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의 실정은 암담하다。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더욱 심각해져 간다。정부의 농촌시책은 어긋났고 사회는 이를 외면하고 교회 또한 이들을 외면한다면 과연 농촌이 갈 곳은 어디인가? 본사에서는 이론과 경험을 통해 이 방면에 깊은 관심을 가진 몇분을 모시고 교회가 농촌에서 할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좌담회를 가졌다。이것이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못한다해도 우리 교회안에 농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편집자 註>
◆ 참석자
한공렬 주교(전주교구장)
주석균씨(전농림부차관)
김병태 교수(건국대학교)
이종필 교수(영남대학교)
이석진 신부(구미주임 한국농촌사목협회장)
이길재씨 (JAC전국회장)
김달호 교수(경북대학교 본사논설위원 사회)
때=1970년 4월 18일
곳=대구, 학교성당사제
기록=이단원 기자
사회=한국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촌이 오늘날 허다한 난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이점 교회가 농촌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이제 뒤늦게나마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농촌문제 해결에 참여고자 주교님을 비롯 사제의 전문가와 또 신부자들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라 여깁니다。그러면 우선 교회입장에서 농촌을 대할때 농촌사목의 현황부터 직접 농촌사목을 담당하고 계신 이 신부님께 알아보겠습니다。
이 신부=우선 농촌사목자 자신의 입장부터 말씀드리죠。일반적으로 신부들이 농촌으로 인사발령을 받았을 때 좌천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입니다。확실히 농촌은 도시에 비해 경제적으로 거의 끼니 걱정을 하다 싶이 곤란합니다。어떤 본당은 주일헌금 1백원 2백원이 나오는데도 있는데 이것을 갖고 실제 사목을 할 용기가 안나는 것도 사실입니다。이런 경제적 고충뿐 아니라 젊은 사제로서는 시골환경에서 상대될 만한 사람이 없으니 자기 퇴보는 물론이요 또 인간적으로 고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교리를 가르친다해도 기껏 할머니 어린이들만 앉혀놓고 보면 준비할 의욕조차 안나고 좌담정도를 하고맙니다。
사회=주교님 이런 도시와 농촌간의 사제간의 격차를 평준화하기 위한 교구당국으로서 어떤 배려라도 있습니까?
한 주교=현재 한국교회엔 내자미사와 외자미사(외국에서 의뢰해온 미사로서 대개 예물이 1불)라는게 있지않습니까? 이 외자미사를 도시신부에겐 350원, 농촌신부에겐 500원을 줍니다。이외에도 농촌ㆍ도시간 사제의 평준화를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고 앞으로 시정될 것으로 압니다。
사회=신부 개인이 이런 악조건에 있고 상대자인 농민들이 또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여기 대한 농촌사목자의 기본적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지, 이 신부님...
이 신부=결국 사목자가 농촌사목을 위해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고 또 무엇보다 사목자 자신이 가진 자본 즉 사목자로서의 실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우리가 농촌에서 각기 자신의 지식이나 기호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찾는다면 농촌에서는 자신과 맞을 상대자는 거의 없겠지요.
그러므로 농촌사제는 자신의 상대를 찾지말고 나 자신을 상대적으로 맞춰야 될 줄 압니다。즉 모든 면에서 민중과 함께 살고 보조를 맛춰야지요。그래서 우리가 비록 동료를 만났을 땐 정신적으로 퇴보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내 고장에서는 왕도 지배자도 아닌 농민의 친구로서 농사와 실생활을 더불어 이야기하고 그들과 같이 발전해야 될 줄로 압니다。내 경험에 의하면 처음부터 경제적인 원조는 반대입니다。흔히 다른 사제들이『돈이 있어야 일하지』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런 정신적인 기본자세가 근본적으로 돼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회=한국농촌이 비단 가톨릭뿐 아니라 여타의 종교적인 신앙생활을 받아들일 소지가 어떠냐는 점에서 주 선생님 다른나라와 비교해서 말씀해주십시오。
주=농촌근대화의 기본문제가 무엇이냐하는 관점에서 볼 때 저는 종교적인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종교적 신념없이 꾸준히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노력하는 끈기는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외국과 비교해 볼 때도 무엇이 좋으냐라는 관념적인 문제나 그 발상도 어디가나 비슷합니다。그런데 이건 비단 농촌문제만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무엇이 좋다는 것까지 알고있고 또 착수하고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어떤 건축가에 의하면 서구에서는 성당하나를 수백년간이나 짓는데 한국은 하루 아침에 빌딩을 짓는다 했는데 그런 조급한 생각으로 좌절안될 수가 없습니다。농촌문제가 가장 긴요한 문제라고 수긍하지만 이건 말뿐이지, 가령 종자개랑문제 등 무엇하나 지속되는 노력이 없고 따라서 그 성과도 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톨릭 성직자나 지도자들은 농민의 위축, 농촌을 버리려는 좌절감을 막고 일깨워 주어야되는데 농촌 배속을 좌천이라한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교회가 이런데 농민이 가난한 농촌을 탈출하려는 건 당연한게 아니겠습니까? 가톨릭은 농민에게 정신적 신념을 주고 정신적 토대를 구축할 사명을 갖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사회=농촌의 정신적인 문제에서 화제를 돌려 실제농민 생활의 구체적인 현황, 다시말해 도시 근로자나 상업인구에 비해 경제적인 수입격차라든지 기타복지 보건 등 그 현격한 격차를 실례로서 말씀해주시면...
주=가까운 일본과 비교해서 1농가당 경작지는 일본이 1㏊ 한국이 0.9㏊로서 비등합니다。
그런데 1967년 통계를 보면 일본은 1농가당 1년소득이 1백12만원, 한국은 15만원, 즉 일본이 한국보다 7배반입니다。1968년 정부통계에 의하면 도시근로자에 대한 농민소득은 일본은 109.7%, 한국은 62.6%입니다。복지면에서 일본은 전기, TV, 세탁기, 냉장고가 100%, 자가용이 34%로 도시생활과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한국농촌은 구형태를 못벗어났고 이런 격차는 이대로 가면 가일층 커질뿐입니다。
김병태= 그 격차를 두가지 면에서 볼 때 하나는 도시근로자들의 소득이 높아짐으로써 농민소득이 일정하다해도 상대적 격차가 커집니다。이보다 더 큰 문제는 1964년에 비해 68년 농촌실지소득은 19% 떨어졌다는 현상인데 명목소득은 오른 것으로 되어있습니다。이것은 큰 위험 신호가 아닐수 없지요。소득균형을 위해 정부가 소득증대사업을 작년에 76개 금년에 74개 사업을 벌였습니다。작년10월이래 1백26억을 책정, 각 도평균4, 5개사업을 배당했는데 문제는 과연 이런사업을 통해 농민소득격차가 줄어드느냐 하는 거지요。이에대한 기본관찰로서 1백26억이란 적잖은 돈이, 이것도 전국 250만 농가에 골고루 배당되는게 아니라 74개 사업단지에「핵타」이상의 경지면적을 가진 40만호 미만의 특정농가에 준다니, 과연 국가재정이 특정지역에 대해 특정적으로 보조하는 것이 사회정의면에서 옳은가 하는 문제, 또 이것이 옳게 성공한다면 몰라도 지금까지의 예로는 농민소득증대를 위한 실험실습비에 불과 했습니다。국가재정이 농민실제소득을 위해 실험비로 투자되어 오히려 기형적 감소를 초래했으니 이게 과연 온당한 일입니까?
그러던 이러한 한국농촌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놓고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인가? 아직 입교하지 못한 사람으로 감히 말씀드린다면 적어도 농촌을 맡은 신부님은 농업문제에 대한 선도자가 돼야하겠지요。요한 23세 교황의 회칙「마뗄엘 마지스뜨라」나 기타교회가 가르치는 그리스도적 이념과 현 한국가톨릭과는 어딘지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느낌입니다。역사적으로도 한국가톨릭은 이조 양반사회보다 서민사회서부터 뿌리박은 것으로 아는데 해방후교회는 그런「이미지」를 잃은 느낌입니다。이제 교회는 사목의 긴급문제나 교리만가지고, 더 나아가 농업기술문제만으로도 농촌개조를 위한 침투력이 약하다고 봅니다。
요는 농업문제의 진수가 어디에 있느냐? 적어도 농업전반의 해결점은 교리와 더불어 경제문제 기술문제 이런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이론적인 무장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봅니다。
사회=농촌문제 해결의 요체는 종교적 신념의 토대위에서 지도자가 실지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겠습니다。그러면 농민들의 종교생활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문제점 가령 미신같은데 대해선 어떻게 계몽지도 할 수 있을지 이 신부님 경험담으로써 한 말씀
이신부=농민들은 병이 났을 때 언뜻 점장이를 생각합니다。신자의 경우는 거기가면 안된다는 양심은 있지만 우선 병원에 가자니 그만한 돈이 없으니 갑니다。이때 신부가 덮어놓고 야단치면 교회와 멀어집니다 주일파공에도 저수지공사 등 불가피한 일엔 미사에 못나옵니다。또 어떤 교우는 파공조차 모릅니다。그래서 이런 교법을 못지키면 나중엔 양심적인 중압감 때문에 신앙에 위협을 당합니다。이런 때 신부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억압만하면 교회와 영 등지는 수가 있습니다。어떤 경우 한달에 한두번 나와도 좋다고 하고 양심적인 면에서 신앙생활을 독려합니다.
사회=교회가 농촌에서 시급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점에서 이종필 교수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종필=신부님이 농촌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농촌에 배속되었을 때 그 환경에 대한 페쇠감 내지 공포심마저 느낄 것은 당연합니다 이 점 교회는 신학교에서부터 특수사회의 실지문제에 대해서 지도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그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신부가 농촌에 대해 실지로 모르면서 다 알고있다고 믿는데서 실패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종필=하옇든 교회는 서서히 신자나 비신자간에 대화의 길을 열고 밀어주어야겠지요。그들이 모일 수 있는 핵심체 지주의 역할도 교회가 되어야겠지요。따라서 농촌의「사랑방공론」을 조성하고 지배하는 이가 바로 신부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이 신부=그래서 요즘은 신자나 비신자를 막론하고 신부가 저렇게 동네로 돌아다니는 수도 있구나 합니다。
주석균=교회는 외형적 성과가 목적이 아니고 보면 먼저 농업경영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의 습득 즉 확고한 철학과 실제방법의 터득 두가지 다 구비해야 되겠지요. 그리고 먼저 문제점이 무어냐- 파악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한국의 농업정책은 기본적으로 옳지 않습니다。가령 농협문제를 예로들면 이것은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을 위협하는 농협입니다。이럴 때 교회는 앞장서서 농협개조를 부르짓고 정부시책을 비판한다든지 농민을 대변해야지 말로만 잘하라해서 통하지 않습니다。
이병태=농협문제는 사실상 한국농촌의「알파」요「오매가」입니다。즉 농협이 제자리에 들어선다면 농촌문제 전부가 해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런데 지난 3월 28일자 정부각의에서 농협법 부칙9조(각 군 협동조합의 전무ㆍ상무를 중앙회장이 임명하는 제도)를 72년 3월까지 연장한다고 의결했습니다。이 법은 5ㆍ16후 농협동합을 하면서 임시조치법으로 1년간 기한부로 제정한 것인데 그것이 한번 연기 또 연기 연기해서 금년이 만기인데 72년 3월까지 또 연기되었습니다。이것은 농협의 생명조항인데 국내 어떤 언론의 사설이나 논설도 취급 안했고 이쯤 그 흔한 대학「심포지음」으로도 채택되지 않았습니다。어떤 농민의 사활문제가 외면당하는 한국의 사회풍토가 한심스럽다고나 할지요。농민이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소득증대를 위해 의욕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거기엔 농협의 민주화도 당면과제의 하나일진데 교회는 농협정책의 맹점을 찾아야합니다。요는 교리외 더불어 한국농촌문제를 어디서부터 첨부해야되느냐를 파악하고 과학적 이론적 검증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그러자면 교구 본부는 특정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농촌에 하달하고 농촌신부는 그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를 위로 보고하고 조종받는 유기적인 기구가 필요하겠지요。
이 신부=사실 종래까지는 주교회의에서 농촌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 기회가 없었지요 이런 기회에 자극받아 기구조직 농촌전문위 같은 것이 형성되였으면 합니다。
주=농촌문제는 바로 인간문제요 따라서 기독교의 기본적인 과업인데 농민이 되풀이 고난을 받는 것을 방관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가톨릭 기구에서 반드시 이 점이 논의돼야 하겠고 주교회의에서 옳고 그른 것을 표명하면 이것이 일반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고 반영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사회=결국 여태까지 한국교회는 농촌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긴데「바티깐」은 농촌사목ㆍ농민전반에 대한 교회의 원칙적인 노선방침 지시가 전문가를 통해 상세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공의회 이후 이것이 세계적으로 반영되어 실천되기까지엔 아직 시기가 요하겠지요。
이제 원칙적인 문제는 이정도로 하고 교회가 농촌에서 할 수 있는일, 좀더 확대하자면 농촌이 희망하는 일이 무엇인지 JAC 전국회장께서 포문을열어주십시오 아울러 JAC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회장=먼저 내부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다시말해 농민자신들의 참여의식이랄까 그런게 박약합니다。실제 청년회를 통해 조직운동을 해보니까 농민단체를 신자공동체로 보면 그들은 사도적사명을 잊고있다는 겁니다。이런 점에서 사도적 교육이 필요합니다。둘째로 농촌의 실생활부터 개선해야 될 겁니다。교회의 기성조치 부인회 같은데서도 교리만 배울게 아니라 자녀교육이니 의식생활 등 실활에 대한 연구훈련이 있어야할 겁니다。사실 외자를 들여 목장, 농장을 해야 지역사회개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먼데서부터 시작하고 가까운 문제를 잊어버린 것이 됩니다。그리고 과거 이런 사업은 거의가 실패한 것으로 압니다。JAC 조직은 본당 단위에서 교구단위 상향식으로 되었는데 전국적으로 15개 본당조직이 있고 사업으론 전국적으로 농한기를 이용, 매년 2회 농촌지도자 훈련(신용조합지도자 등)을 하고 있고 2개월에 한번 농촌청년지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 신부=신부님들이 신용조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농협에 대한 상대적인 시책으로 널리 권장했으면 합니다。
한 주교=여태까지 이야기를 다 듣고나니 결국 주교들만 다 잘못한 것 같습니다。
(웃음) 먼저 문제점을 주교가 알아야지요。이러기 위해 평신도가 발언을 하고 문제점을 제시해야지요。사실 옛날엔 나부터 신품만 받으면 전지전능인줄 알았는데(웃음) 이제는 성직에 있어서까지 나의 지식은 케케묵은 하나의 전서효과밖에 안됩니다。
사제 재교육이 논의되기전에 주교 재교육이 선결문제로 주교는 대화하고 자료를 제공받아 문제해결을 위한 사목위를 구성하는 등 민중과같이 호흡해야되지요。하느님 백성의 말은 자꾸 나와야합니다。
저변의 말이 없으면 주교는 독불장군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사목은 교리를 가르치는게 아닙니다。먹는 것 노는 것이 다 기도입니다。교회는 죄인들의 모임이며 죄있기 때문에 뉘우치려 애쓰는 것이 교회이며 죄란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 곧 또한 민중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회=확실히 종래의 교회는 선민의식 일종의「섹티즘」을 갖고 있었던게사실입니다。세속과 유리되어 자기만이 거룩하다는 생각 자체를 기독교가 배격해야할 사상인데 이런 모순에서 탈피해야지요 끝으로 농촌전례문제에 대해 한 주교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주교=저는 농촌전례를 말씀의 전례에다 중점을 두고 싶습니다。농촌교회가 한산한 이유중의 하나가 매일 천편일률적인 말씀의 전례에 있지않나 싶습니다。똑 같은 복음을 매일 읽었자 소귀에 경읽기고 흥미가 없습니다。이 점 약간힘이 들더라도 정신적인 투자를 하는 셈으로 복음을 허용된 한도 내에서 선택하여 매일 5분간 농민의 실생활과 관계되는 참교양적인 것을 계속적으로 들려주면 그들도 흥미를 갖고 모였들겠지요。
사회=농촌문제가 너무나 방대하고도 중요하며 이의 해결을 위해 교회 자체부터 쇄신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요。앞으로 교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주듣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장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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