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 수 없다구? 내가 가서 너의 아버지한테 따지겠다!』
루이가 화를 벌컥냈다.
에띠엔느는 눈을 깜박인다. 두 눈을 덮은 긴 속눈섭이 마치 오월하늘의 빗줄기처럼 보인다.
『안돼요, 루이 아빠를 가만 둬요』
『하여간 내 방에라도 우선 들어가라!』
루이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어린 것을 자기 방안으로 밀어넣는다. 기다란 끈으로 목을 맨 고양이 한마리가 바르르 떨며 창가에 왔다 갔다하고 있다. 비는 줄기차게 지붕을 씻어내려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보도위를 요란하게 흘러내린다. 골목 길이 온통 수채구멍 냄새로 뒤덮여있다.
『빨리가자!』베르나르는 한마디 남기고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울타리쪽으로 향했다.
첫 발자욱을 내디디는데 피에르 발밑에서 무엇인지 부서지는 것이 있었다. 그때 꼬마 에띠엔느가 루이네 방에서 나오며 손을 내민다.
『내 구슬!』
『내 구슬을 밟았서요.』
『이크, 모르고…』
『내 수정 구슬을』에띠엔느가 입속에서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떨군다.
피에르는 꼬마의 머리를 내려다 보았다 비에 쓰러진 보리밭 같은 그 머리가. 가슴 아팠다.
『저 말이지…』그가 입을 열었을 때 꼬마는 벌써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없었다
피에르는 유리조각을 줏으려고 몸을 구부렸다. 줄기찬 물결이 벌써 그 조각들을 휩쓸어가고 있었다.
『따라 오나?』베르나르가 소리친다
철벙! 철벙! 철벙! 서너발자욱만에 피에르는 곧 검츠레한 울타리 앞에 서있는 베르나르를 따라갔다. 소낙비는 그곳에 그려놓은 어린 꼬마들의 그림과 글씨를 모조리 지워버리고 자기 나름의 기묘한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베르나르는 발길로 한대 울타리를 차고 이때까지 보이지 않던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공지(空地)에 나섰다. 말라빠진 당나귀 등보다도 더 울뚱불퉁한데 앙상한 풀포기가 드물게 보일뿐이다. 단 한그루의 나무가 소나기를 맞아 초라한 모습으로 한모퉁이에 마치 피난이라도 온 모양 우뚝 서있다.
『이 나무는 에띠엔느 닮았군. 무슨 나물까? 느릅나문가?』
피에르는 가냘픈 나무줄기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건 무슨나무라기보다는 그저 나무라는 존재야. 그리고 여긴 공원이라는곳이고.』베르나르의 대답이다
그들은(공원)을 가로질러가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베르나르는 세 조각의 판대기로 만든 문을 밀고 좁은 마당으로 들어갔다.
왼쪽에 새로 만든 창고가 피에르의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에는 다 쓸어져가는 집이 한 채 서있다.
『창고가…』
『그건 우리 것 아니야! 저 앞집 거지. 한 집이 그걸 다 소유하고 있지』
빨간 벽돌집이다. 한얀 커튼을 느린창문이 이 마당을 향해있지만 그것은 모두 덧문이 굳게 닫쳐있는 채로다.
『자! 우리집은 이쪽이야』베르나르가 부드럽게 말하며 초라한 집으로 피에르의 어깨를 밀었다.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엌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치 병원문앞에 서있는 가난한 가족모양 그들은 묵묵히 움직이지도 않는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처녀들이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병든 짐승모양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피에르는 이들의 눈동자 속에 희망에서 절망에 이르는 갖가지 색조를 읽을 수 있었다.
베르나르가 대답한다.
『안녕하시오. 마드레느는 어디있소?』
『전화를 하고 있어요』목쉰 소리가 대꾸한다.
『아, 미쉘! 잘 있었나! 뭐 잘못된 일이 생겼소?』
코가 납작하고 귀가 벌룩한 키 큰 사나이가 벽에서 일어나 나온다. 얘기를 하면서 그는 줄곧 눈을 깜박이고 있다. 권투선수 얼굴에 어린이의 눈이 박혀있다고 할까.
『내 수당(手當) 문제 때문이오. 또 기한을 넘겨서…』
『또!』
『글쎄, 이해해 줘요, 내가…』
『암, 이해하구말구. 내가 이해하는 건 이주일마다 자네 뒷치닥거리를 해야된다는 사실이지!』
『그런건 아니구…』권투선수는 어린학생 같은 몸짓을 하며 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럼 다른 시람들은 어쩌라는거지 미쉘?』베르나르는 대단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그는 묵묵히 앉아있는 방문객들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려다가 행여나 그들의 자존심을 상할가 하여 그만둔다.
『하루는 스물네시간밖에 없어. 알겠나? 그게 사고라고! 피에르 이리 오게』
그들은 옆방으로 갔다. 침대 두 개가 있는 아주 조금만 방이다. 침대 하나는 흐터진체 있고 책상 위에는 신문서류 등이 잔뜩 쌓여있다.
『내 방이야…』
벽에는 베르나르와 꼭닮은 늙은 부인사진이 걸려있다. 벌써 저승 에간 사람이라는 것을 사진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