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사제독신제를 의무화한 것은 1139년에 열린 제2차「라떼란」공의회에서였다.
그보다 더 일찌기 사제독신에 관한 여러가지 규칙이 있었지만 사가들은 이러한 초기 규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제자로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결혼했었다. 성 바오로는대부분의 사도들이 기혼자였음을 다음과 같이 시사하고있다. 『우리는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 및 케파와 같이 자매인 부녀를 데리고다닐 권이없느냐? (꼬前9장5절)』
케파는 초대교황이며 수종도인 베드로를 희랍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초대교황 베드로의 장모가 학질에 걸려 예수님의 치료를 받았다는 말도 복음에 있다.
학자들은 2백63대 교황중 9세기까지 약40대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초기에도 사제 독신을 의무화하지는 않았어도 권장하기는 했다.
성 바오로는「꼬린토」전서 7장7절에서『사람은 각각 다른 은혜를 천주께 받았느니 어떤이에게는 저러하리라.』라고 하면서 자기와 같이 하느님의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는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또한 교역자들에 대해서는「띠모테오」전서 3장2절에서『그러므로 주교는 마땅히 가히 질책할 만한 곳이 없어야 할지니 그는 한번만 결혼한 자로서 근신하고 지헤롭고 위엄있고 명망있고… 오로지 자기 집안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하여금 단정하고 순명하는자 되게하는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다.
305년의「엘비라」공의회에서는 기혼성직자들을 별거하도록 했다. 그러나 325년의「니체노」공의회에서 바뀌어 독신자는 서품 후에 결혼을 금하고 기혼자는 서품 후에도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했다.
다시 386년 시리치오 교황은 기혼사제가 아내와 별거하도록 하는 규정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이 규정도 692년「뜨룰로」지역공의회에서 다시 뒤집어져 주교는 독신을 의무화하고 사제ㆍ부제ㆍ차부제는 품을받기 이전에 결혼했으면 서품 후에 결혼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했다.
이 결정은 정교회와 동방전례 가톨릭과 일부 프로테스탄트(루터교의경우)에서 오늘날까지 지켜내려오고 있다.
서방(라띤)가톨릭에서는 1139년「라떼란」공의회에서의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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