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는 제단 뒤에 가서 섰다. 그리고 의사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녀는 잠시 더 기다리더니 이윽고
『난 둘째아이를 뱃는데 낙태를 시키겠다고 신부님한테 말하러 온 거에요』
여자는 마치 시비라도 거는 투로 거칠게 내뱉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대한 시비였을 뿐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준비해 두었던 말… 너무나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이 말…
『그래서?
당신은 그것을 신부가 축복해 주길 바랬소?』피에르는 더 거칠게 말했다
그녀는 곧 알아들었다.
『내가 온 것은 다만 그 신부님이 이해해줄 수 있을까 해서…』여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인다. 『신부님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당신이 어린애를 죽이겠다는 사실 말이요?』
피에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라면 나도 알아들었소.』
『그런 끔직한 말을!』
『첫째아이 이름은 뭐지요?』
『알랭이에요. 뭣때문에 그런 것은…』
『알랭은 두살났소? 세살 났소?』
『열여덟달.』(여자는 경찰에게 말하는 것처럼 간단히 대답한다.)
『알렝이 만일 딸이었다면?』피에르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샹딸』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는데…좋소 샹딸을 죽이시오!』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남편을 붙잡아야겠어요』
여자도 큰 소리로 외쳤다. 피에르는 벽에 걸린 성모상을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이 분을 믿습니까?』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만일 이 분이 자기 남편을 붙잡아 두려고 무슨 짓이라도 했다면 우린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뽈렛트는 잠시 갈피를 못잡는듯 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 애기는 다른 애들하고는 달랐지 않아요!』
『그러면 베르나뎃타는? 또 테레사는? 그들은 다른 애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요!…한 영혼에 생명을 준다는 것, 가장 아름다운 영혼에, 이 세상에서 위대한 성인을 낳을 수 도있고. 당신이 그렇지 못하리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소?』
『난 내가 낳는 인생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어요!』
여자는 떨리는 웃음을 머금고 계속했다.
『한 방안에 네 식구가 살아야하고, 비가 새고, 또 열한시에는 불을 끄기 때문에 쥐가 와서 어린애를 무는 그런 인생이지요. 내가 낳는 건 죽음이예요!』
『알랭이 불행하오?』
『알랭은 골목길 쓰레기 위에서 놀지요.
여자하고 놀 때도 문을 닫을줄 모르는 아랍녀석들 앞에서 놀아요!』
『난 석탑 속에서 놀았소. 열일곱살엔 벌써 내 머리가 시었었소.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되었나 보시오』
『우리는 그래도 역경을 이겨나갔지요! 그러나 그것이 무슨 보장이 되겠어요?』
『하루의 노고는 그날로 족합니다. 이 말은 내가 하는것이 아니고 저 분의 말씀이오.』
피에르는 탁자위의 놓인 십자가를 가르키며 힘차게 말했다.
『지금 현재…』
『지금 현재로는 그 애기는 당신의 따뜻한 뱃속에 있소. 당신 배도 공주의 배 못지 않아요!』
그는 여자의 헐덕이는 숨소리가 들릴 지경으로 가까이 몸을 구부렸다.
자신도 크게 숨을 쉬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딸애가 뱃속에서 놀아요?』
그는 아주 조용히 물었다.
『아니요! 천만에, 아직 안놀아요!』
여자는 소리쳤다.
『애기가 논다면 그런 생각은 감히 못할텐데…』
『신부님! 그만 하세요!』
그녀는 두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안더니
『내 남편은…』하고 입을 연다.
『이름이?』
『작꼬…작끄.』
『쟉꼬가 내 친구라면…』
『그인 당신 친구 아니예요』
『그인 신부들을싫어해요!』
『나도 싫어하지요.』하고는 피에르는 약간 당황해서 곧 말을 잇는다.
『난 이거다 저거다하는 시람들을 싫어해요. 그저 이 사람 저 사람 아니 모든 사람들 특히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하지요.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이니까.』
혼잣말 하듯이 중얼거리더니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여자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애기 가졌다고 쟉꼬가 원망할거라고 생각하시오? 천만에 그반댑니다. 당신을 절대로 용서못할 겁니다…만일…』
『그인 아무것도 모를테니까요. 어차피!』
『모를겁니다. 알아야 할 일도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그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여자는 아직도 저항해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비밀과 피곤밖에는자기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녀는 조용히 제단위에 불을 대고 두 눈을 감았다. 관자노리가 마구 뛰고 있었다. 피에르는 이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 이마에 입맞추고 싶었다.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그 이마에 성호를 그었다.
『왜그래요?』여자는 깜짝 놀라며묻는다.
『아무것도 아니요 뽈렛트 집에 돌아가시오. 그리고 애기가 놀기 시작하면 쟉꼬에게 말하시오. 그리고 내게도 말해주고…』
『안녕히 계세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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