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권이 유럽 이외의 문화권들이 지난 혼인 및 가정에 관한 잡다한 개념 내지 구조와 접촉함으로써 종래의 혼인신학이 커다란 충격을 받게됐다. 이제는 혼인과 가정의 윤리신학을 교회법에 때려맞추는 식으로 전개할수 없게 되었다. 교회법이 바로 「복음」이 아니고 유럽문화 안에서 발전한 한가지 근접방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구세사 전체에 유의하여 전개해야 할 혼인신학의 연구대상은 혼인의 성사성, 혼인 동의의 인간학적 조건들 혼인을 유효하게 하는 현행 교회법이 요구하는 형식 문화의 다양성을 감안할때 제기되는 혼인에 관한 교회법 규정 전반의 문제 이혼의 급증 산아조절 문제 등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혼인과 가정의 신성함을 강조하면서 가장 인격적이고 인격화하는 실재로서의 사랑과 충실의 恩約을 강조하고 동시에 제도적인 측면들을 강조하고 있다. 결코 제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지않다. 사랑이 제도를 위해 있는것이 아니라 제도가 부부사랑과 부모사랑의 안정성과 충실성을 위해 있다. 출발점은 교회법에서처럼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계약」이 아니다. 공의회는 결혼을 하느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은약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맺으신 은약과 연관짓는다.
계약은 맺은 사람들이 상호합의하에 해약할 수도 있는 것이 근본적 성격이지만 은약은 성서적인 개념으로서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맺으신 새롭고 영원한 은약은 그리스도께서 화해하시는 분으로서 현존하심을 의미한다. 교회의 범죄, 교직자들과 백성의 범죄도 이 은약을 파기시키지 못한다. 교회는 은약의 성사이다. 교회의 제도 역시 교회의 성사성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교회법과 교회의 제도적 구조로서 성사성의 의미를 다 나타내지 못한다. 결혼제도와 가정제도 역시 결혼과 가정의 성사성이 발휘되는데 필요한 틀에 불과하다. 성사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 틀은 남아있을수 있다. 성사의 기능을 살린 결혼이 살아있는 혼배성사이다. 어떤 이는 결혼예식을 혼배성사라고 생각하고 법률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는 법률상의 형식에만 신경을 집중, 무효조당에 저촉되지 않으면 혼배성사가 이뤄진다고 말한다. 이들은 혼인성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교회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는 규정이나 그리스도교 결혼의 계약 체결적 요소들을 우리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것들도 결혼의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결혼 당사자들이 세례를 받았을뿐 신앙이 없는 경우 그들의 결혼이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의 결혼 이상으로 하나의 성사가 될수 있겠는가? 예식절차를 준수하기만 하면 결혼의 성사성이 부여된다고 한다면 성사성을 의식주의로 격하시킬 위험이 있다. 경건한 비그리스도교인들간의 결혼에 대해서도 성사성을 인정할수 있다. 그들이 결혼서약을 충실히 지켜 배우자와 주위 세계에 사랑과 충실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 그 결혼은 성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사랑과 충실은 하느님안에 그 최종근원을 두고있으며 그것이 결혼을 구원의 참된 길이 되게한다.
■ 종교적인 결혼과 교회법상의 결혼요식
제대로 이해한다면 제대 앞에서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앞에서 행하는 결혼식은 교육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그러한 결혼식으로서 그리스도께 충실한 결혼생활은 영과 진리로 하느님을 공경하는 생활이라는 의식을 고양시킨다.
그러나 교회법적 요식과 종교적 결혼식에 대해 지나치게 편중, 강조하는 것은 때때로 「결혼생활 전체에 걸친 진실되고 충실한 사랑은 그 자체로서 넓은 의미의 성사」라는 사실을 등한시하게 된다. 은약을 맺는 성대한 결혼식은 일생에 걸친 성장과 정확과정의 갓시작일 뿐이다. 사제 앞에서 식을 올리지 못했지만 충실하고 너그러운 사랑으로 영위되는 결혼생활을「뜨리덴띠노」공의회 이전에는 유효하고 종교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결혼으로 간주했다. 「뜨리덴띠노」공의회가 사제와 증인 앞에서 올린 식만을 혼배성사로 인정한 것은 비밀결혼의 남용을 막기 위함이었다. 성사는 하나의 볼수 있는 표지이다. 따라서 숨어사는 비밀결혼은 성사적인 실재가 될수 없다. 전인간적 사랑의 성적(性的)표현으로서 배우자들간의 육체적 결합은 서로 더 주고 존경하고 격려하고 용서하는 생활로 발전한다면 진정 성사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부부행위가 생활이나 사랑과는 무관한 동떨어진 행위라면 그것은 진실된 것도 아니며 성사적인 성질의 것도 아니다.
■ 생활의 봉사자들
배우자들의 육체적인 결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맺은 은약의 살아있는 진정한 표현이 된다. 부부행위 때마다 출산을 의식적으로 원할 필요는 없다. 그 행위를 통해 부부간의 사랑이 심화되어야하며 사랑이 깊어지면 부부간의 사랑에 참여할 자녀를 원하게 되고 조화있는 평온한 분위기속에 교육할수 있는 힘을 얻게된다. 성사적인 은약으로서의 결혼은 이미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은약,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핵심을 이루는 은약으로 예시되어 있다. 만일 배우자들이 두 사람의 안일만 찾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부모가 되는 소명을 거절한다면 그 결혼은 살아있는 성사가 될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출산은 살아있는 성사로서의 결혼의 한가지 특징적인 면이다. 그리고 자녀를 갖고자 간절히 원하면서 부모가 되면 그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도 자녀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런 결혼도 역시 떳떳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주는 성사이다.
<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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