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신학의 토착화」라는 명제가 주어진 것은 공의회 이후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현실과 무함된 진실성 위에 신앙생활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의 일부라고 생각된다。그러나 이 고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이 나라에는 아직까지 개인의 단편적인 신학 논문은 있어도 신학계라 부를 만한 학문의 세계가 서 있는지 의문스러운 현실이고 필자 자신도 신학의 토착화가 어떤 원칙에 의하여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뚜렷한 주장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그러기에 우선「신학의 토착화」라는 명제를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규정해 놓고, 신학의 발전과정을 개관하면서 한국적인 신학의 정립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서양의 신학계도 모색해 보고자 한다。성야의 신학계도 오랜 역사를 통해서 많은 변천을 겪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이 하느님에 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영원불변하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인식이 왜 외래적이니 토착화이니 왈가 왈부할 것인가 잠깐 의아스럽게 여겨질 것이다。그러나 신학의 대상이 영원불변하신 하느님이시라도 그것이 학문인 이상 인간의 인식을 체계화한 것이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하느님을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신학의 다양성이라는 현상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더 나아가서 신학이라는 학문의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막연하게 절대자인 하느님에 대한 관념의 탐구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당신 사랑의 표현인 우주와 인간의 역사 안에 친히 간섭하시어 신과 인간과의 공생을 위하여 설정하신 위대한 계획 즉 구원의 경륜 전반에 걸친 인간의 호응과 인식이 신학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이라면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범주 안에 존재하는 것이요 보편적인 공통성뿐 아니라 개별적인 특수성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경륜의 구체적인 실현이나 이에 대한 각 인간의 의식이나 체험은 실로 다양하고 변화 많은 것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이 경륜을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업적을 계시라고 부르며 이 계시를 체계적으로 인식하라는 노력이 신학이라고 본다。따라서 철학적 사변으로 절대자의 본성이나 속성을 발구하는 소위 자연신학은 엄밀한 의미의 신학은 아니라고 본다。
계시에 대한 인간의 지성적 반응이 신학이라면 학적 체계를 갖춘 신학은 어느 정도 형성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적어도 신학적 사유는 최초의 계시가 표현될 때부터 발생한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계시를 이해하려고 반성하기 시작하는 거기에 신학의 싹이 터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계시의 가장 중요한 표현 방법의 하나요 신학의 원천인 성서 안에 이미 원초적인 신학이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어떤 학자들이 말한 바와 같이 성서는 하느님의 인간학이요 인간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하시는 방법과 요구하시는 대답이 성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보시는 인간학이 성서라 할 수 있겠고 인간 편에서 보면 성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존재와 본성과 작용과 인간과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조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받은 계시를 음미하고 반성하면서 계시에 순응하거나 반발하면서 그들 스스로의 민족사가 구세사의 일부를 구성하도록 신학적으로 살아왔다。
구약성서의 저자들의 성서 편술 태도가 바로 신학적이었다。일반 신자들이 착각하듯이 성서 저술가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녹음하듯이 받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성신의 감도하심을 따라서 하느님의 사상이나 업적을 그들의 인간적인 교양과 지식과 언변과 문장력을 동원해서 기술했기 때문에 성서 원문 안에 가장 기초적인 신학이 들어 있는 것이다。물론 제시가 생활화되고 문서화되기까지는 세월이 필요했고 성서 편술가나 예언자가 아닌 이스라엘의 석학들도 주어진 계시를 보존하고 내용을 연구하고 실생활에 응용하는 노력을 전개했었다。
특히 기원 전 6세기에 유다 왕국이 아씨리아에 의하여 멸망하고 왕국의 주요 지도자들과 상당수의 백성이 바빌로니아에 포로생활을 할 때에 예언자 에제키엘의 지도하에 조상들의 전통을 유지하고 이방인 가운데서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그때까지 구전으로 내려오던 성조들의 역사와 민족의 영광과 시련의 발자취를 수집하여 평가하고 해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서 구약성서의 역사편의 근간을 편수했다。또 다른 일단의 학자들은 조상 전래의 볍률의 골자에다 저들의 오랜 역사 중에 에집트 페니치아 아씨리아 갈데아 등 인접 민족들의 법률과 행정 체계를 참고하고 저들 스스로의 경험까지 종합하여 율법 체계를 이루어 민족국가 부활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율법학자 또는 바리사이들의 노력은 주로 전통을 고수하는 데 목적이 있었으므로 성서의 자구 해석에 치중하고 성서를 생활화하는 지혜를 일깨우지 못했고 학문적인 재구성을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신학은 훈화학적인 것에 머물고 있다。유대인 중에서 구약성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신학자가 배출된 것은 차라리 신약시대에 와서 그리스도교도들의 신학적 노력에 자극되고 영향을 받아서 출현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하느님의 계시를 경화된 유물로만 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반추하고 해석하고 정리하고 생활화하는 노래 즉 신학적 탐구를 계속해 왔고 그를 위하여 그들의 인간적인 요소들은 활용했음을 볼 수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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