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국 황실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 공이 5월 1일 성모병원에서 긴 투병생활 끝에 73세를 누리고 선종했다。
이조 26대 고종과 순빈 엄 씨 사이에 서기 1897년(丁西) 10월 20일 덕수궁에서 태어나 망국의 한을 품은 채 1907년 10살 나던 해 일본에 볼모로 건너간 지 56년 만인 63년 11월 22일 지병인 뇌혈전증으로 실어(失語)와 정신마비가 된 채 귀국, 6년 5개월 9일 간 성모병원 613호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고국에 돌아온 기쁨을 한마디도 표현하지 못하고 1일 오후 1시 낙선제에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친 것이다。
영친왕은 고국에 돌아와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제 발로 걸어보지도 못했기에 그를 보내는 국민의 마음은 한층 애절할 따름이다.
영친왕은 고국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 했으나 이승만 씨의 반대로 실향의 쓰라림을 씹으며 병상생활을 하던 1961년 일본 동경에서 석종관 신부(마오로 현 경남 의령본당 주임)에게 영세를 받고 입교했다。
본명은「요셉」. 귀국 후 성모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왕자다운 몸매를 허트림 없이 항상 근엄한 표정이었으나 담당 간호원이 새로 바뀐다든가 청소부가 부주의로 소음이라도 내면 못마땅한 표정을 보이곤 했다 한다.
68년 3월부터 영친왕의 병상을 지켜온 손루치아 씨는 가끔 기분이 좋아 보일 때『전하 삼종을 드립니다』하곤 큰 소리로 성모경을 외면 만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고 한다。
특히 작년 5월 말 김 추기경이 추기경 서품을 받고 귀국하여 병상을 방문 강복을 주시자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뜨고 말은 못하나 평화와 안도가 깃든 표정을 짓던 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임종 3일 전 금혼식 기념일에 병실에서 부인 방자 여사와 간호관찰 방용자 수녀가 참석하여 가톨릭중앙의료원장 유수철 신부 집전으로 축하미사를 드렸다。
1일 오전 5시경 용태가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성모병원 최익철 신부가 달려가 마지막 성사를 주었고 오후 10시경 김 추기경은 낙선제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망자에게 마지막 강복을 주었다。
그러나 영친왕은 의식이 불안한 상태에서 귀국 후 한 번도 영성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운 속에 일생을 보낸 영친왕의 유래는 9일 경기도 양추군 미금변 금곡리 영관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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