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자유의지를 주셨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고 인간이 당신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하느님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는 자유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자기행동에 대한 책임도 함께 주어졌다.
처음 창조된 인류의 시조는 타락하지 않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과 친밀히 결합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성실하게 하느님을 섬기며 근본적으로 죄악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누렸고 성서는 이것을「낙원」이라 칭하고 있다(구약에서 낙원이란 반드시 장소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시조의 기원(起源)
인류이 기원이 일원적(一元的)인가, 다원적(多元的)인가에 대해 과학자들은 잦은 논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천주교는 인류의 기원은 일원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이 학설을 반드시 믿을 교리로 가르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오직 한분이신 조물주-하느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학과 진화론이 인간의 신체는 별로 건전하지 못한 유기체로부터 서서히 진화되었다고 한다면 실험과학은 인간의 출현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과학의 연구를 초월하는 요소, 즉 정신성을 구비하고 있다.
인간이 바로 인간이 될 수 있음은 하느님이 그에게 영혼을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지혜와 자유의지가 있으며 절대로 우연에서 출현하거나 자연도태의 결과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한 자유로 인간의 영혼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인류의 시작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가를 실험과학은 확실히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의 시조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성경의 첫 권 창제기는 사실상 마지막 저작중의 하나이다(기원전 5C경).
창세기에 묘사된 이야기는 절대적인 신화가 아니다. 그러나 묘사방식은 이웃나라의 신화를 빌리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신화적 형식을 이용한 것은 당시의 독자들이 교의(敎義)의 계시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창세기는 인간에게 계명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격언성어(格言成語)와 유사하여 대중에게 깨우침을 주기에 적합하다.
창세기 앞의 3장에 나타난 계시의 가르침을 볼 때, 이세상과 인류에 대한 낙관적이고 고상한 관념은 모든 고루한 전설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 속에서는 여타 신화세계처럼 선악이 대립된 이원론은 절대로 찾아볼 수 없고 하느님이 유일한 조물주이시고 그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이다.
인류의 원죄
성서는 이 원죄를 창세기에서만, 그것도 비유의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이 비유에 담긴 계시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금과(禁果)의 비유는 비교적 이해가 쉽다. 시조는 하느님의 계명을 생각지도 않고 하느님을 주재자로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하느님과 비교할 망상까지 한다. 그들의 이러한 거절행위가 인류죄악의 발상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창조 전부터 인류의 타락을 아셨기에 인류구원은 계획을 세우시고 장래에 한분의 구세주가 세상에 강생하시는 것을 허락하셨다. 하느님의 자유와 인간 내면의 자유, 이 양자의 관계야말로 인간으로서는 해석할 수 없는 오묘함이요, 더욱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신비로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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