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난을 통해 가끔 한사람의 인물을 소개하려한다。그는 반드시 저명하지 않아도 좋고 어떤 인격적 전형이 아니어도 된다。 그는 어떤주말, 많은 무리속에서 우연히 기자의 렌즈에 포착되어 확대된 제나름의 생을 구축하는 한 개인이다。
순수한 민간 기업체로 국가에 헌납되어 화제가 된 후 극심한 고난의 길을 걷던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최근 정부로부터 산업표창을 받고 사장은 은탑산업훈장을 받아 주목을 끌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이름난 박 바오로 숙희 사장-。
그는 투철한 가톨릭정신으로 경영에 혼신의 열을 쏟아 불과 2년만에 적자로 말썽이던「한비」를 흑자기업으로 전환, 경영의 안정기조를 굳건히 형성했다。
『매일미사에 빠지는 일이 없다』는 박사장은 생활하는 신앙인답게『가난한 이를 돕는 것은 애긍이 아니라 의무』임을 강조한다。성탄때나 부활 등 축일에는 반드시 극빈자를 찾아 그들의 가난을 함께 나눈다고 청파동 본당신부가 귀띔해준다。
성당건립 당시에는 즐기던 약주도 끊고 몇몇 교우들과 건립운동의 주축이 되어 청파동성당이 바오로성당으로 명명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회갑 생신 축일에는 피신까지 하면서 바친 헌금 이외에ㆍ벽돌ㆍ시멘트ㆍ청동십자가ㆍ제단ㆍ석단ㆍ제단포 유리ㆍ카펫트 등 일체를 기증했다고 한다。
『나는 박해자 사오로처럼 정말 지독한 박해자였더...』박 사장의 말끝은 어쩔 수 없이 흐려진다。이효상 국회의장의 맏딸을 며느리로 둔 만큼 벌써부터 가톨릭 가정을 이룰 소지는 갖추어 있었다。부인 서남수 여사는 일찍부터 내적으로 독실한 신자생활을 하면서도 박 사장의 반대로 영세를 받지못했다。박 사장은 여사가 간직한 성경책을 벗고 십자고상을 내동댕이치는가 하면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집에 찾아오면『보기 싫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왜 불러들이느냐』고 고함을 질렀다。그러나 서 여사는 원공(遠攻) 정책을써 먼저 먼 가족들을 입교시켜 그들의 표양을 박 사장에게 보여주게했다。결국 서 여사의 정성이 결실을 보아 결혼후 30년만에 여사는 영세를 하고 박 사장은 54년만에 보레(3세때 대세받음)을 받고 혼배성사를 받았다。
언젠가 노 대주교가 박 사장(당시 한은 부총재)을 보고 성당에 나오도록 권고한 바 있었다。그때 박 사장은『당신이 이 제복(수단)을 벗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내가 성당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단다。그러던 박 사장이 65년 4월 자진해서 이효상 의장을 대부로 삼아 노 대주교한테 보례를 받음으로써 속죄하였고, 제일 마땅찮게 여기는 박 사장으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받아가면서도 꾸준했던 윤 마데오 신부한테 54년간 묵고묵은 죄를 고백하는 총고해를 했다고 한다。그때의 기분을 박 사장은 고해하는동안 등에서는 땀이 흘렀고 고백을 마친후에는 묵은 때를 벗어버린듯 홀가분 하더라고 술회한 박 사장은 보례를 받은 그해 6월에 유홍열 박사를 대부로 견진성사도 받았다.
박 사장은『성직자나 평시도들은 낯선 사람이 성당에 오더라도 더욱 친근하게 대하여 성당에 오는 것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친근감이 아쉽다』면서 비신자보다 더 무서운 냉담자를 버려두는 일도 간혹 눈에 띄여 괴롭다고했다。
또한『기쁘게 봉사하는 성직자의 얼굴엔 항상 춘풍이 감돌아야한다』는 박 사장은 어린양들이 목자의 신경질이 무서워 감히 말을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평소에 느껴온 약간의 불만을 은근히 비친다。
박 사장은 평소 자녀들이 잘못하면 십자고상 앞에 꿇어 앉게하여 모든 것을 고상한테 맡겨버린다。『우리의 힘은 진실한 기구에 있다』고 확신한 박 사장은 시간이 나면 성당 문을 두드린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했던가。나이를 잊어버린듯한 박 사장이「한비」를 인수한 것은 67년 11월 1일。그동안 헌납에 수반된 모든 문제점을 재빨리 해소하면서 경영할합화를 단행, 생산능력의 28.2%에 불과했던 67년도의 생산실적을 69년도에는91.2%까지 올렸고 1백64만여달라 정도였던 67년도의 수출실적을68ㆍ69 2년동안 약8백만달라까지 올려 제6회 수출의 날에는 상공부장관 및 무역협회로부터 수출유공자료 표창받았다.
박 사장은 출근부 제도를 없앤 이유를 묻는 기자 질문에『인간성의 말살현상과 상호불신 상태에서만 있을 수 있는 제도』라고 못박는다。「한비」는 작년 12월을 근무제도를 배격하기로 결의 70년 새 아침에 이를 모두 불태웠다. 출근부가 없어진 후 사원들은 자존심에 의한 왕성한 책임감을 느껴 30분전 출근이란 새 기풍을 일으켰을뿐 아니라 오히려 생산은 13%의 증산을 가져오게 되였다。
이 같은 획기적인 조치의 근원적 배경은 경영자와 근로자간의 절대적 신뢰와 사랑, 그리고 이를 토대로한 상호존중주의라고 한다。
그래서「한비」에는「가족」이 있을뿐 노사(勞使)관계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노동조합도 없다。『급료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생활보장의 수단』이라는 박 사장의 정의가 뒷받침하듯「한비」의 임금수준은 국내에서 가장 높다는게 정평이고 박 사장 취임이후 1일3조3교에서 4조3교대로 바뀌는 등 노동조건도 많이 개선되었다。
『대부분의 기업가들이 근로자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돈벌이의 도구로 취급한다』는 비판의 소리가높은 현실 속에서 노사관계를 떠난 하나의 성가정 같은 공동운명체로서「가족과 애정」과「인간적 신뢰」라는「한비」의 이 정신바탕을 이룩한 원동력은 박 사장이 지닌 신앙의 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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