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지나가다가 흔히 놀고 있는 꼬마한테서 주목을 받게된다. 때로는「수녀 아줌마」라고 부르며 반겨주고 때로는 그냥「아주머니」라고 부른다. 나는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어린애들의 입에서 진리가 나온다는 성경말씀도 있으니 나는『아이들이 나보고 자기집식구처럼 알아주는구나』하고 생각하며 마음이 흐뭇해진다. 하지만 어떤때는 이와 반대로 외국인 대우를 받게 된다.『할-로』『오-케』라고 하면서 지나가는 나를 괴롭히곤 한다. 나는 눈도 파랗지 않고 코도 높지 않은데 돼 그렇듯이 남에게 인상을 줄까 속으로 생각한다. 내 옆에 같이 걷는 수녀가 외국분이라면 몰라도 분명히 둘다 동양사람인데 하필이면 아무 선입관도 없는 어린애들마저 우리를 외국사람으로 여겨야만 되겠는가? 수도생활이라는 것은 국산이 아니라 반드시 외래품이라야 될까? 80또는 90년전에 외래품이었던 것도 요즘에 와서는 우리 땅에 뿌리박혀 국산으로 변했어야 되지 않을까? 좀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종교란 국경을 넘어 모든 이의 것이라야 되며 어느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것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아니될 줄로 아는데 특히「가톨릭」이란 범세계적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해진 수도생활이지만 외국인 그것을 그대로 옮겨와 이국적 색채가 섞여 있는지를 우리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즉 수도 생활이 토착화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도 어머니의 태중에 돌아가 다시한번 태어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수도생활은 영세받아야겠다. 한국의 고유문화에서부터 태어남으로써 영세받아야겠다
한국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과 들어맞도록 힘써보아야 되겠다.
오늘의 수도생활을 차분히 살펴보면 먼저 눈에띄는것이 수도원의 지리적인 위치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계획 중에서도 하나의 요책으로 알려진 관광사업은 국내외의 관광객에게 우리의 금수강산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러는 중 여객이 한숨 쉬게 한 것은 깊은 산속에 엿보이는 절간이다. 더욱 절에서 사시는 스님과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님들의 슬기로운 말씀은 손님의 마음에 평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우리 수도원을 보면 눈에 띄는 산 기슭에나 도시의 시끄러운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20세기의 수도자로서 사회참여의 사명을 내걸고 산이나 숲속으로 달아난다면 이는 토착화도 아니요 현대화도 아닌 모순투성이가 되지만 동양인다웁게 아름다움 속에서 명상하려 하는 참된 갈망은 있어야 20세기말의 전진하는 수도자가 되리라 생각한다.
수도자들의 기도생활을 살필 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희랍철학에 바탕을 둔 추리적인 묵상방법을 배웠다. 지금도 2세들이 배우고 있을 것이다. 상상력 이성 의지력 정서 등을 나눠서 성경의 한 장면을 두고 묵상한다. 상상중에 오관을 통해 고찰한 후 사색하되차차 결론이 나게 노력한다. 그러면 의지력을 동원시켜 결심을 내리도록 한다. 끝으로 하느님 또는 성인성녀와 함께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추상적인 진리 또는 덕행 또는 현실적인 사건을두고 이와 비슷한 식으로 묵상한다.
이런 단계를 밟은 후 수도자는 명상을 할 자격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묵상방법은 서양철학에 의거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에게는 적당하지만 한꺼번에 보고 느끼고 머리를 통하기보다 마음을 통해 생각하는 동양인의 사고 방식과는 각도가 따르다.
요즘에는 서양에서도 선이니「요가」니 하는 것들이 젊은이들 가운데서 인기가 많다는데 우리가 지니고 있는 보배를 오히려 사용할 줄 모르고 있는것 같다. 수백년 동안에 한결같이 요가를 즐겨 실시해온 인도사람들의 예지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있다.
동서양의 사고방식중에 또 하나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싶다. 수도생활이우리나라에 도입된 당시에「수도」라는 두 글자를 찾아내신 분은 아마 이것이 토착화가 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도를 찾는 이는 방법이 무엇이든간에 인간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음으로 귀착해야 됨을 알았다. 특별히 도를 찾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덕행을 닦기 위해서는 공자가말씀하듯이 먼저 마음을 옳게 놓고 뜻을 순수히 세운 후 덕을 닦고 집을평화롭게 만들며 나아가서는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고 온천하를 일치시킬 수 있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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