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주님께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주님은 대답하셨다. 『나다. 내가 있다』『이것이 내 이름이다. 네가 내 이름을 알았으니 이제부터 내가 너와 계약을 맺겠다. 나는 네 백성의 하느님이 될 것이며 네 백성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 후부터 그 백성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았고 온갖 역경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헷갈리고 요상한 짓들을 일삼았다. 이것을 내려다보신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가족회의가 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시다. 성부께서 성자께 말씀하셨다: 『네가 내려가서 내 이름을 다시 알려주어라』성신께 말씀하셨다:『너는 내려가서 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氣)를 넣어주어라』『우리 다 같이 새 나라 새 백성을 만들자』
오늘 설명하려는 주의 기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이름을 다시 알리고 그 이름으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청원하는 기도이다.
「우리 아버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새로 가르쳐주신 하느님의 이름이다 하늘과 땅은 그야말로 천양지차(天壤之差)이지만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써 천지간은 서로 통교(通交)하게 된다. 이 나라에서 죄인들이 하느님께「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 누구신가를 물으면 이제는 우리 아버지라고 하면 된다. 온 누리에 백성들이 모두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느님의 영광은 최대로 드러나고 그 거룩하심이 나타난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모든 사람이 자녀가 됨으로써 빛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전교를 시작할 때 제1성은『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하느님나라를 완성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었다. 복음서의 모든 가르침은 여기에 집중된다. 그것은 지상명령이었다.
「그 나라가 임하시며」이 나라에서는 백성들이 서로 형제가 되어 사랑하고 돕는 것을 헌법으로 한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제 것을 움켜쥐고 남의 것을 빼앗으며, 남을 헐뜯는 추한 꼴을 볼 수 없으며 순진한 어린이처럼 없으면 청하고 달라면 주는 사랑의 진리를 실천한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루가10.21)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느님 나라 시민은 노상 하늘만 쳐다보는 뜬구름 시민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그 나라를 지탱해야한다. 우선 다급한 일은 생명유지이다. 하느님이 주신생명을 잘 키우는 일에서 하느님나라 건설은 시작된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원문대로는「매일의 빵을 주시고」하고 되어있다. 빵은 생활의 기본이다. 술과 불고기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양식만을 청하는 것이다. 구약성서 잠언에는「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시고 먹고 살만큼만 주소서.」(30.8)라고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는 미움, 증오 같은 것은 그림자도 없어야한다. 지옥의 고통은 늘 미워하며 죽지도 않는데 있다. 미움은 지옥의 특징이지 하느님나라와는 불상용(不相容)의 성질이 있다. 지상에 건설되는 하느님나라에서는 용서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용서하지 않고는 사람을 사랑할 수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도 없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않고 어찌 하님의 용서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이 세상의 죄의 유혹은 늘 있게 마련이고 사람을 죄짓게 하는 이 세상은 참으로 불행하다(마태18.7). 예수의 말씀이다. 그러나 유혹이 있기에 이세상은 한 번 살아 볼만도 하다. 유혹이란 성서원문의 말은 시련, 투쟁, 몸부림이란 뜻이다. 인생이 시련에 에워싸여 있는 운명은 하느님이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자유는 있고 시련은 없는 존재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죄에로의 유혹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이냐 악마냐에 갈림길에서 악마 편에 매력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은 진실하시고 악마는 속임수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속을 들여다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고 악마의 속임수는 겉이 번지르르하다. 그러니 인생은 시련이고 시련을 겪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께 충성을 지키는 값진 공적으로 치부된다.
인류는 시초부터 이 시련에 직면하였다. 아담과 이브는 한때 유혹에 빠졌지만 이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아브라함은 충성의 시련을 신앙으로 잘 견디어냈다. 욥은 시련을 받으면서 처음에 투덜거렸지만 결국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극복하였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대표자로 시련을 감수하셨다. 그 후 사도들이 이를 극복하였고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들이 매일 매일의 신앙생활에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결국 신앙의 시련을 겪고 있는 시금석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야금(冶金)의 용광로를 거쳐서 완성된다.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 예수께서는 눈앞에 다가온 십자가의 쓴 잔을 마셔야하는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우리가 악에 짓눌려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악에서 구하소서」청원중의 청원이며 차라리 애소에 가깝다. 악이 어디서 생겼느냐, 왜 악을 겪어야 하느냐 등 문제는 여기서 따질 필요가 없다. 악에서 구원되는 것이 문제이다. 악은 사람에게도 나쁘고 하느님에게도 나쁘다. 사람에게도 억울하지만 하느님에게는 더 억울하다. 악을 없애는 작업은 사람과 하느님의 공동 작업이다. 사람은 노력하고 하느님은 은총을 내려 주신다. 악을 없애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사활이 걸린 일이다. 아버지의 이름이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거룩히 빛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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