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고백교회에 대한 나치의 백해는 점점 더해만간다. 그여파로 본회퍼도1963년 늦여름에 대학교수로서의 강의 권리를 박탈당한다. 이어서 이듬해 9월에는 전술한바와같이「핑켄발데」의 시학교가 게슈타포에의해 강제로 폐교해산되고 이보다 앞서서는 마르틴ㆍ니뮐러가 체포되었으며 11월에는「핑켄발데」의 신학교 동문들이 체포 구금당한다. 본회퍼는 1938년 1월 11일에「베를린」시에서의 추방명령까지 받는다.
그러나 3월에는 다시 영국에 건너가 벨주교, 핏써트ㆍ호오프트, 라인홀드ㆍ니이버같은 인사들과 만나 요담 6월에는 순회강연의 청탁을 받고 미국에 건너가나 두 달도 못되어 7월 27일에는 다시 귀국하였다.
당초 도미할 때에는 입대를 기피할 수 있는 잇점도 고려하였었으나 당시처럼 어려운 고비를 독일 국민과 함께 겪지않는다면 전후에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사업에 참여할 권리가 없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험을눈앞에 빤히 보면서 귀국하였다. 하인리히ㆍ옷트는 그의저서「실재와 신앙」(제1권)의 서설에서 본회퍼의 이러한 연대의식을 아름답고 감명깊게 묘사하고 있다. 옷트에 의하면 본회퍼의 생애 마지막 1년반, 그가 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성경귀절이하나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예레미아」예언서의 길지않은 제45장이다. 여기에서 야훼는, 스스로의 기구한 운명과 자기 민족의 비운을 한탄하는 젊은 바룩에게, 예레미아 예언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보라!
나도 내가 세운 것을 헐
어버리고 내가 심은 것을 그 터와 함께
송두리째 뽑아버리는데
너만은 너를위해
무슨 큰일을 잔뜩
바라고 있느냐?
바라지 말찌니
보라!
나는 온육계(肉界)위에
재난이 닥쳐오게 하리로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네가 어데로 가든지
그 온갖곳에서
네 목숨만은 사로잡아
나는 네게 주겠노라』
본회퍼는 이 성경 말씀에서 다른사람 즉 자기민족과의 연대의식을 처절하게 느꼈던것같다. 그러기에 그는 그의 수인 편지에서 기회있을 때마다 직접 간접으로 이 귀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러가지로 서로 다른 기회에 본회퍼는 항상 똑같은「예레미아」45장을 길잡이삼아 반성하고 명상하였다. 이 여러가지 환경과 기회를 한데 묶어주는 공약수랄 수 있는 이 귀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옷트는 말한다. 그것은「실재」라고. 물론 매우 추상적인 표현이다. 부연하면 그것은 우리의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이며, 달갑건 달갑지 않건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매일처럼 접촉해야하는 우리의 이웃들이며, 산산이 부서져버릴 수도있고, 갑자기 동강이 날 수도 있는 우리의 생명이며,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이시각 이 자리에서 우리가 살아야하는 우리의 세기이며, 평탄하고 안정된 사회가 아니기에 일정한 생의 목적을 추구할수조차도 없는 나의 운명이며, 그러기에 거기에는 성패가 있고, 과업과 사명이 있으며 의혹과 문제가 있고, 애환(哀歡)이 교차하는 경험이 있고, 망연자실(망然自失)과 당황이, 역설같지만 밀물처럼 육박하는 구체적인 나의 생명, 이 모든 것이 바로 본회퍼가 그처럼 과감하게 수락하려던「실재」가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야훼께서는 다름아닌 바로 이러한 실재를 우리 각자를 위해 사로잡아, 우리 각자의 유일무이한 유산의 몫으로 즉 우리의 삶으로 하사하시는 것이 아닐까?
이는 실재를 떠나 우리가 어디로 도피해 가든지, 하느님은 우리가 도피해 가든지, 하느님은 우리가 도피처로 알고 찾아간 그 온갖 곳에 추격해 와서는 우리 아닌 그분이 사로잡은 우리 각자의 삶을 차지하게 하시리라. 달리말하면 우리 삶의 이토록 철저한 차안성(此岸性)을 또한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긍정하면서도 바로 여기에서 내가 아닌 하느님이 나를 위해 사로잡아 주신 우리 각자의 삶을 인지(認知)한다는것, 본회퍼는 이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자(者)의 신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거듭 말하거니와 이처럼 하느님이 나에게 사로잡아 주신 나의 삶이라는 바로 이자리를 떠나 하느님을 섬기노라고 지꺼린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으리라. 본회퍼로 말하면 이 자리란 다름아닌 그가 갇혀있던「테겔」의 군사 형무소였으며 나치들이 횡포하는 독일 땅이었으며 오랜 세월을 두고 어떤 일정한 목적으로 추구할수 없어 그때그때의 현실적 요구에나 겨우, 그러나「소모병」(消모兵)의 여한을 청산하고 오히려 혼신의 정력을 기울여 응해 가면서도, 단편으로 갑자기 끝나버리리라는 불길한 예감 속에 살던 그의 생애였으며, 천부의 자질을 꽃피워 보일 수 없으리라는 미련과 공허의 의식이었으며, 친소(親소) 귀천(貴賤) 성속(聖俗)이 교차하던 그의 교우(交友)관계이었으며 마침내는 교수형과 함께 찾아온 그의 죽음이었다.
이러한 자리를 떠나 신(神)을 운위한다는 것은 허사(虛辭)에 지나지 않으리라. 문제들을 해결하고 부조리를 변해(辯解)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로서는 이미 신을필요호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대이라면 이것도 신이 우리를 위해 사로잡아 주신「우리의」삶이요 시대가 아닐까?『신은 죽었다』혹은『신이 되살아났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나 그들에게 자기나름대로 이해라는 관용의 미덕과 추파마저 선사하는 척하는 교회내의 온갖 호교론자들이나, 본회퍼에게는 어쩌면 모두 하느님께서 조차도 헐어버리고 뽑아버리시는 것을 제지하려는「보수주의자」들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몫으로 사로잡아 주신 삶을 거부하고「다른데」로찾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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