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교환
하느님은 대체로 미풍 속을 거닐고 (창세3,8) 고요와 평화 속에서 나타나고 말씀하며 행동하신다. 인간들이 고함과 소란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동안에 예수는 몇 마디 의미 있는 말씀을 간간히 실토할 뿐 침묵 속에 고통을 참고 숨을 거두었다. 하느님 역시 고요 속에서 예수를 위한 위대한 일을 이룩하셨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도저히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히 일하셨다.
예수는 아버지의 너그러운 사랑을 인식하고 체험한 이들로서 철저한 순종의 삶을 통하여 그 사랑에 응답하였다. 십자가상 죽음은 그 순종의 지고한 표현이었다. 예수의 고통과 죽음의 순간에 침묵 속에서 적극 동참하였던 하느님은 그분의 순종에 부활로써 응답하셨다. 십자가의 순간에 지켜졌던 하느님의 침묵이 죽음의 사슬에서 예수를 구출하는 능동적 개입으로 변하였다. 하느님은 예수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어 그리스도 주님이 되게 함으로써 그분의 신뢰와 순종에 응답하였고 그분의 삶과 말씀 즉 당신에 대한 계시가 참으로 옳았음을 입증해 보이셨다. 또한 당신이 생명의 하느님이고 의인의 부당한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보답하는 정의의 하느님으로 계시하셨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당신을 생명과 사랑의 하느님이며 당신 사랑이 세상을 유지하는 근본임을 밝히셨다. 이 사랑은 하느님과 아들 사이에 주고받은 것으로서 역사 안에서 세상을 위해 구현된 사랑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아들의 고난에 참여하고 아들을 다시 살림으로써 세상에 밝히 드러난 사랑이고 또한 따라서 죽음을 극복하여 생명을 새로이 낳는 사랑으로 판명되었다. 이 사랑은 하느님과 아들의 일치에서 나온 것이며 또 이 일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두 분의 사랑과 일치로부터 두 분의 영 곧 성령이 분출하였던 것이다.
죽음 안에서의 일치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버지와 아들이 고통 속에서 완전히 결합되신 것이라면 그분의 부활은 영광 속에서 일치되신 것이다. 십자가상 아들의 절규에 침묵하셨던 아버지는 고난을 함께 나누면서 일치하셨고 이 일치가 아들의 부활로 나타났다. 이리하여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이라는 정식문이 하느님의 영예로운 이름이 되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을 확증해 주셨다『야훼는 죽이시고 살리시며 명부에 내려 보내시고 다시 끌어 올리시도다』 (1사무2,6:신명32,29) 『나는 알고 있노라. 이 내 살가죽이 문드러진 뒤에 나는 내 살을 입고 하느님을 뵈오리라』(욥19,25). 신뢰 중에 죽어가는 의인의 신앙에 대해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으로 계시하셨다. 하느님은 아들을 살림으로써 당신 사랑의 신의를 실증하였고 또 당신자신을 아들과 일치시키셨다. 하느님과 아들이 죽음 안에서조차 서로 나눈 사랑의 일치로부터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생명이 세상 안에 태어났다.
부활로써「야훼-임마누엘」하느님이 결정적으로 계시되었다. 『나는 …와 함께 있다』(야훼)고 당신 이름을 알려주신 하느님은 아들의 파견으로써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임마누엘)으로 입증되셨는데 이 하느님이 빠스카 사건으로써 명백히 실증되었다. 「함께 있음」이 죽음으로써 정지되지 않고 죽음을 『넘어서는』(빠스카 유월-과월) 「함께 있음」으로 입증되었다. 하느님이 아들과 함께 나누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일치가 아들로 하여금 죽음을「넘어서」아버지에게로 복귀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넘어섬」을 통한 이 복귀가 인간을 위한 신적 생명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요한16,28).
일치의 영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루가23,46). 예수는 아버지에 대한 온전한 신뢰 중에 자기의 전인격과 더불어 자기의 여혼을 아버지에게 되돌려 드림으로써 죽었다. 예수에게 있어서 죽음은 자기 인격의 내맡김이고 영의「반환」이면「숨」의 거둠이었다. 아버지는 영안에서 예수를 살림으로써 그분에게 영을 되돌려 주셨다. 이리하여 부활한 그리스도는 영을 줄 수 있는 분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 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요한20,22)여기서 숨은 목숨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입김 즉 생명을 가리킨다. 두 분의 생명 사랑 자체는 영이다. 숨을 아버지께 맡김은 죽음이고 아버지로부터 되돌려 받음은 부활이다. 이 내맡김과 되돌려 받음은 온전한 사랑의 교환이고 그 결과 예수는 영을 주는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때에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요한7,39). 예수가 성령을 줄 수 있는 주님이 되기 위하여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되돌아가야 했다. 영을 내맡겨주고 되받아야 했다. 죽음으로써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또 부활로써 아버지가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셔야 했다. 아들 그리스도의 파견은 이분의 복귀로써 종결되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당신에게로 복귀시킴으로써 두 분은 영광스럽게 되셨다. 즉 재결합되셨다. 이재결합, 영광, 현양으로부터 비로소 성령이 그리스도를 이어 세상 안에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신 아들을 당신 오른편에 현양시켜 그 결과 아들을 통하여 성령을 파견할 수 있게 되셨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이 부활로써 드러나고 하느님은 아들과 영과 함께 계시는 분으로 당신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의 빠스카와 영의 파견을 통해 하느님은 영원히 인간들과 함께 계시고 당신의 생명 안에 그들을 참여시키신다. 당신 자신 안에서 아버지-아들-영으로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빠스카와 영의 파견으로써 세상 안에서 인간과 함께 계시는 분으로 나타나셨다. 이스라엘의 야훼가 그리스도의 파견과 영의 파견으로써 아버지 아들 영이신 하느님으로 계시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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