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만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세워졌으므로 각 민족이 교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최근에 교회의 전례를 모국어로 집전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그러나 전례서나 성경이나 모든 것이 외국에서 번역된 것이므로 우리말로는 어색한 표현이 많다。되도록이면 번역물이라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다듬어져야 하겠다。이것이 아마도 가장 급한 문제일 것이다。어떤 문장을 읽거나 들을 때에 외국어를 상상해야만 그뜻을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되었다면 시정해야 하겠다。『생활하시고 왕하시나이다』라는 어귀가 자주 사용된다。오랫동안 들어오는 말이기에 희미하게나마 알아듣는 듯 하지만「라띤」원문의 뜻을 바로 표현했다고는 볼 수 없다。특히 현대의 젊은이들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 교회의 용어문제는 토착화와 더불어 현대화라는 요청을 내포하고 있다。외국어를 순수한 한국말로 바꾸는 일보다 오히려 더 급한 것이 옛 말을 새 말로 바꾸는 일이라 하겠다。교회의 용어는 대부분이 이미 한국말로 번역되어있다 그것이 모두 50년내지 백년전 번역이다。
따라서 오늘의 젊은이들 특히 비신자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다。「성사」「성총」「보속」따위는 아주 토착화되어버린 단어이면서도 비신자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교회 고유의 단어들이다。몇해전에「가톨릭공용어심의위원회」가 조직되어 새로운 표현들을 시도해보았다。
「성총」을「은총」으로 바꾸어 보았다。「은총」도 못알아듣겠다는 여론이다。비슷한 개념을 가진 여러 개의 단어를 원문이 뜻하는대로 구별해서 번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성총」을「은총」이라고 바꿀 때에도「은총」「은혜」「은사」의 원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억지로 이런 세개의 단어를 만들어 본 것이다。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들인지 겨우 2백년밖에 안되는 한국의 언어는 그리스도의 계시물 원문대로 명백히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이유없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작년봄부터 신ㆍ구교합동으로 성경 번역 사업을 시작하였고 가톨릭측에서 공용어 위원회위원 신부들이 헌신하고 있다。따라서 성경이 완역되면 교회 용어도 많이 정리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미 공용어 위원회의 손을거쳐서「가톨릭 기도서」「주일 미사」등이 출판되어 사용되고 있다。옛말투를 현대화하려고 노력하였다。될 수 있는대로 알아듣기 쉽게 다듬어 보았다。여기 대해서 여러가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먼저 기성세대 측에서는 옛 리듬이 사라졌다느니 존엄성이 없어졌다느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을 하고 있다。새 세대를 위주로 옛 도서를 수정하였으니 기성 세대의 불만을 사게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다음은 새 세대에 속하는 분들의 비난이 있다。그것은 일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이다。여럿이 모여서 문장을 다듬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아야 하겠다。각 사람이 제 말투를 가지고 있다。서로 양보해가며 문장을 다듬어 놓고 보면 일관성이 결여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교회용어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목적한 과도기의 현상을 우리는 관심있게 지내야 하겠다。뒤에서 수군거리지만 말고 직접공용어 외에 의견을 보내주든지 아니면 가톨릭시보나 경향잡지나 가톨릭청년 혹은 사목지 같은데에 투고해서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하고 최후의 목적인 용어의 현대화와 토착화를 함께도모해야 하겠다。현재 사용하고있는「가톨릭 기도서」「주일미사」특히「미사통상문」에서 어색한 표현을 느끼는대로 대안을 제시해준다면 멀지않은 앞날에 보다 아름다운 표현으로 통일될 수 있을 것이다。특히 특수용어를 현대화해서 토착시키려면 공개토론이 필요하다。「성사」「은총」「보속」같은 교회 고유의 용어를 어떻게 바꿀것 인가하는 문제를 널리공론에 붙여야할 줄로 생각한다。또 전례에 사용되는 간단한 어귀들도 통일성을 되찾게 해야 하겠다。「하나이다」「하소서」가 있는가 하면「합니다」가 불쑥 튀어나오고「천주께 감사」「주께 영광」따위의 꼬리 잃은 표현도 있다。이것이 아마도 과도기적 현상의 가장 뚜렷한 예가 아닌가 싶다。어느쪽으로 어떻게 통일하면 좋을지를 결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넓은 의견의 종합이 필요하다。
때로는 문법상의 논쟁도 있을 수 있다。「축복한다」는 단어를 가끔 사용하지만 이것은「복을 빌어준다」는 뜻이므로 사람이 사람에게 축복할 수는 있어도 하느님이 사람에게 축복한다는 표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가하면 반대로「축복한다」는 뜻 자체가 이미 하느님이 인간에게 복을 내린다는 뜻이기에 하느님이 사람에게 축복한다는 표현도 좋다는 학자가 있다。여하간 용어를 토착시키고 현대사람이 잘 알아듣도록 다듬으려면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위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제시해 보았다。 많은 반응이 있기를 바란다。그런데 그저 나쁘다거나 옳지 않다고 비난만 하지말고 무슨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 반응이 있기를 바란다。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과도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며 각기 자신의 공헌을 약속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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