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생활의 토착화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쉽게 생각하여 사제생활이란 신부들이 살아나가는 것을 말하고 토착화란 우리들의 것이 아닌것 같은 외래적인 것을 우리들의 것으로 동질화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외국인선교사의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신자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을 성직자로 제정한」(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2) 한국인 신부들의 생활에 토착화할 것이 있다니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러나 기도문의 모국어화가 있었고 전례의 토착화가 있을 수 있듯이 종래의 서구문화에 싸인 기독교를 신봉함으로써 얻은 기독교 신자생활 가운데의 이방적인 요소를 한국화할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신부들의 생활에 더 많을 것임을 추축하여 사제생활의 토착화란 말이 나온 것일 것이다.
가령 한 시골 소년이 신부가 아침에 빵으로 식사하는 것을 보고 신부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것 같이 생각을 한다면 신부는 보통 다른 사람과 생활이 틀린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견해가 성립 할 수도 있는 것이며 시골국민학교 선생이「로만칼라」를 한 한국인 신부에게『신부님은 한국어를 곧잘하신다』고 말할만치 신부는 모두 서양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한 전교지방이 있다면 신부의 생활이 정말 자기들과 같고 신부가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도록 할 사제 생활의 토착화가 필요할 것이다.
실은 의식주 생활의 양식의 근소한 차이 밖에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일른지 모르나 신부의 생활이 일반 시민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은 가끔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신부들이 자기들과 꼭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세상을 살고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한다고 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르면 다를수록 신부 존재의 신비로운 일면을 강조할 수도 있었으며 그리스도 신비의 분배자로서 성사를 집행하는 활동은 신비로운 권유를 가지고 더욱 무난히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사제가 다만 하나의 성사의 집행인이라면 그리고 또 그 성사도 사효성 (事效性)을 다소 강조한다면 사제ㆍ생활의 토착화란 문제는 없어도 좋을것이다. 서양 신부가 라띤어로도 훌륭하게 하던 일이 아닌가!「뜨리덴띠노」공의회의 사제는 신도사회에서 제사를 봉헌하고 죄를 사하는 것으로 족할 수 있었으나 오늘의 사제는 그것보다 더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의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전할 책임을 가진 사제는 신앙의 성사 못지 않게 말씀의 선교에 힘을 따해야 할 것이다. 신앙은 말씀을 들음에서 생기고 그 말씀은 일반적으로나 추상적으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영원한 진리를 구체적 생활 환경에 적용시켜 설명해야하는 것이다. (사제 교령 4) 그것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서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강생의 신비에 비추어 생각하면 더욱더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사제는 지상 생활과는 다른 생활의 증인이 되고 관리자가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성직자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실생활과 그 생활조건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면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도 없다』(사제교령 3) 는 말을 이번 공의회는 공언하는 것이다.
복음의 교회적 신비의 체험을 전하는 사제는 그 전달을 위해 전함을 받는 사람과 적어도 같은 경험을 이룰 수 있는 기저의 전통문화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래서 사제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의 것이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사제생활의 토착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사제는 신도들과 또 일반시민과 동일한 경험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실생활 양식의 차이가 없어져야 한다면 그보다 더 그 경험들을 수용하는 주체의 사고방식이 일방적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신부의 생활을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노력하여 친근하게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신교의 목사와 불교의 스님과 신부가 각기 자기신앙에 대한 강연을 하는데 이치에 맞는 것은 신부의 강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엇인지 모르게 공명을 느끼게 하는데는 스님의 설법에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불교적인 풍토에서 살기 때문에 신부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혈육에 배인 불교적인 요소가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신부의 말이 이치에만 맞는 것은 아직 수천년을 이땅에서 살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것 뿐인가? 신부 아니라 누구라도 진실로 참되고 아름답고 바른 생활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생활을 보고 참되고 아름답고 바른 것을 느끼면서 따르게 될 것이다 외면적인 것은 진실된 내부 생활의 표현이라야 할 것이다 그것 이외의 외부의 제한은 뜻이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알아 듣도록 모든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되 사제 생활은 그 생활을 통해모든 사람에게 참되고 아름답고 바른 생활을 제시할 수 있도록 신앙의 힘으로 그 평범한 생활에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이다. 토착화는 각자가 자기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 복음의 생활을 할 때 토착화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사제는 무엇보다도 복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신부들의 생활의 복음화가 있은 연후에 신부들의 생활의 한국화, 토착화가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