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길이 공존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수 없는 것이라면 통일의 논리와 공존의 현실을 조화시키는 작업은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도전임이 사실이다.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는 정세 앞에서 「6ㆍ23 평화성명」이 나온것은 남북한 사이의 현상 타파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변화이기도 하다. 평화통일 외교의 7개 항목은 크게나누어 ①통일에 대한 기본원칙 ②국제기구에 대한 태도 전환 ③과감한 문호개방 등으로 요약될수 있다.
1년전에 발표된 7ㆍ4남북공동성명이 통일3원칙으로 ①자주적해결 ②평화적방법 ③민족적단결 등을 도모한다는데 그쳤음에 비추어, 6ㆍ23 성명은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문제를 개선하려는 획기적인 출발점으로 또 국제정치의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6ㆍ23 성명과 결부되는 신동아 7월호의 특집 「세계속의 한국의 변모」를 보면 새로운 정책이 요구된 우리의 정세를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수 있다. 여기에 외교문제와 남북한경제를 다룬글도 있지만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글은 공존의 현실과 통일의 논리를 집약한 김경원 교수의「새세계질서와 남북한관계」인 것 같다.
과연 우리는 하나의 철학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부인할수 없는 공존의 현실과 포기할수 없는 통일에의 요청을 동시에 조화시킬수 있는 차원높은 논리를 발견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감」에 사로잡힌 이상 불가피한 일이다.
통일에의 요청과 공존의 현실은 반드시 이을 배반적인 것만이 아니다. 냉전시대의 양극구조가 화해시대의 다극구조로 발전된 새로운 세계정세에 따른 남북관계가 역사적인 변동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너무도 명백해졌다. 그러므로 6ㆍ23 성명은 「궁극적인 목적에의 굽힐수 없는 의지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줄 아는 지혜」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대」지(誌)는 특별기획으로 「미국 일본 중국의 재인식」을 촉구한다. 노재봉 교수의 「아메리카의 재조명」은 한국인의 국제관의 변모를 언급하고 있고, 이영희 교수의 「중국이란 어떤 나라인가」에서는 그동안 지식통제와 사상통제로 빚어진 중국ㆍ중국인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오류가 낱낱이 지적됨을 본다. 아시아적 상황에서의 「민중주의」문제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위해서 많은 교훈을 주는 이 교수의 논조는 전통문화의 발전형식에 있어서 특이한 가치를 고려하게 한다. 그것은 지극히 전통적인 문화수용 태도와 방식이 소련과 불화를 낳고, 또 동구권(東欧圈)과도 구분되는 독립성을 이루는 요인인지 모른다는 결론과 관계된다. 한편 「일본을 어떻게 볼것인가」(「문학과 지성」여름호)에서 송건호씨는 『민족 주체성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주체성이 절로 확립되지 않는다. 서로 긍지를 갖고, 자존하는 대등한 입장에서 공통의 이익을 찾아 같이 협력하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일본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위하여 충분히 경종을 울릴 만하다. 그런 점에서 주체적 내실을 다지지않는 국제관계란 자칫 위태로운 함정에 빠질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자유없이 내실은 기해지지 않는다. 한기식 교수가 「7ㆍ4공동성명 그 후 1년」(북한」)에서 『현재 한국외교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수단은 남북체제의 평화공존과 상호협조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의 평화 안정 그리고 번영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안정성과 체제능력에 자신을 가짐으로써 남북의 대화와 접근이 순조로울 것으로 내다 볼 때 비록 그 구체적인 대안은 없지만, 평화ㆍ안정 번영이 자유를 도외시한 것일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체제에 자신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각 방면에 걸쳐 자유화에 일대전환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닌가.
갈수록 안으로 통제받고 밖으로 생색만 내는 외교정책이 말 그대로 실질외교일수 있을까. 남북분단 극복의 지름길은 자유와 평화의 동시지향에 있는 것으로 우리는 믿고있다. 평화세력의 육성을 위한 선결 요건은 자유화의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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