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종교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미술 또는 교회미술을 말하는 것이고 토착화라는 것은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 다시 말하면 한국화한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문화에 있어서「내것」「네것」을 밝히려하고 그것을 중요시하게 된 것은 현대의 커다란 경향의 하나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적인 사상 한국적인 미, 한국적인 가치관 등을 찾음으로써「내것」을 갖고「내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구를 채워보려는 것이다. 그동안「남의 것」만을 좋은 것으로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모방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때에 비하면 자기를 반성하는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자연과학의 부문에서는 생기지않는 것이나 정신적인 학문과 예술분야에서는 제법 심각한 문제거리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민족적인 혹은 국가적인 특이성과 전통을 되찾아보겠다는 것이 지성인이나 예술인의 고민거리가 되는 것은 약소민족이나 후진국가의 경우에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리스도교적인 미술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미술이라는 것은 실제로 어떠한 것이겠는가? 예를 들어서 가령「성모자상」을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소재로 보아 확실히 그리스도교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 성모가 한복차림이고 예수 아기는 색동저고를 입었다면 그것은 한국적이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참으로「내 것」이라는 느낌이 안나는 것은 웬일일까? 오히려 이것은 외국인 여행자의 이국정취에 더욱 알맞을는지 모르겠다. 대개 이러한 작품들은 사실에 있어서 외국관광객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고 또 그들의 찬사가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어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격이다.
그러므로 이것은「내 것」에 대한 흐뭇한 느낌이 아니라 도리어 공허감을 더욱 느끼게 한다. 외국인이라도 교양이 있고 보는 눈을 가진 인사는 이런 것에 결코 찬사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고궁의 대문앞에 옛날 복장을 입은 수문장을 세우고 빈약한 청홍색 초롱을 매달아 본다거나 거대한 서구식 건물앞에 광화문을 복원하여 출입 통로를 만드는 것으로「내 것」을 찾는 길이라 생각하며 주체의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인사가 있겠으나 사실은 그것은「우리」가「우리」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남」을 위해서 한 일이요 자율적이 아니라 타율적인 일인 것이다. 그런데 더욱 역설적인 것은 기껏 한국적이요 우리 민족 특유의 문화라고 내세운 것이 따지고 보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중국의 것이거나 인도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문화라는 것은 서로 교류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리가 없으면서도 다만 그 문화가 전래된지 오래되어서 우리 것 같이 느껴지고 거기에 우리 조상의 손때가 많이 묻었다는 이유에서 특히 현대에 와서 어느 시대의 어떤 지방의 것을 우리 고유의 문화라고 선전하며 그것을 박물관이 아닌 우리 생활에 되살리려고 하는 여러가지 현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미술의 토착화라는 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천년전에는 자기 것이 아니었던 것을 천년후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바로그것이 아니면 자기라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고집하는데 찬동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국적인 것 한국고유의 것이 마치 기성품처럼 어딘가 따로 떨어져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는 끝없이 교류하는 것이고 풍토에 따라 세월속에 무한히 적응하여 토착화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현대와 같이 교통과 매스콤의 수단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있어서 우리들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다원적이고 복잡한 문화속에 생활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을 긍정해야 할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역사의 흐름속에 형성되었던 과거의 어떠한 문화형태를 고집하고 그것이 유일한「내 것」인 것같이 생각하여 모든 것을 그리로 환원하려는 태도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못하는 독단주의의 꿈속에 잠겨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토착화는 그러므로「내 것」을 찾는다든가 한국화한다는 것보다도 더 근본적인 요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자체를 회복하고 인간의 창조적인 생명에로 복귀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현대의 물질적인 기계문명 기술만능의 시대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고 발전시킨 기계와 기술의 마력 앞에 하나의 파편처럼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인격의 자유도 인간의 존엄성도 개성과 독창성도 거의 상실해버린 것이다.
인간성 그 자체를 말살당하고 나면「내 것」이고「네 것」도 온데 간데 없을것이 아닌가.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미술도 이미 오래전부터 격동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미술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교 미술도 건재할 수가 없다. 무엇이 미술이냐 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형편이 있는 것이 현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현대에 있어서 그리스교를 신앙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면 지금 이때야말로 구원의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는 회심하기에 알맞은 시대다. 참으로 회심하는 자만이 인간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오 인간이 회복한 후에 비로소 새로운 창조력이 솟아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한다.
토착화라는 것의 참 뜻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개발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창조하는 자만이 토착화하는 자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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