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거의 매일 저녁 이러네 어제밤에도 열 한 명을 재웠어!』
『아까 그 두 사람은 내일 또 잘 곳을 찾아줘야 하지 않겠소?』
『같은 사람이 두 번 온다는 건 거의없어…』
대답하던 베르나르가 잠시 후에 다시 계속한다
『같은 사람이건 다른 사람이건 무슨 차이가 있겠나?』
『대단히 큰 차이가 있지!』
피에르는 속으로 생각했으나 그 이유는 자기 자신도 똑똑히 말할 순 없었다.
베르나르가 계속한다.
『차라리 항상 같은 사람이라면 나을거야. 끝장을 볼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이건 밑빠진 독에 물 붓기지 내 힘에 겨운 일이야.』
낮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린다. 그는 눈을 밑으로 내려뜨고 있었다.
『끝장을 보겠지 뭐!』
하며 그는 유쾌한 몸짓으로 베르나르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공산당원들이 하는 얘기가 그거 아니야! 그러나 피에르 자네는 그렇지않다는 걸 알지 않나. 하느님의 나라는…』
얘기를 시작하던 그의 목소리가 뚝 끊긴다.
「싸니」도 하느님의 나라가 될거요』피에르는 이렇게 말은 했으나 전신이 무거워지며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들이「조라」거리에돌아왔을 때는 푸른쟈켓을 입은 사나이가 혼자 전등불 밑에서 부엌 테이불에 엎디어 팔을 베고 잠들고 있었다. 그는 매맞은 어린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그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며 의자를 쓰러뜨렸다.
『무서워 할 것 없소』피에르가 타일른다.
『나요!』베르나르는 부드럽게 덧붙인다.
『왜 어둡지 않았소?』
『어디서 자야할지 몰라서…』
『내 침대 깔개를 끌어내서 자요. 왼쪽 침대요!』
『그러지요!』사나이는 한마디 던지고 방으로 향하더니 문간에서 잠간 돌아서서 두 사람에게 손짓을 해보인다.
『처음에는 익숙해질 수 없더니…』베르나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뭐요?』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 모르는데』
『그전에 아버지께선 무얼하셨소?』
『교육자였어』
『그럼 가정교육이 좋았겠군』
피에르가 웃으며 말한다.
『우리 아버진 광부였소. 난 한번도「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도 말도 못들어봤어. 그래도 그들은 친구를 구하러 탄광굴 속에 말없이 내려가곤 했소』
『예모없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네. 그러나 예모있는 사람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남을 괴롭히는데 다를뿐이란 걸 나도 이젠 알았어』
『미사를 드립시다. 저 사람을 깨울까?』
피에르가 묻는다.
『아니! 미사를 강요하라구? 내게 고마워하라는 미사를? 그야말로「가정교육」을 잘못받은게 되게! 그 사람이 미사에 참석하고 싶으면 문을 열겠지』
두 사람은 누워있는 사나이를 타고 넘어가서 제단을 준비했다.
베르나르는 국방색 쟈켓 위에 천천히 제의를 입었다.
PAX라는 글자가 새겨진 제의를 입기전에 하이얀 장백의를 입고 가슴 위에 영대를 걸었다. 그리고 제단에가서 피에르쪽을 향해섰다.
그리고는 두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오랜시간이 흘렀다.
피에르는 불안과 연민이 뒤섞인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손을 내린 베르나르의 얼굴에는 오히려 미소가 떠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산 이들을 생각하는 대목에 이르자 베르나르 신부는 걱정이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나 하나 부르며 한참씩 기구에 잠겼다. 마침내 그는 하기 힘든 말을 하듯 덧붙인다.
『…백이십이번지의 문지기 여자를 위해서…그리고 루이를 위해서…』
『뽈렛트와 샹딸을 위해서 기구합시다』
피에르도 이름을 불렀다.
『오늘밤 여기서 자는 청년을 위해서 기구합시다.』
피에르는 등뒤에 숨소리를 느끼고 돌아다 보았다. 그 사나이가 문을 반쯤열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또다시 어린애같이 순박해보였다.
베르나르는 오늘밤은
『미사가 끝납니다』
하는 대신에 이렇게 끝을 맺었다.
『가라 너의 사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순간 피에르는 전신이 떨려왔다. 그만 두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그는 무릎을 꿇고 축복을 받았다. 신품성사 받던 날의 그 겸향한 마음으로.
베르나르는 묵묵히 제의를 벗어 옷장에 걸었다. 작업복과 커다란 망또도그 옆에 걸려 있었다. 그는 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기쁨과 불행이 엇갈린 미소. 엄청난 기쁨, 그러나 불행이 더욱 강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그 미소를….
『피에르 자겠나?』
『아니 한바퀴 돌고 오겠소』
『여기선 일찍 자야하네. 아니면 견뎌나질 못해!「싸니」전체가 잠자고 있네』
『저 건물은 안자는데…』
『그건 병원이야. 난 자겠네』
베르나르가 나직이 대답했다.
피에르는 어두운 마당으로 몇 발자욱 내디뎠다. 지독한 냄새가 길에서 아니 흙 돌 판자 온갖 것에서 풍겨나오고 있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모두 잠에 취해 병자나 늙은이 모양 느른해 있다. 그속에 잠들고 있는 죽음이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다른 데라면 비는 식물이 자라고 나무가 숨쉬는 것을 의미하건만 이곳에서는 그 한방울 한방울이 썩은 지붕 밑부터 지하실까지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곳 인간이 사는 고장이 여러가지 있건만…이런 곳이 존재하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내 자리다. 가장 나쁜 곳이 내 자리야』
미소가 얼굴에 떠오른다.
기쁨은 절대로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기쁨은 냄새가 없는것 이다.
그는 사립문을 밀고 나가 공원을 지나갔다. 새로진 집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불빛이 조명등 모양 나무와 고인물을 비쳐주고 있다.
피에르는 어두운 곳을 지나 울타리문을 열고 막다른 골목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쩐지 이 고장이 그의 마음을 끈다. 그의 새로운 영역의 핵심부라고 할까?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이 조그만 말을.
그는 가슴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여긴 루이의 방…신부를 싫어하는 앙리의 방이 저기고…죽어가는 어린애의 부모가 사는방…홀로 불이 켜져있는 뽈렛트의 방(쟉꼬가 아직도 비라를 만들고 있나보지)…아버지한테 얻어맞기 일수인 에띠엔느의 방…』
공산당 분자들, 낙태시키길 원하는 처녀들, 학대받는 어린애들, 쥐, 비가 새는 방, 이 모든 것이「싸니」에 있다! 이것이 모두 그의 것이다. 벌써 그는 그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다. 그의 사명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뽈렛트 방의 봄빛이 두번 깜박인다. 집주인이 전기를 끈다는 신호를 하는것이다. 곧 등불이 꺼졌다. 뽈렛트는 어두움 속에 파묻혀 있겠지. 막다른 골목은 이제 죽음과도 같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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