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넨 웃고있군?』
베르나르는 자기도 미소를 띄우며 성서의 한 구절을 외운다.
『내가 너이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안다면…』
『자네 친구가 웃고있다구?』
루이는 비에 젖은 얼굴을 들리며 묻는다. 물이 줄줄 흐르는 안경 속의 두 눈이 물에 잠긴 듯이 보인다.
『아마 비를 좋아하나보군!』
『그렇소 친구. 난 비를 좋아해. 그리고 고생도 좋아하구.』
『그럼 자넨 여기서 행복해지겠어』
『그리 간단하진 않어.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고생거리도 사랑하게 돼야한다는거야…』
베르나르가 조용히 말을 맺는다.
어린애가 하나 그들 옆으로 뛰어달아난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쳐들어 비를 즐기며 신이 나서 달려간다. 다음에는 키가 조그만 사나이가 스쳐갔다. 중국사람의 신주모양 밀집으로된 꼭갈같은 것을 쓰고 지나간다. 루이는 웃음이 없는 눈길로 그를 바라본다. 사실 루이는 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일까?
피에르와 함께 걷던 두 친구가 선술집과 자전거포 사이에 있는 낮으막한 문으로 갑자기 빨려들어간다. 피에르도 좁고 어두운 낭하속으로 무턱대고 따라들어갔다.
『계단이라도 있으면 넘어지겠는걸…』
그러나 그들은 벌써 울퉁불퉁한 골목길에 나서있었다. 길 양편에는 똑같이 생긴 납작한 집이 두채 좌우에서 있다. 문 하나와 창 하나가 달린 방들, 모두 여덟가구씩 살게되어있는 집들이다. 막다른 골목끝에는 검츠레한 울타리. 그것은 피에르의 어린시절의 광부촌을 연상케했다. 여기가 좀 더 음산하다 뿐이다. 어린 꼬마가 혼자 소낙비속에서 길가에 엎드려 구슬치기를 하고있다.
루이와 베르나르는 왼쪽 첫번째 집으로 들어간다. 피에르는 문간에서 발을 멈췄다. 문이 반쯤 열려있다. 방은 텅 비어있으나 사람이 살고있는 방에는 틀림없다. 비가 지붕을 뚫고 천정을 지나 뚝 뚝 규칙적으로 방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베르나르는 방 한구석에 깔려있는 조그만 깔개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방에서 잠자던 어린애가 이순간 어두침침한 커다란 병원 방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간호부들 사이에서. 여기에 남은 것은 깔개 머리쪽에 남은 검은 피자욱뿐이다. 어린애들의 피도 어른의 피와 같은 모양이지. 베르나르는 그 자욱위에 손을 얹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는 아니다. 하느님의 충견, 이 표지가 하느님의 충견을 제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는 기도 드리고 있었다.
『기적을 행하려고 하나? 신부』
루이는 묘한 웃음을 띄고 말했으나 곧 그는 자기 웃음을 후회했다.
베르나르가 몸을 훽 돌렸다. 루이는 어린애의 장난감을 입술에 대고있었다 그의 젖은 두 눈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래 자넨 또 왜?』
베르나르는 부드럽데 댓구한다.
루이는 장난감을 깔개위에 내동댕이쳤다.
『갑시다』
베르나르는 한마디 던지고는 방을 나왔다. 그리고 문간에 남아있던 피에르와 마주쳤다.
『여기서 페르낭드의 집이야. 저긴 루이의 방이구. 골목 저쪽에는 작꼬와 뽈랫뜨가 살고…』
『이 옆에는?』
『앙리』
『친군가?』
『내겐 친구가 되겠지』
하고 루이가 웃으며 가로챈다.
(이가 많이 빠져있다.)
『그러나 자네들에겐 친구가 못될걸!』
『잔소리 말게. 공산당들은 자네같은 무정부주의자보다는 크리스찬을 덜경계할걸!』
베르나르가 댓구한다.
루이는 스페인말로 언성도 높이지않고 욕설을하더니 갑자기 잠잠해진다.
『자네말이 옳아! 난 혼자야, 외톨이야…이거 천해서』
그는 아주 낮은소리로 덧붙였다.
피에르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이 그러진 얼굴, 다물어지지않는입에 멍청한 눈동자, 이 죽은 사람의 얼굴… 재빨리 그는 화제를 바꾸었다.
『결국 여긴 가구(家具)달린 셋방이란 말이군?』
『싸니에선 어디를가나 이런 종류의 집을 볼걸세. 낭하니 철책문이있는 길로 통하는 막다른 골목들. 납작한집, 단층집 아니면 겨우 이층집인데 방하나씩 갈라져있는 집들이지.』
베르나르가 설명해준다.
『모두 셋방인가?』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그러나 어차피 집주인이 아니면 문직이가 판을 치는거지!』
『그런데 말이요』
하고 루이가 경쾌한 어조로 얘기를 시작한다.
『백이십이번지의 문직이 여자한테 약간 불행한 일이 생겼소. 머리위에 벽돌이 떨어졌지. 재수가 없었다 그말이야…』
『루이!』
『왜그래?』
그는 성난듯 훽돌아선다.
그이 코끝에 빗방울이 하나 매달려있다.
『프로라가 죽은날 밤 전등불을 켜주지않던 그 더러운 년이야? 실업자 사무소에 미쉘을 고해바친 년! 쎄르쥬가 자기방에 친구를 데려다 잤다고 경찰을 부른년이란 말이야! 그래 뭣이 나뻐?…똥같애서! 난 그년이 죽어버렸음 좋겠소』
가래침을 탁뱉으며 그는 말을 맺는다.
『그 여자가 죽는다고 달라질 것이 뭐요?』
피에르가 조용히 묻는다.
『자넨 이 세상에 못된 놈이 너무 많다고 생각지않소?…공간이 필요해! 공간이! 공기도 필요하고!』
『누굴 위해서?』
『애들을 위해서지, 물론! 어린 것들이 자라날 공간이 없는 걸 보는데지쳤어, 난! 어린애들이 부모들보다 먼저 죽어가는 이 거리가 지긋지긋하단 말이요. 물론 자네들 신부는 그런건 상관도 없겠지만…』
『닥쳐!』
베르나르는 조용히 못을 박았다.
그리고 빗속에서 놀고있는 꼬마를 부른다.
『에띠엔느! 에띠엔느』
어린애는 얼굴을 들었다. 피에르는 멀리서 그의 푸른 눈동자만을 보았다. 그 창백한 얼굴에 두 눈만이 유일한 색갈을 띠고있다.
『안녕, 베르나르!』
『빗속에서 감기들겠다.』
『밥먹는 시간전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이게 나요』
그 소리는 마치 총알처럼 피에르의 가슴 한복판에 꽂혔다. 그렇게도 가식없는 순수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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