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현란한 발달 앞에서 인간의 정신적 구조속에까지 가치관이나 이념이 걷잡을 수 없이 변모해가서 이제는 교회의 생활 양식도 점차로 사회와의 간격을 좁히기위해 변모해야만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교회의 사명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고 사회가 혼탁한 격류에서 허덕이고 있을지라도 교회 본연의 자세는 더욱 더 견고히 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먹구름속에서 태양빛이 더욱 눈부신 것처럼 우리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안에서 협동과 봉사로 주님의 사랑의나라를 우리안에 건설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어려운 사회ㆍ빈부의 차가 격심한 사회적인 악순환속에서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일까? 또 교형자매들은 이웃을 어떻게 돕고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빈곤에서 어떻게 구제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지난해 수도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려 영등포의 가난한 주민들은 그들의 소중한 가재도구를 잃고 절망속에서 허덕이고 있을때 교회는 선뜻 그 이재민들에게 성당을 안식처로 내어놓았던것이다. 그것은 마치 노아의 홍수때 모양으로 성당은 하느님의 백성 모두에게 구호의 존재로 제공되어야만 했다. 교회란 인류구원의 방주로서의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성전이기 때문에 고립될수 없고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된다는 의미에서 닫쳐진 문을 활짝 개방하게 된 것이다.
흔히 하느님만을 사랑하는 종교인이 아니고 가난한 인간들을 가까이 하고 그들안에 살으시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다. 갈곳이 없어 헤매이는 가난한 이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은 전해져야하고 구원의 센타가 되어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야심도 없으며 다만 구하려고 했던 것은 지상의 보배인 인간이었다. 이 보배는 성당안에 충만되었고 거기에는 오로지 사람과 사람이 결합된 사랑의 보금자리로 변했고 어떠한 슬픔의 힘일지라도 무너뜨릴수가 없는 행복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체험한 그들은 인간사에 관심을 갖고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며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모상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교회가 인류 특히 가난한 이에게 취해야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재삼 생각하게 해준다. 이상은 수재민 구호사업에서 얻은 한가지 실례이지만 본당에서의 구빈사업은 무수히 많고 그 영역도 한없이 넓다고 본다.
과거 실업문제가 사회문제의 초점이 되었을 때에는 빈곤이라는 것이 구빈사업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단지 경제학적인 견지에서 해결책을 구하여 보았으나 얻지 못하였고 다음은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여 사실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만족을 얻지못하고 근래에 와서는 심리학적인 견지에서 대상을 파악하고 분석하며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현장이다.
문화생활이 복잡하여지면 질수록 구빈사업의 대상에 대한 해결방법도 단순에서 복잡화하여 가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조직이나 정치형태의 여하에 불구하고 구빈사업의 범위나 명칭에는 변화가 있을지 몰라도 어떠한 형식으로서든지 이 사업은 영속될 것이다. 여기에 구빈사업의 영원성이 있다.
본당은 교회의 이미지를 측량하는 기준으로서 그 활동이 성격과 질을 규명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 옛날처럼 구제품을 가난한 이에게 분배하는식의 구제방법은 지양되어야 할것이다. 흔히 베풀고도 배은망덕과 욕을먹는 것은 그 방법에 어떤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시설과 단체 등이 그저 전도목적과 신도의 증가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고 진실로 근대적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입장에서 활동한다면 그것은 구빈사업에 있어서 가치있는 자원이 될수있다.
특히 가정과 기타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또한 수용되어지지 않고 있는 소위 사회적 기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본당에서의 구빈사업은 부모의 대리기능자로서 현실 그대로 그에게 친절을 베풀고 돌보아 줌으로써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라』(시 27ㆍ10)라고 말씀하신 구약성서의 말씀을 실증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JㆍOㆍC나 신용조합, 안양에 있는 근로자센타 구두닦이나 신문을 파는 불우한 청소년들의 교육 야간을 이용한 성인교육맞벌이를 하는 부부들을 위한 탁아소 버스차장이나 윤락여성들의 교육 등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어두운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보건적으로 미달한 사람들을 스스로가 도달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본다.
지금까지는 본당에서 할수 있는 구빈사업의 영역을 살펴보았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가난한 이를 돕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조건 무엇을 주느냐 하는것 보다는 어떻게 주느냐 하는 방법과 정신과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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