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윤리와 자연법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가장 큰 위협이 되는것 중에는 「상황윤리」라는 것이있다.
상황윤리에는 두가지 중요한 형태가 있다. 첫째가 율법주의의 형태이고 둘째는 그 반발로써 생긴 오늘날의 반율법주의, 즉 무법주의의 형태가 그것이다.
-율법 제일주의의 상황윤리-
강도들에게 얻어맞고 피를 흘리고 누워있던 사람을 지나쳐버린 제관과 레위들은 분명 율법을 철저히 준수했다. 그들은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바삐 서둘고 있었으며 그들의 율법에 의해서 강도에게 맞은 피가 묻게되면 그들에게 부과된 의식을 수행할수 없는 불결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의론(決疑論)에 따라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외적 법률을 더 철저히 준수했다.
제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런 사소한 법률을 소심하게 준수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사소한 법률로 하느님의 계명을 어겼다』고 힐책당했다. 오늘날도 율법제일주의는 자비와 동정과 사회정의의 지상명령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법률을 글자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고집한 나머지 드디어 가치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그들은 하느님과 이웃의 사랑안에 모든 윤리적 가치를 종합해야 하는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반율법(反律法) 제일주의 상황윤리-
엄격한 율법주의자와 과격한 상황윤리론자는 서로의 접근법이 상이하고 주장하는 내용이 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서로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다. 율법주의자는 『법률을 따르라 그것이 사랑이다』고 하고 상황윤리론자는 『사랑을 따르라 그것이 곧 법률이다』고 한다. 상황윤리론자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에만 순종할 것을 요구할뿐 어떠한 윤리의 절대성도 부인한다. 율법주의자는 사랑의 위대한 계명과 선물을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사소한 인위적 법률을 절대적으로 준수하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윤리성의 전부이다. 사랑은 하느님 자신이고 하느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참사랑과 거짓사랑을 가르쳐주셨다.
신앙인들로 하여금 거짓사랑에서 참사랑을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명령이다.
-윤리신학에서의 절대적인 면들-
상황윤리의 문제점을 논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절대적인 것들이 있느냐-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하는 것이다. 그 해답은 사랑이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복음의 절대성은 두개의 범주로 묘사할 수 있다.
첫째 「목적을 제시하는 계명들」로써 그리스도는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절대적이고 방향 제시적인 계명을 주셨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완전하게 되십시오』고 우리에게 방향규범을 제시하셨다. 물론 이 방향규범은 구체적 처신에 대한 답변은 주지 않는다.
둘째 형태는 성서의 죄목(罪目)에 나열된 죄악이다. 10계의 둘째 목록에 속한 계명들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떤 구체적 행동이 진정한 살인 절도 간음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어휘와 해석학적 문제점-
정의 진실 성실들은 절대적 구속력이 있는 규범들이다. 살인 절도 허위는 모두 죄이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로써 모든 사정을 해결하지 못한다. 언어란 단순한 단어들만이 아니라 인격들 상호간의 콤뮤니케이션이다.
오직 참된 진리는 그들의 현실적인 콤뮤니케이션에 실천적이고 강경한 반항의 대답 안에만 있을수 있다.
-자연법에도 EPIKEIA가 적용되는가--
국가나 교회가 제정한 어떠한 「인위적인 법」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모든 학파가 일치하여 주장하는 바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 법들은 보다 높은 가치나 의무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주의의 범주로 전락하게 된다. 윤리학자 성 알풍소는 『상황을 보아 입법자가 법률에 그 상황을 포함시킬 의향이 없었음을 확실하게 혹은 적어도 개연성을 가지고 판단할수 있기 때문에 이때 Epikeia는 한가지경우의 예외를 의미한다. 이런 Epikeia는 인정법(人定法)에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행위들의 악의가 없는 때는 자연법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자연법에 대한 표현의 다원성-
성서학자들의 오늘날 일반적 견해는 만일 우리가 이러한 법률이나 저러한 계명이 상응하는 바의 현실적 맥락, 즉 삶의 배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구약이나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실증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의 윤리철학에서는 여러 사회적 맥락이나 한 개의 구체적 문화적 맥락 안에 표현된 유효한 윤리적 접근방법들을 연구하는 「문화적 윤리」라고 불리는 중요하고도 새로운 조류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 「맥락적 윤리」의 다원성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의 출발점은 언제나 인류의 단일성에 두고 있다. 모든 인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고 그의 사랑과 정의의 모상이 되는 운명을 타고난다. 그러나 「지금」 또 「여기서」만 유효한 윤리적 규범을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가톨릭의 전통적인 접근방법은 언제와 죄의식을 조장하거나 혹은 유효한 규범을 아직 이해 못하는 백성들에게 과격한 반항의식을 조장하는 바를 회피해왔다. 동시에 그 전통은 「지나치게 안이한 양심」을 결코 권장하지는 않았다. 가톨릭의 전통은 「자기도취」로 인해 인간이 더 높은 차원의 소명이 요구하는 바를 이행하려는 데서 이탈하려는 그 「자기 만족」의 유혹을 대항하여 언제나 투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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