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의 최○○씨는 파혼문제 때문에 상담소를 찾았다. 어머니와 함께 온 최○○씨는 오히려 차분했지만 어머니는 흥분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최○○씨가 작년 가을에 어머니 친구의 중매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전문대를 졸업한 사람으로 모회사 영업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 결혼을 전제로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만나면서 결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사자만 어느 정도 마음에 들면 모든 절차문제는 중매인과 부모님이 알아서 추진시켜주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함께 기뻐해 주었다.
겨울을 넘기고 지난 4월에 약혼을 했고 결혼은 가을로 예정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면서 사랑을 확인하고 일생의 반려자로 서로의 위치를 다져나갔다.
최○○씨 집에서는 약혼 후 내 사위가 되었다 싶어 신랑이 더욱 믿음직하고 정이 갔다. 지난 추석 때는 양쪽 집에서 예비며느리로 예비사위로서 명절을 같이 지내기도 했다. 결혼을 앞두고 최씨 집에서는 그 준비에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이미 예정된 혼인이었다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더욱 힘들었다. 혼수와 예단 때문에 이돈ㆍ저돈 돌려서 흠 잡히지 않게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로의 형편을 잘 아는 사이이니 분수에 맞게 성의껏 마련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혼수는 그렇게 해도 되지만 시집식구들 예단만은 여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물건을 준비할 수가 없어 중매인을 통해 신랑 쪽 친척이 몇 명이나 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의중을 떠 알아달라고 부탁했다.
신랑 집에서는 장남에 첫혼인이고 집안이 번다하여 체면을 유지시켜 달라고 했는데 물건을 사지 말고 돈으로 건네 달라고 하더라는 답이었다. 직계 10명 에게는 1인당 30만원씩, 그 외 친척들 15명에게는 1인당 20만원씩 계산해서 달라고 요구하더라는 것이었다.
새색시가 시집식구에게 첫인사로 드리는 선물은 1인당 얼마씩 돈으로 계산해 달라는 데서 최○○씨와 부모님은 화가 났다. 본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집안 어른들이 하시는 일이니 본인은 잘 모르겠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대답이어서 결국 신랑도 같은 생각인 것을 알았다.
최○○씨는 그럴만한 형편도 못될 뿐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중매인에게 그 요구가 지나치지 않으냐고 불쾌한 심정을 이야기 했고 신랑에게 부모님이 성의껏 해주는 대로 받도록 설득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이『돈 밖에 모르는 형편없는 집안』이라고 욕한 것으로 와전되었고 양가에 할 말 못 할 말로 싸움이 되었다. 결국 당사자 사이에도 연락이 끊기고 이 문제가 수습되지 않은 채로 결혼날짜인 10월을 넘기고 말았다.
어머니는 너무 분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송을 해서라도 손해배상을 받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단다. 결혼이 깨진 것이 참으로 잘 된 일이라고 했다. 그 남자를 사랑했고 결혼에 대한 꿈이 깨진 것은 가슴 아프지만 세월이 가면 극복해 갈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혼수와 예단문제로 파혼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상담창구에서 사람과 사람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인격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조건으로 계약거래를 하는 타락된 결혼 풍속이 늘어가고 있어 큰 걱정으로 하게 된다.
어머니의 말대로 파혼으로 인한 물질적 손해배상과 위자료청구는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최○○씨 본인이 상처를 씻고 건강한 삶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어 법적인 승리보다 더 큰 승리를 이미 차지한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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