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생활의 수련기를 보면 겉에 보이는 규칙에 치중하고 마음의 태도는 오히려 2차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수덕과정에서도「뜻을 옳게 세운데」대해서 많은 설명을 듣지만 실지로 수련자에게 요구된 것은 내면적인 것이 아니라 외면적인 것이다. 규칙에만 걸리지 않으면 되고 수도생활을 택하는 동기와 수련자의 근본적인 태세는 소홀이 여겨지는 경향이 많다. 기구 생활에 있어서도 그렇거니와 수덕생활에 있어서도 우리 동양 사람은「마음」의 위치를 새삼 알아두어야 하겠다.
요는 그것이다. 오늘 수도원에 찾아가는 사람들이 옛날에 살았더라면 과연 절간에 찾아갔었을 것인지 이것이 바로 문제다. 수도생활이 정말 토착화될 필요가 있다면 불교인지 가톨릭인지 그리고 옛날인지 현대인지를 막론하고 수도생활을 원하는 사람은 동양인의사고방식에 의한「수도감」이라야 되겠다.
2천년이란 세월을 걸쳐도 몇만리의 바다와 산을 넘어도 수도생활의 양식이 바뀌지 그 정신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바티깐」제2차 공의회는 현대적응만을 강조하지않고 복음정신의「쇄신」을 호소했다. 쇄신은 복구이다. 그런데 천만다행일지 아니면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일지 복음정신은 애초부터 참된 뜻을 품고 절간에 찾아간 스님들의 정신과 근본적으로 유사한 점이 있다.
절에 찾아가는 것도 일종의 도피이겠지만 순수한 뜻을 품고 그럴 경우에는 욕심에서 부터 도피하려하는 것이요 소아에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그들의 성의는 바늘을 목에 대고 기구를 할만큼 큰 것이다. 그분들을 만나보고 나면 수도생활을 하는데 새로운 용기가 솟아나올 정도로 불교 스님들 중에서는 순수한 수도자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들은 현실을 도피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인생의 가장 큰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 수도자들 중에서도 순수한 수도정신을 가지신 분들이 많겠지만 성실한 두 눈으로 자신을 살펴볼 때에 우리의 수도정신은 물들었음을 발견하게된다. 수도자의 대량생산은더욱 이러한 결과를가져온다. 우리의 경우에는 불교의 경우와 반대로「사회참여」라고 부르짖으면서도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수가 많다. 사회나 교회의 분위기는 이를 돕고있다. 다행이 아니라 불행이겠지만 우리나라 사회는「수도자」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준다.
따라서 인간조건에 의해 자신에게는 제한이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속된 의미에서 말하는 높은 곳을 향해 한숨 쉰다. 공부한다느니 서울에 간다느니 모두 이유가 있고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맞지 않을 경우에 또는 개인의 노력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 정신이 육화하신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방향이 반대됨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도를 찾는 이들도 무언가를 도피하지만 그들이 모든 욕심을 철저히 제거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현실을 받아들여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대아로 향해 투쟁하는 것이요 우리는 그야말로 현실도피주의자다. 우리는 선한 명칭 아래에 무서운 욕심을 감춰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육화를 보면 도를 찾는 이들의「도피」와 유사한 점이 있을지 모르나 현실 도피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도는「노예의 형체」인 혈과 육의 현실을 스스로 갖추기를 원하셨으며 왕이나 스승이되는 영광을 피하셨다.
아무리 눈이 파랗고 코가 높다하더라도 육화의 정신을 가졌으면 동양에서도「국산품」이된 외국수도자들이있다. 토착화문제는 국적이나 풍습의 문제라기보다 정신문제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수도 생활이 순수한 동양식이 아니라면 이는 수도생활을 도입해 준 외국수도자들의 탓이 아니라 우리들의 탓일 거다. 그렇다고 하여 불교를 믿자는 것도 아니고 수도원을 경치좋은 깊은 산속으로 옮기자는 말도 아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는 수도자들이다. 다만 복음은 외래적인 것이 아니라 씨앗이 벌써 우리의 고유문화안에 심어져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속 가장 깊은 욕망에 들어 맞는 것이다. 수도자들이 시골의 흙길에서 뛰노는 꼬마들의 동심안에서까지 숨어있는 그 무엇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만큼 우리는 토착화에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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