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신약성서의 주요 호칭들、 예컨대 메시아、 사람의 아들、 예언자、 하느님의 아들、 주님、 구세주、 하느님 말씀、 대사제 가운데서 가장 풍부한 의미와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다. 다른 호칭들은 어느 특정 작품들안에서만 나타나지만 이 호칭은 신약성서의 거의 모든 작품안에 나타난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은 신약성서 저자들의 지배적 관심사이다. 이는 초기 교회의 모든 공동체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고백은 부활과 성령을 체험한 신생교회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서이다. 교회는 예수가 참으로 성령 안에서 살아 활동하신다는 체험과 인식을 통하여 그리스도、 주님、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하였다. 신약성서의 초기 작품들일수록、 예수의 역사적 면모를 기술하는 작품들은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지칭하는 데에 조심성을 보인다. 이는 아마도 예수가 이 칭호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신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되신 아들
예수가 메시아로 공공연하게 지칭되는 것을 꺼려하신 것처럼 아들 칭호를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광야에서의 유혹 이야기는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해석을 보여준다.
유혹자 사탄의 생각에 의하면、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을 위해서도 기적을 행하며 기적의 능력 덕분에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승복으로써 사탄의 세속적인 의미를 단호히 배격하신다.
악령들린 사람이 당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할 때에도 그분은 같은 태도를 취하신다. 지상적 메시아의 유혹을 거부함으로써 그와 전혀 다른 의미로 하느님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들로 당신을 드러내려 하신다.
예수는 세례와 유혹을 받을 수 있는 아들、 인간의 연약함과 육체적 결핍、 그리고 박해와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아들로 자처하신다. 지상적 영광과 세속적 권능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에 혼신의 힘을 다 쏟는 아들이기를 원하신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로 당신을 보여주신다 :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다』 (갈라4、4).
예수는 당신의 신분보다는 사명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신다.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 그분의 마음을 밝혀주는 것이 주관심사였다. 하느님의 참 모습이 자기의 언행 및 삶 안에서 뚜렷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은 다신의 연약한 인간성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을 지상 과제로 삼으셨다 :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 (요한4、34). 파견된 자가 파견하는 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있음을 자각하고 충실한 사명 수행을 위하여 그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듯이 예수는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에게 예속되어 있는 자로 처신하셨다.
이 자세가 곧 하느님 앞에서 당신을 낮추고 그 분에게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당신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신을 더욱 감추고 작아지려는 것과 같다 :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3、 30).하느님의 계시를 위하여 당신을 낮추고 감추려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아들로서의 자기 신분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사하셨다.
「사람의 아들」
초기 교회는 예수가 사람의 아들로 자청하였다고 믿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가리키는 이 명칭은 모든 피조물에 앞서 하느님 곁에 있었고 종말에 이 세상에 오는 천상적 인물을 지칭하였다 (참조 : 다니7、 13). 예수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셨다. 사람들 중의 한 인간으로서 그들과 깊은 연대관계를 맺고 나약함과 고통을 감수하는 존재이다.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의 아들』 (마태8、 20) 로서 예수는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을 받아 죽을 것이다』 (마르8、 31 : 수난예고). 한편 사람의 아들로서 예수는 종말에 하느님의 고유한 절대 권한인 심판을 집행할 것이다 (마태24、 27 : 마르14、 62). 이 칭호에 수난예고와 종말의 심판예고가 동시에 결부되어 있는 것은 수난과 심판、 고통과 영광을 당신 자신 안에서 종합하시는 예수의 사명과 신분을 시사한다. 사람의 아들은 당신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 고난을 겪고 죽어야 한다 (마태16、 21). 그러므로 예수는 결정적 순간에、 하느님 아들 명칭의 모든 오해가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는 순간에 그 명칭을 시인하신다. 의회 법정으로부터 심문을 받는 순간에 그분은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가 말하였다』 (루가22、 70) 라고 대답하신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겉으로 보기에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상태에서 (마르15、 34) 예수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고 주장하신다. 그분은 모든 것이 성취되는 십자가 죽음의 순간에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고백받기를 원하셨다 : 『이 사람이야 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마르15、 39).
권위와 자유
예수는 『권위 있게』가르치고 자유인으로 활동하셨다. 말씀의 권위로써 사람들을 압도하고 악의 세력을 쳐부수며 세상의 어느 것에도 전혀 속박되지 아니한 하느님의 자유를 행사하신다. 안식일의 주인이라 선언하고 하느님에게만 유보된 사죄권을 행사하며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완전한 헌신을 요구하신다. 하느님의 권위와 자유를 행사하는 전권대사로서 처신하였으므로 하느님의 모독자로 낙인찍히셨다.
그분의 기적들은 그분이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심을 보여준다. 치유、 창조、 해방하는 말씀 자체이시다. 권위와 능력으로 선포되는 그분의 말씀은 예수의 신적 권능을 입증한다.
하느님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유혹과 고통을 겪는 인간의 한계 즉 유한한 자유를 선택하셨다. 자유로운 분이 부자유스런 인간、 거룩하신 분이 죄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처신하셨다. 이는 초월적이고 절대 자유로우신 하느님이 계약으로써 당신을 인간과의 친숙한 관계에 「예속」시킨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수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 아들로서 인간을 철저히 위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에 따라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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