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하느님과 유일하고도 독특한 부자관계에 있는 아들이시다.
그분이 독점 사용한『나의 아버지』(마태7、 21:루가2、 49) 호명은 그 자신과 아버지의 완전한 일치를 나타낸다. 상호 인식 및 사랑、 권한、 행위에 있어서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이신 예수는 존재에 있어서도 일치되어 있으므로 하느님의 와아들이고 따라서 그분의 완전한 계시자이시다.
아버지와의 일치
예수는『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으셨고』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마태11、 27~28) 두 분은 서로를 완전히 알고 서로 사랑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나도 아버지를 안다』(요한10、 15)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요한17、 26). 아버지와 예수의 행위는 모두 공통이다. 『아버지계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요한5、 19). 아버지는 모든 것을 예수에게 주셨으므로 두 분은 모든 것을 공유하신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내 것이다』(요한16、 15 : 17、 10). 아버지는 생명의 권능과 심판 권한을 아들에게 주셨다 (요한5、 21、 26). 인식、 행위、 권한、 소유에 있어서 일치되어 있는 아버지와 아들은 존재에 있어서도 하나이시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10、 30). 이 일치 때문에 예수를 보았으면 곧『아버지를 뵈 온 것이다』(요한14、 9).
아들로서 예수는 하느님으로 부터 모든 것을 받으셨고 하느님과 모든 것을 공유하지만 그것을 독점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지 않으신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다』(요한5、 19). 예수는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일종의 의존으로 표현하신다.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람과 아버지께 대한 자신의 복종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그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나는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그대로를 실현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만 하겠다』(요한14、 31). 이와 같이 예수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의존으로 증언하였고 또 이 의존을 순종으로써 입증하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역사적 삶 안에서 드러난 절대적 순종은 아버지에의 의존을、 그리고 완전한 일치를 증거하는 것이다.
아들로서 아버지가 하고자 하시는 일을 그대로 실행하기 위하여、 즉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당신 자신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하여 예수는 자신 안에 공간을 마련하셨다. 그분은 순종으로써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여유를 마련해 드렸다. 온전한 신뢰위에 바탕을 둔 예수의 순종은 그분이 철저히 아버지에게 속해 있고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순종은 그분이 아들로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으셨다』(필립2、 6).
아들의 영광
아버지 앞에서 아들이 당신의 고유한 것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내세우지 않고 아버지께 돌려 드리는 행위는 성서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아들의 순종과 포기는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영광은 하느님과의 일치로 설명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해서는 구원이다. 예수는 높은 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하느님과 일치하여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되셨다(마르9、 2~3).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순종과 포기의 삶 안에서 예수는 아버지와 일치되어 있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신다. 세상 안에서 인간을 위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아들이신 예수는 포기와 순종의 절정 순간 즉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께 자신의 영광을 위해 간구하신다. 아버지와 자신의 일치를 이 세상 안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며 죽으려 하신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요한17、 1).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의 영광과 전혀 다르다. 인간의 영광은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압도하는 것이지만 하느님의 영광은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이며 상호간의 들어 높힘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은 하느님이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인간에게 주심으로써 인간을 일치시키는 것이다.『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나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7、 22) .
영광의 주님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역시 인간을 위해서도 하느님에게 되돌려 드리신다. 아버지의 영광을 인간들 가운데서 드러냄으로써 아버지의 생명을 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예수에게는『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지만 그분『스스로 목숨을 바치신다』(요한10、 18).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분을 사랑하신다. 예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부활로써 입증되었다. 아버지는 그분을 살림으로써 현양되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과 승천으로써 이미 하느님의 영광을 차지하셨다(루가24、 26). 그것은 아버지가 그분을 사랑하시어『천지 창조 이전부터 주신』(요한17、 24) 영광이며、 아들로서 아버지와 동등하게 누리시는 영광이다. 『하느님은 그분을 죽은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그분에게 영광을 주셨다』(Ⅰ베드1、 21). 『하느님께서 바로 그 종이신 예수를 영광스럽게 해주셨다』(사도3、 13).
그렇지만 하느님의 영광은 예수의 부활로써 완전히 나타났지만 그분의 생애、 전도활동、 그리고 죽음 안에서도 드러난다. 그분의 잉태를 위하여 성령이 마리아에게 강림하신 것은 야훼의 영광이 성소에 내려오신 광경을 연상시킨다. 탄생 때에 영광스러운 주님의 빛이 나타났다. 이 영광은 예수의 세례、 영광스러운 변모、 기적、 말씀、 죽음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그분이야말로『영광의 주님』(Ⅰ고린2、 8) 이심을 계시하였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현존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인 그분은『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 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다』(히브1、 3). 그분으로부터 하느님의 영광이 인간을 비추어 (Ⅱ고린3、 18)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