가 「이 여사」와 나는 축하연을 빠져 나와서 한발 먼저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런 저런 말 끝에 「이 여사」는 당신 따님의 근황을 이렇게 전했다.
『아주 건강하게 자란다고 자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요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아이가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고 보면 자기 자신의 손을 자꾸만 의식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호소를 해요. 자연 성적도 시원치가 않아요. 어쩌면 좋지요?』
중학생인 외동딸의 딱한 사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청소년들이 공부에 시달리다가 겪는 신경성 앓음을 모두 열거할 수 없는 짧은 시간의 동행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여사」는 「ㅈ성당」에서 사목위원으로 활동 하는 건실한 교우이기도 하다. 귀가하는 차안에서도 그분은 귀여운 딸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모성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여느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몇 해 전 우리 반에는 냉정 할 만큼 침착한 「설아」라는 학생이 있었다. 나와 얘기를 나눌 때에도 절대로 자신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는 그런 방어적 자세여서 반항적인 모습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성적은 5등 이내였는데 갑자기 20등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상담실에서 만났을 때 이 아이도 「신경성 앓음」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학교에도 안 가는데 내가 왜 공부를 잘해야만 되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은 결과로 나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물론 어떤 병을 앓고 있는 언니를 걱정하는 우정이 깊은 동생의 단순한 걱정의 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픈 언니를 걱정한 나머지, 공부할 수 없는 언니를 생각해서라도 공부를 소홀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데는 「신경성 앓음」이 있었던 것이다. 야무지고 영리한 설아에게 학업을 이어나가기 힘든 언니가 있어야 한다는 건 신의 섭리일 뿐, 설아의 생활을 뒤흔들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그때 해준 걸로 기억한다.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려고만 하면 늘 웃고 있는 언니가 눈앞에 어른거려서 늦은 시간 다 잠이 들었지만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차돌같은 설아가 끝내 울어버렸던 그 일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호소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부가 부담스러운 청소년들이라는 걸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의 욕심에 끌려 들이기 위해 「인내심을 길러라」「착한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다」하면서 한 손에 오랏줄을 들고 그들을 감시한다. 다른 한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등을 또닥여준다. 『조 선생님, 저는요 아이더러 꼭 일등을 해야만 된다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냥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만족하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부담이 갈까요?』
아름다운 「이 여사」는 답답한 속을 풀길이 막연해서 나를 바라본다. 아이들은 공부를 재촉하는 오염된 환경 속에서 서서히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목조임」이 없이도 가슴이 답답해서 지금 몸부림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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